크리스마스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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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 안 준다고 으름장 놓는 치사한 산타할아버지한테라도 선물을 받던 때는 그나마 행복한 때였다. 그런 뻔한 쇼에 속기엔 민망할 정도로 머리가 굵은 다음부터 한동안 나의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한아름의 초코파이와 성탄특집영화, 그리고 지겹고 지겹게 반복되는 캐롤송의 테러에 지친 귀의 구조요청신호로 점철되었다.
어른이 되어 더 이상 크리스마스가 산타할아버지 오는 날이 아니라 연인들이 밤새 촛불 켜놓고 무드잡는 날이라는 것을, 그리고 불쌍한 건 선물 못 받는 애들이 아니라 옆구리 시린 싱글들이라는 것을 새로이 배우게 되었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건 바로 '듣기 좋은 가락도 한두 번이지'의 주인공 캐롤송 융단폭격이다.
여기에 울긋불긋한 반짝이 등만 더하면 완벽한 특선메뉴가 되는데, 뭐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문제는 이 놈의 메뉴가 하루도 이틀도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넘게 계속된다는 점이다. 경제호황기였는지, 한동안은 해마다 특선 메뉴의 시작이 빨라지던 때가 기억난다. 기억력 좋고 반복에 빨리 물리기로 유명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몹시 테러블한 추억이다. IMF 이후로는 그나마 규모가 팍 줄어서 최소한 12월이 될 때까지는 기다려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롤들은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인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그래도 뭔가 정겨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나고 요즘 노래들에 비하면 편안하고 반가운 편이다. 사실 지겨운 건 팝가수들의 그렇게 좋지도 않고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돈 좀 벌려고 만들어본 캐롤앨범이다. 제발 한 번만 들리고 말았으면 좋으련만, 너무나도 익숙한 창법으로 너무나도 버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하는 심문을 계속 듣다보면, 지겹다.
가수도 아닌 그냥 연예인들이 장난치는 허접한 캐롤송들도 테러블 왕국의 일등 공신이다. 시끄럽기도 제일 가려니와 가뜩이나 못 하는 노래에 같잖은 랩인지 추임새인지까지 다 포괄해버리는 국내 컴필 앨범들은 해마다 꾸역꾸역 나와 귀를 괴롭힌다. 보통 때도 워낙에 모든 재료를 섞어끓인 것도 아니고 아예 다 소화시켜 게워놓은 듯이 -.-; 대다수의 취향에 맞추겠다고 발악하는 '댄스'음악들이 여기 가도 저기 가도 귀를 때려대는 요즘엔, 원 무서워서 어디 가서 쇼핑을 못 하겠다. 그럼 또 별수 없이 귀건강을 조금 해치더라도 정신건강이라도 챙기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방어용 음악'을 틀게 된다.
무슨무슨 가게마다 바깥으로 내놓은 스피커들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음을 뿜어대고 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 나라는 소음규제는 생각도 안 하는 것인지, 괴롭기 짝이 없다. 하긴 지겹사리 뽈겋게 반짝이는 빤딱이등이랑 테러블 캐롤폭격만 논외로 한다면, 시끄럽고 부산한 거리나 여기저기 휘청대는 취객들이나 반드시 크리스마스만의 악몽은 아니다. 크리스마스날이 지나도 해방은 되지 않는다. 연말연시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0-;
라디오나 티비나 거리거리에 깔린 스피커들은 평화와 용서, 화해, 사랑을 귀따갑게 떠벌이지만, 일년 중에 고작 한달 그냥 지나가는 소리 해본다고 갑자기 이 세상이 평화로 가득찰 리도 없는데, 왜 이 나라는 폭설로 방송국이 쉬는 일도 없을까? 영화에선 종종 그러는데... 생각은 끝도 없이 걸어간다.
지난 겨울 서울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버스들이 멈추고 지하철이
'무임승차를 허'
했을 때, 모든 것이 느릿느릿하고 도시기능이 정지된 듯이 보였을 때, 나는
'눈이 서울한테 휴가를 줬네' 한 수 읊고는 멋진 말이라고 혼자서 좋아한 적이 있다. ^^; 만약에, 이번 크리스마스에 큰 눈이 내려버린다면, 어차피 놀기로 작정한 날 경제손실이 어쩌구...하는 소리를 듣지 않고도 즐겁게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루 휴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눈이 많이 쌓여 사람들이 집밖으로 멀리를 못 나가면, 장사를 포기한 가게들이 시끄럽게 캐롤송을 틀어댈 리도 없을 테고, 그럼 진짜 낙낙하고 평안한 크리스마스를 선물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가을에 담가둔 모과차를 꺼내어 한잔! 축배를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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