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주긴 뭘 놀아줘? 스스로 놀아라 수동주의 놀이문화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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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강남역에 간 일이 있는데, 북적거리는 강남대로에서 무슨 유니폼 같은 것을 입고 뭔가를 홍보하고 있는 사람들 무리를 보게 되었다. 무슨 회사인지 정체는 알 수 없었지
만 떠억하니 등판마다 쓰인 말은 눈에 들어온다. NORAZO? 놀아달라니? 뭘 말인가? -0-;
자기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욕망이 없나 머리가 없나, 왜 자기 혼자 즐겁게 못 놀고 남한테 놀아달라고 하지? 하는 '진지한' 의문이 스며들었다.
유행 강박증
왜 이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놀 줄을 모르는 것일까? 남따라 장에 가는 한국인의 성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당연한 일이겠지만 또래문화에 집착하는 젊은이들에겐 더 심한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온나라의 네트화는 잘 되어있는 이 나라는 그 장점마저 단점으로 활용
하여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유행 따라 강남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탕진하는 듯이 보인다.
원래 남따라 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만큼 유행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이 나라의 유행이라는 것은 대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 퍼지기보다는 저쪽에 잘 사는 나라
들에서 일어난 유행을 그냥 따라가는 것을 골자로 하기에 더 문제가 심각해진다. 여기에 한국인의 들불같이 일어나 따라하기 성미가 결합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맨날 잘 나가는 음악
적당히 따라하고, 그보다는 아예 계획적으로 표절을 해서라도 인기를 끌면 그만이고, 요즘엔
표절도 귀찮은지 리메이크의주의를 내걸고 좋은 노래 망치면서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가요계를 보면 그 폐해가 정말이지 심각하다. 최근 중국에 한류바람이 분다면서 덩달아 좋아하
기엔 언제 들통날지 모르는 한국가요계의 사기성이 염려되고, 쪽팔리는 일이다.
일본 따라하기는 정말 심각하다. 늘상 일본 흉내낸 오락프로 보고, 일본 재즈밴드 무단도용한 시그널 듣고, 일본음악 표절하는 노래 듣고, 일본에서 유행하는 패션, 장난감, 군것질거리
까지도 따라하면서도 딴으로는 한국이 일본보다 나은 줄로 착각한다. 두말하면 입아픈 현실이지만, 그 놀랍지도 않은 현실이 어떻게 한국의 문화를 죽이고, 병신으로 만들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너무들 생각이 없다. 주체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지잘난 줄 알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문화산업이 돈이 된다더라, 하면서 싸구려제품을 팔아 한몫 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주소다. 그러는 동안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판에서 밀려나고
재능은 지쳐 닳아버리고, 천재가 있어도 싹은 짓밟혀 버리고, 결국 제대로 된 게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게 다 남을 따라서만 겨우 놀 수가 있는 한국사회에 기본 뿌리를 두고 있다
는 것이 잔인하지만 진실이다.
유행은 스스로 판단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그러나 곧이어 꽉 찬 지겨움을 선사하게 된다.
쉽게 얻은 재미는 쉽게 물린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스스로 놀면 된다.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 놀기'이다. 남들이 하는 짓은 나의 판단을 위한 기초자료일 뿐이다. 인터넷이나 잡지에
서 여러 정보를 얻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이것은 수많은 지도들일 뿐이고, 내 몸과
머리를 편하게 해주기 위한 보조물일 뿐, 내 휴일의 스케줄이나 놀기의 매뉴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놀려면 좀 제대로 놀자.
특권 강박증
요즘 듣기로는 TTL족과 Na족이 있어서 할인점 따라 움직이며 실속있는 만족을 얻는다고
들 하던데 과연, 카드회사가 정해준 메뉴 따라 순례하는 데이트가 노는 것일까? 뭘 먹고 싶은지, 뭘 하며 놀고 싶은지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서 '내가
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Na카드를 가졌다고 해서 '나'가 노는 것은 아니다. 물론 TTL
카드를 가졌다고 특권이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고.
나는 특권 강박증을 유포하는 011의 작전을 아주 맘에 안 들어하는 많은 사람 중에 하나이다. 나도 TTL카드를 갖고 있지만, 어쩌다 가끔 가게 되는 TTL존이 갈수록 화려일변도의
드넓은 궁전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있자면 특권은 무슨, 통화료나 정당한 가격으로 내려보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가입자들은 무슨 봉이라고 그런 쓸데없는 사치를 위한 비용과
차세대 통신 개발비용을 다 물어야하나? 지금이 무슨 박대통령 시대라고 이따위 소비자 착취를 허용한단 말인가? 이건 특권이 아니라 착취다.
사람들이 TTL특권에 집착하는 것은 지금이 민주주의 사회라서 너무나 만민이 평등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젊음이라는 것이 너무나 덧없기에 그 '특권'을 확인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카드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특권'이 보
장해주는 것은 자질구레한 몇 가지의 할인뿐이다.
노는데는 특권 같은 게 소용없다. 그냥 놀면 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대로 즐거운 것,
내 마음을 끄는 것, 아름다운 것을 좇아가면 되는 것이다. 할인 받을 건 당연히 받아야겠지
만, 그것이 나의 '놀이'를 침탈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될 일이다.
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아직 잘 노는 법을 잘 깨치지 못한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수동적이고 노예적인 놀이근성에 물드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자본주의 판은 이렇
게 저질러졌으니 계속 그렇게 돌아갈 것이고, 한국기업에 공익써비스나 문화백년지대계의
비전을 기대하기란 힘든 일이니까, 결국 개인들이 잘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최소한 이십대들부터는 생각을 좀 하면서 제대로 해나가야 되지 않겠냐는 게 나의 의견
이다. 좌충우돌 정신 못 차리는 짓거리는 십대에 졸업하고 이십대부터는 뭔가 자기 인생을
스스로 디자인하며 책임질 것을 당연시하는 선진국의 문화만큼은 배웠으면 한다.
차라리 놀지를 마라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남자가 여자들을 반드시 재밌게 해주어야 하는 미팅문화
다. 여자들은 머리가 없나, 감각이 없나? 모든 걸 남자한테 맡기고 자기는 오로지 미용과 패션에만 힘쓰면 다란 말인가? 그게 노는 건가? 아니지. 노는 게 아니라 놀아주는 거다. 여자
는 남자와 (생색내며) 놀아주고 남자는 여자와 (필사적으로) 놀아주고, 아무도 스스로 즐겁게 창조적으로 노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나마 스토리가 있고 이벤트가 있는 남녀의 미팅이 나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술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는 남자들의 술문화보다는 말이다. 원래가 젊은이문화는 몸
의 낭비를 과시하는데 주력하게 되지만, 하지만 그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결말은 비참해진다. 늙어서도 여전히 과시형 낭비 외에는 모르니 어느 순간에는 놀기를 그만둘 수밖에. 뻑
뻑한 몸으로 세상이 지워준 의무나 열심히 해내고, 그러다 정 힘들고 쌓이면 어디 날 데리고 놀아줄 사람 없나? 하고 추잡한 몰골로 돈지갑만 들고 헤매는 것이다.
이 지구 위에 '놀아야 한다!'는 당위는 없다. 놀 줄 모르는 사람은 놀지 마라. 차라리 집에서 발 닦고 잠이나 푹 자면 미용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좋은 책을 읽어 진정
짜릿한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 백배 낫지 않을까 싶다. 지겹고 재미없는 노동의 대가로서 어쨋거나 무조건 즐겨야만 되는 의무조항으로서 놀기를 실행할 필요는 없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잘 놀기 위해서는 연구와 개발이 필요하다. 여유를 가진 탐색 속에 진짜 흥미로운 것,
나를 끌어당기는 것을 찾아낼 때에만 '제대로 놀기'란 시작된다.
자기랑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가 곁에 없다고 좌절할 것은 없다. 혼자 놀면 되니까. 최근
출판된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를 보면 혼자서도 재미있게 잘 노는 방법이 짜안한 철학과 함께 잘 소개되어있으니 참고할 만도 하다. -0-; 그리고 늘 하는 얘기지만 인터넷은 뒀다 뭐
하나, 다 제대로 만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인 것인데.
머리로 놀아라.
돈으로 놀 수 있다고 무슨무슨 족이 됨으로써 잘 놀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예측가능한 삶은 언제나 침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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