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어떻게 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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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긴 남자의 고민
요즘 영화 [친구] 이후로 한참 주가가 오른 장동건은 그동안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고 들었다. 바로 '잘 생긴 남자 컴플렉스'라고, 너무나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얼굴로 뜬 스타 취급만 받고 진정한 연기자로 인정받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친구]에서 한 바가지로 인상을 구기고 나오면서 터프한 일면을 마음껏 보여준 후, 장동건의 인기는 말도 못 하게 치솟았다. 물론, 날씬 샤프 조각같던 예전이 더 좋았다고 하는 팬들도 있지만 말이다. (나같은 사람은 팬도 아니면서 옛날이 더 좋았지 하고 뒷북을 치고있다.)
너무 잘 생겨서 고민이었다니, 남자도 참 어려운 직업이다. 일반인도 아닌 배우가 말이다. 하긴 여자는 못 생기긴커녕 조금만 덜 생겨도 주연급으로 뜨지도 못 하는데, 남자배우는 좀 덜 생겨도 오히려 '친근한' 매력을 흩뿌리며 크게 될 수도 있다. 한석규가 잘 생겼다고 생각할 여자가 몇 명이나 될까? 지금은 귀여운 남자로 통하고 있는 차태현이 처음 모이동통신 CF로 떴을 땐 '어글리 모델'의 신분이었다는 걸 기억들 하실래나 모르겠다.
남자들이 처지에 따라서는 잘 생긴 것을 컴플렉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잘 생긴 남자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아직 확립이 안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예쁜 여자는 어려서부터 이쁘다 이쁘다 칭찬에 익숙해지면서 그것을 자랑으로 알고 스스로의 자부심을 키워나간다는 '공주유형'을 쉽게 확립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예쁜 남자는 주변에서 이쁘다, 잘 생겼다, 혹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성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는) 여자애 같다 등의 칭찬을 해대기도 하고, 특히나 '사내자식이 계집애 같다, (재수없게시리)' 등의 부정적인 반응까지도 빈발하다보면 자신의 미모에 대해 부담감 없이 순도 100%의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지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 포진한 생기발랄한 미소년들은 다 많든적든 간에 주변의 외압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경지에 이르렀거나, 실행중인 것이다. 존경할 만하다.
성적 대상화의 전당에 오른 남자
요즘의 매스미디어를 보면 단연코! 예쁘고 잘 생긴 남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국의 추이는 확실히 그렇다. 90년대를 우려먹었던 '부드러운 남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버린 것인지 당연한 조건 취급이고, 무조건 '예쁜 남자', 여자 뺨치게 이쁜 꽃미남들이 넘실거린다. 전엔 십대취향의 보이그룹 정도에나 한두 명 끼어 들었던 진짜 미소년급들이 요새는 제법 자주 보인다. 전엔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순정만화매니아들 사이에서나 통하던 미소년 신드롬이 이젠 상당히 대중화된 편이다. '꽃미남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들어선 것만 봐도 엄청난 발전이다.
무엇보다도 남자들 스스로가 귀여운 남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사태의 진지하고도 바람직한 측면을 말해준다. 무리 속에서 인기 있고 싶은 것이 인간과 영장류의 특성이다. 남자는 여자들이 터프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터프해 보이려고 애쓰지만, 미소년이 인기 좋다고 하면 어떻게든 이뻐 보이려고, 얼굴이 안 되면 귀염성 있는 태도로라도 인기를 얻으려고 애쓰게 되어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여자가 되기 위해 청순한 척, 귀여운 척 혹은 섹시한 척을 하는 것과 똑같다.
여자들도 계속해서 본격적이 되어갈 남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는 아마도 '민망해서'란 이유에서인지 섹시한 척하는 남자까지는 못 나오고 있지만 그것도 그리 먼 일은 아닐 것이다. 남자가 섹시한 척을 하고 그걸로 여자들한테 인기를 끌더라도 그게 남자의 명예에 해가 되지는 않는 사회분위기라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적 위신'의 문제라는 것은 인간에겐 놀랍도록 중요해서 '남자가 여자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는 까닭으로 개명한 요즘 세상에도 당연하다는 듯 수많은 여자들은 양보와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좁을 때, 사소한 차이는 결정적이 된다. 그러니 남자들은, 확실한 여자들의 환호라는 백그라운드 지원 없이는 자기의 섹시한 매력을 함부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여성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여자들이 경제력이 쎄져서? 여자들이 사회진출을 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여자들은 자기를 보호해줄 남자 대신 자기가 귀여워할 남자들을 선호한다. 경제력 있는 남자만 쳐다보는게 아니라 무조건 이쁜 남자 보는 재미에 모든 시름을 잊기도 한다. 즉 경제력을 가졌다고 자동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살며 생각하고 거취를 결정해야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미소년 신드롬이 점차 매니아에서 일반 대중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여자들의 미감의 독립이었다. 이는 당연 성적 취향의 변화를 동반한다. 먼저 만화 속에서나 보고 즐기던 어여쁜 소년 같은 남자를 현실 속에서도 원하는 여자들이 많아졌기에, 그 기대에 부응해서 스스로 예쁜 남자가 되어줄 남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미소년의 이미지는 마치 청순한 소녀의 이미지처럼 성적인 매력과는 상관이 없을 듯이 보이는 매우 고상하고 미적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역시 성적인 의미를 갖는다. 꼭 애인구함이 아니더라도 예쁜 남자 담론은 생활의 일부로 번성하면서 여자들의 새로운 성적 취향에 일조하고, 현실의 연애사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상화가 남자를 해방한다
남자들의 아름다움, 또는 성적 매력이라는 것은 대낮에 커피샵에서 벌이는 여자들의 수다꺼리로 적절한 주제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 남자들은 무시할 수가 없다. 아니,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뼈빠지게 일해 처자식 먹여살리면서, 이뻐지기까지 하라고? 이미 아저씨된 나는 죽으란 말이냐? 하는 불만들도 나올만 하다. 하지만 외모의 압력을 똑같이 받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남자가 되기 위해선 거쳐가야만 하는 과정이다. 이미 취업을 위해서라면, 성형수술도 불사하는 남자들의 얘기는 이미 뉴스거리도 안 되는 것이 요즘이다. 앞으론 장가가기 위해서 성형수술하는 남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를 두고 남자도 여자처럼 고생해봐라, 차원에서 즐거워하는 근시안적인 보복심리에서 벗어나 좀 넓은 시야를 가져보자. 외모경쟁의 압박이라는 부산물만 볼 것이 아니라 남자가 아름다와질 마음을 먹고 자신을 가꾸기 위해 매순간 돌아보게 된다는 인류사적인 전환을 보잔 말이다. '사내답게' 보이기 위해 남자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희생을 했다. 기쁘고 슬프고 두려운 더없이 인간적인 감정들도, 섹시하고 신기한 자기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도, 알록달록 예쁘고 귀여운 장신구들로 자신을 치장하는 재미도, 이 모든 것에서 파생되는 균형잡힌 인격과 인생의 폭도 남자는 가질 수 없었다.
남자들이 쓸데없는 서열싸움에 목숨을 걸고,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들 괴롭히는 건 욕구불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은 남자도 예쁜 옷을 입고, 어디 가서 귀여운 척을 하고 사랑받을 수 있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봉사 외에도 뭔가 진지하게 추구할 자기 인생을 갖고있다면, 그렇게까지 늙어갈수록 탐욕을 부리고 추잡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뒷구멍으로는 호박씨 열심히 까는 한국인의 양식이라는 것이 바로 이 '바람직한 남자'가 내몰린 막다른 골목이다. 그러니까, 이 웃기는 사회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무엇보다 남자를 해방해야 한다.
남자를 해방 안 하고서는 여자는 해방이 안 된다. 아무리 인권을 들먹이고 평등을 주장해도, 고를 만한 남자가 없이 다 치사빤스인 놈들밖에 없으면 그 올바르고 훌륭한 여자들은 다 어디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단 말인가? 남자들이 '사내다움' 속에 갇혀 자기의 '인간다운' 욕망들을 죽일 것을 강요받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복수를, 혹은 보상을 원할 것이다. 그 내역이 아주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는 걸 결혼생활을 해본 여자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윈윈 전략?
지금 여성이 전세계적으로 받고 있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 '응징'을 하고 바로잡으려 들어서는 별 효과가 없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범죄가 안 일어나려면 사회가 평안해야 되듯이, 대증요법보다는 원인박멸이 근본적인 것이다. (물론 치안도 잘 되어 있어야겠지만) 여성차별과 성폭력의 주범으로 '남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미련한 짓이다. 남자 모두를 죄인 취급하는 건 범죄자를 무죄인양 만들고 남자들을 공범으로 묶어주는 효과밖에는 안 낳는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남자도 스스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술먹고 깽판치는 "남자다움"의 즐거움이 아니라 자신내면의 즐거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여성의 규범"에 동화시키자는 것이다. 자기 즐거움이 없고 권력만 있으면 사람이 폭력적이 된다. 괜히 구중궁궐 대비마마들이 폭력적 군주성향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자신의 몸을 성적 매력을 내뿜는 사랑스러운 존재로서 즐기고, 남들의 기대를 받고, 시선을 자랑스럽게 누리게 된다면 굳이 욕구불만에 시달리며 스스로는 박탈당한 色을 밖에서 약탈해올 필요도 없고 치사하게 권력이나 힘을 이용해서 남들을 괴롭히는 재미로 살아갈 이유도 감소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성적인 대상화로 인한 폭력의 위험에도 똑같이 노출된다. 본래 폭력은 권력관계의 상하 문제였지 남녀의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는 단순히 여자들이 남자를 희롱하는 것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무차별 성희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남자가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하는 것은 벌써부터도 있었던 일이지만 앞으로는 그것이 더 두드러지고 공론화될 것이다. 그런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숨겨야만 유지가 되었던 '남자'라는 틀은 이제 적용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또 인류의 공적으로 처벌해야만 하는 범죄일 뿐이지, '힘없고 불쌍한 여자들'만이 당하곤 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아니다.
이제야, 남자들은 여자의 분노와 두려움을 이해할 가능성이 생긴다. 앞으로 남녀를 통털어 사회적 강자, 혹은 돈 많은 계급과 돈이 없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갈취당하는 계급의 구도가 형성되어버릴 위험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 충분히 생산적이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 가능성 역시 엄존한다.
여자들 또한 스스로가 빠져있는 피해자 혹은 약자 담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무 대책 없이 단지 남성중심사회를 비난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안일하고 조잡한 양심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차별 받는 여성이니까,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자기가 가해자가 아닌 것으로 만족하고 자기의 불만스러운 인생을 합리화하는 것은 그만둘 때도 되었다. 싸우려면 이길 싸움을 할 일이다.
남자는 여자와 다르다, 하지만 닮아간다
물론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러나 남자의 안에 들어있는 '위험한' 수컷성이라는 것은 다루기 나름이다. 얼마든지 무해한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데, 계속 비뚤어진 채로 내버려둘 이유가 없다. 남성의 공격성이 퇴화하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다. 미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섹스란 무엇인가?](지호 2000)에서 인간 남성의 짐승적 특성이 약화되는 이유로 인구조밀과 네오테니(neoteny, 어린애성)를 든다.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고 도시에 오밀조밀 모여살게 되면서부터, 계속해서 남자는 호전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린애성이야말로 인간의 특징이고, 인류진화의 경향성이다. 미숙아로 태어나 평생을 놀이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변해가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점점 남자들의 얼굴이 어리고 이뻐지는게 다 이유가 있었다. 먹고 살기 편하고, 싸울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문명의 방향은 계속해서 확산되고, 피드백된다.
그리고 어린애성을 늙어죽을 때까지도 간직하는 강자가 누구냐면 바로 여성이다. 지금 경제에서 또 전체적인 인간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분명히 여성화의 흐름이다. 위계구조를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바꾸는 것은 단지 탈산업화의 흐름이 아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모델이 필요하고, 여성적인 관계들은 훌륭한 준거가 된다.
그래서 미소년 신드롬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미감적으로 표현하는 사건인지도 모른다. 여성성, 혹은 어린애성을 최고도로 발휘한 남자가 바로 미소년이니까. 유행이야 변하기 마련이니 좀 있으면 섹시한 남자가 뜰 지도 모르고 귀여운 갑바맨이 뜰지도 모를 일이지만, 남자는 변화한다는 기본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욕망의 라이트를 자신에게 비추어야 한다. 내 속의 어둡고 어두운 욕망은 나도 몰라, 여자는 미스테리인가봐, 하면서 헛소리 못 하도록, 그러니까 최상품을 내놓아 보라니까, 하고 압박하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다. 투명한 욕망은 가능하며 공정한 관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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