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는 아주 강렬하며, 그 이유로 진지한 영화이다. 또한 아주 화려하며, 그 이유로 무심한 영화이다. [매트릭스]는 최대한의 분산된 시선을 통해 최고의 집중과 전능성을 획득하며, 그 순간 가장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는 과장법과 진지함으로 가득찬 만화와 게임을 사랑하는 세대를 위
해 만든 맞춤 써비스와도 같아서, 자신의 모든 진지함을 가벼움으로 날려버리는 번지르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우릴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1. 매트릭스? 난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크건 작건 잘 만들었건 못 만들었건 간에 모든 sf영화는 하나의 정서를 밑바닥에 깔아놓고 있다. 그것은 두말할것없이 '두려움'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제어가 불가능한 것같은 인간의 과학기술에 대한, 공포. [블레이드러너] 이후엔 인간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넓어져서, 나는 누구인가? 혹시
라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기억을 가지고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살아가는 안드로이드는 아닌가 하는, 기억과 육체라고 하는 자기기반 자체의 흔들림에서 오는 깊은 두려움이 추가되었다. 그 두려움들은, 대개 현재의 삶과는 상관없는 것임에도 '가능성'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현재에 엮어져 있어
진정한 두려움이 된다. 현재 과학문명이 이 가속도로 나갔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 조금만 삐끗하여도, 혹시 파시즘이나 자본의 논리 그대로 나아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에 반해 액션영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언제나 '크기'가 문제이다.
운동의 크기와 속도, 어떤 가슴졸아드는 긴박한 순간에서 어떤 절묘한 타이밍에 어떤 절묘한 액션으로 보는 이에게 후련한 쾌감을 주느냐, 그것이 과제인 것이다.
[매트릭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미래에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당할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는, 실은 [터미네이터]를 비롯해서 수도없이 들었던 스토리이고, 인간이란 종족 자체가 이미 없는 세계에서 전쟁을 벌이는 테란, 저그, 프로토스 종족들의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에서는 이미 선
사시대 얘기거리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두려움에 전염되기에는, 눈과 뇌를 사로잡는 너무나 화려한 비주얼의 충격이 크다.
'인간이 자신의 산물인 기계문명의 발달을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은 기계에 의해 사육되는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로서 [매트릭스]를 본 관객이 있다면, 그는 너무나 진지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너무 과거의 사람일 것이다. 현재의 관객은, 좀 정확히 말해보자면 [매트릭스]
가 그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꾸역꾸역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만 문화소비자들은 모두 그 화두에는 익숙해져있다. 그들이 가슴 두근거리며 보길 원하는 것은 아찔하도록 치솟은 고층빌딩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검은 가죽옷 여인의 모습이며, 게임 그 자체인 전투장면에서 그 엄청난 뽀다구의 바바리코
트를 휘날리는 키아누 리브스보다도 더 눈길을 잡아끄는 그 화려한, 느린 화면에 퍼져나가는 대리석 쪼가리의 춤들이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스피드]와 똑같다.
키아누 리브스의 어색한 연기마저도 정겨운 그 잘생긴 모습이 같이해서 더더욱 그렇지만,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끝내주는 연출로 인해 관객들은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액션의 롤러코스터, 또는 자이로드롭을 탈 수 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스피드]는 '사회에 원한이 있는 삐뚤어진 테러리스트의 도발을 응징하는 영웅'의 액션들이고, [매트릭스]는 '일상세계의 이면에 있는 기계의 인간지배라는 엄청난 현실에 자각하며 맞서 싸우는 영웅'의
액션들이다. 그럭저럭 잘 알려진 주제를 가지고 야무진 스토리를 엮어서 관객이 심정적으로 밀착되도록 하고 오로지 액션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것은 [스피드]쪽이 더 낫다. [스피드]는 그냥 액션영화지만 [매트릭스]는 sf액션영화니까 훨씬 복잡한 구조 때문에 과부화가 걸릴 위험이 큰 것은 당연할 것이다.
굳이 더 비교를 하자면
[스피드]가 롤러코스터라면 [매트릭스]는 자이로드롭
정도랄까. 끊임없이 오르락 내리락 속도를 내는 [스피드]에 비해 [매트릭스]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며 천천히 상승하면서 갖가지 풍경과 사건들을 맛보며 스스로의 시야를 넓히는 기회를 주면서 (공포의) 강도를 높혀가다가 일시에, 바로 원하던 그 '순간'에 돌입하게 한다.
그 순간은 게임의 절대절명의 순간이기도 하며 매트릭스 운용능력의 향상을 통해 무한히 끌어올린 정신의 능력이 물질계의 극한미분의 순간까지 미치는, 아주 철학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스푼은 여기 없다'고 색즉시공
色卽是空
의 정신을 내거는 포석은 아주 훌륭했다. 매트릭스의 개념이 정말 멋진 것은, '사이버스페이스'의 감각화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완벽한 '현실감'을 만들어냄으로써, 마음의 영역을 곧장 몸의 영역으로 대입할 수 있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교묘한 환상이다. 그러나 실제 경험을 완벽히 대체하는 가상 경험이기에 의미있고,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두려움을 구실로 하는, 완벽한 쾌감이다.
[매트릭스]가 거의 특허를 따다시피한 그 매혹적인 고층건물 사이를 건너뛰는 장면과 액션의 360도 초절미분의 과도한 슬로우모션은 워쇼스키 형제의 독창적인 산물은 아니다. 위에서 바라보는 높은 고층건물들의 짜릿한 감수성은 이미 많은 영화에서 시도된 것이었고, 1초에 12000개 프레임을 찍어 붙이는 방법으로 운동의 미분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플로모flow-mo 기법은 이미 [로스트인스페이스]에서 적절히 사용되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극한까지 운동을 미분해나가 시간을 증폭시키는 것은 오우삼의 주제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페이스오프]의 고강한 기술력으로 확인하시라.)
[매트릭스]가 거기서 한발 더 내딛어 만들어낸 것은 무한히 미분되는 시간을 지각함과 동시에, 그것을 나의 행동반경으로 할 수 있다는, 전례 없는
'완전쾌락의 기계'
이다. 허구란 정말 놀라운 미덕을 지닌 것이다.
우리는 찰나의 순간에 허공을 가로지르는 총알의 유려한 운동을 잡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훈련을 하면 몸을 던져 하늘을 가르며 점프할 수도 있고, 시스템을 깨닫고 나면 날아오는 총알도 멈출 수 있다!
[매트릭스]는 딱 n세대 관객의 수준에 맞게 만들어졌으며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은, 잘 만든 오락영화라고 생각된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내 주위로 다가오는 건물과 차들, 신호등, 사람들, 이 모든 현실 세계가 혹시 가짜는 아닌지, 헷갈리는 기분이 몇분간 지속될 정도로 '충분하게' 즐긴 나는, '정말 재밌다!' 한 마디만을 뱉었다. 별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거나 많은 말을 떠들어야할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어떤 관객에겐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어려운 내용이었다고도 하나, 홍콩영화와 sf를 즐기는 나같은 '일반' 관객에게는 전반부의 설명이 너무 길어서, 연출의 호흡조절 능력이
뛰어났긴 했지만 약간 지루함마저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짧은 액션 사이에 들어간 긴긴 설명들은 주인공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역할을 한다. 이것은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상황에 들어서게 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위한 기나긴 필요악만은 아니다.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 매뉴얼 책을 열심히 보듯이, 단계를 지나며 레벨업을 준비하는 익숙한 과정인 것이다. 이 지루한 과정을 착실히 밟아나가는 관객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것은 멋진 순간들이다. 어쩌면 이 모든건 다 하늘을 멋지게 날아보기 위한 구실일지도 모른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랬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 사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너무도 강렬하며 화려번쩍하고
매끄럽게 넘어가며 각 요소들이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끝내주는 sf액션영화가 되는 것이다.
2. 탈산업화 시대의 두려움과 욕망
만약에 진심으로 기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면 그 두려움은 그렇게 단순한 대결구도를 띌 수 없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sf에서 특징적으로 반복되는 '기계의 인간지배'라는 주제는 거대한 콘베이어벨트 시스템에서 노동하며 기계의 부속품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는 20세기의 두려움이다. 그러나, 왠만한 가전기계를 만지는 일에도 두려움을 갖는다는 쉰세대도 아닌 신세대들이 기계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일이 무엇이 그렇게 강하겠는가. 탈산업화 시대의 두려움이라면 포디즘 초기의 두려움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할 것이다.
20세기 전반, 하늘을 찌르는 듯 솟아오른 건축물들에 대한 매혹이 모더니스트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유년기의 경험부터가 고층빌딩이 친숙한 세대들에겐 포스트모더니즘은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철들며 익숙해진 세계의 작동방식일 뿐이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의 존재는 이미 익숙하므로 충격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익숙한 그 건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건물들 사이를 건너뛴다는, 도시민의 몽상을 더없이 만족시키는 것 정도가 되야 이젠 충격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다크맨]과 [허드서커 대리인]에서 특징적이던 현기증나는 고층빌딩의 장면들은 그때의 감동을 이제는([매트릭스] 이후에는) 전해주지 못할 것이다. [매트릭스]가 첨가한 것은 그 현기증나는 고층빌딩 사이를 가로지르는-떨어지는게 아니라 기똥찬 움직임이다. 중력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자연력에 반해, 가로지르는 부유력?!을 설정한다. 도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로는 가까이 [세븐]에서 바로 아래에서 본 도시의 빌딩 사이를 헤쳐가기가 있었고, [트레인스포팅]의 감각영상도 화려했지만, 이렇게까지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번지점프보다 휠씬 간편하고 안전하
게 떨어지는 공포와 쾌감을 맛보게 하는 것이 자이로드롭이라면, 그보다 휠씬 간편하고도 안전하고, 직접적인 망상을 만족시키는 것이 [매트릭스]표 영화가 될 것이다. 왜 직접적이냐면, 우리가 떨어지고 싶고, 가로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곳은 국적없는 별나라 성같은 유원지의 풍경 위보다야 당연 일상적인 도시의 빌딩 사이기 때문이다. 앞으론 아마도 대나무 위에서 결전을 벌이는 황비홍 대신 빌딩숲을 위아래 좌우로 누비며 전투를 벌이는 sf액션영화를 많이 보게 되지 않을까나. 공장 대신 도시 자체를 생산수단으로 하는 현재의 생산양식에서 그와 같은 백일몽을 부추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
성 있다.
워쇼스키 형제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시절 [메트로폴리스]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1926년작인 이 영화는 포디즘 초기의 그 압도적인 대량생산시스템이 주는 충격와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버린듯한 인간의 두려움을 더없이 강렬한 비주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세대가 갈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감수성의 차이를 이루는 '결정적 경험'이 다르다. [메트로폴리스]에서는 산업화-포디즘의 대량생산시스템이 충격으로 작용하지만 n세대에게 산업화는 '향수'의 차원에 든다. 탈산업화, 정보화사회에서 태어난 세대는 아마도 후에 탈산업화 사회의 특징적인 면들을 회고하며 향수에 젖을 것이다. 어쩌면 워쇼스키 형제는 현실보다 더 보수적인 감각을 영화에서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최첨단과 시대착오의 혼합은 아슬아슬하게 향수로 이해되고, 전통으로 읽힌다. 그리고 전통이란 아주 익숙하기에 쉽게 이해가능한 것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자에게 쾌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새로운 것과 섞여 적당량의 비율을 유지해야 하는 법이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는 아주 즐거운 영화가 된다.(이 정도로는 성에 안 차는 열혈 sf광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만약에 탈산업화 시대의 진정한 두려움을 영상화한다면, 가장 밑바닥에는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됨에 따라 그 많은 인구가 필요없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주제가 형성될 것이다. 컴퓨터의 발달이 과학과 인간의 생활 자체를 바꿈에 따라 상품은 인간 노동을 필요로 하는 물질계의 차원에서 점점 노동가치가 0으로 수렴되는 전자계의 차원으로 옮겨가니까 말이다. 그 변혁이 일상노동을 대체하는 놀이이자 예술, 삶을 낳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수의 인간들은 효용이 낮은 노동에 종사하는 노예나 다름 없는 취급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인간은 여러가지 방면에서 탈육신화해간다. 지금의 과학혁명이 계속되어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고, 뇌의 메카니즘이 밝혀지고,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의 지도를 받다가 보면, 인간과 기계의 이종교배(하이브리드)는 점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를 것이다. 기계와의 근친성, 그것은 지금도 가장 민감하게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주제이다. 심지어 '사이버틱 패션'이라고 하는 허울뿐인 유행 속에서조차도 만져진다. 그렇기에 '기계의 지배'라는 주제는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의식을 건드리는 두려움으로 와닿지 못한다. 도구로 생각하던 기계에게 엉뚱하게 당한다 -외부의 힘에 지배당하
는 개념이 아니라 신경절을 타고, 공기처럼 호흡하는 중에, 내 속 안으로 들어온 기계에 대한 긍정적이거나(도착), 부정적인 감수성이(감염?의 두려움)
형성되는 것이다.
지금 n세대의 다음에 오는 세대는 기계와의 뿌리깊은 근친성을 특징으로 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전망이다. 아직까지 젊은 세대는 단지 기계와 '친근'할 뿐이다. 다음 세대에는 기계와의 '도착'이 주된 이슈로 떠오를 차례다. 거의 현실감에 가까운 사이버스페이스가 일상적 수준으로까지 확장되게 되면,
그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는 명확하게 그 성향을 띌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게이머'는 이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원래 욕망에 대해서, 이미지는 가짜 실체의 이미지와 진짜 실체의 이미지가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에 대해 가짜라고, 사기라고 단죄를 내릴 수 없는 것과 같다. 그것과 버추얼 리얼리티가 뭐가 다르겠는가 말이다. 영화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무해하며 사이버섹스에 빠지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면에서 보면 [매트릭스]는 상당히 '고민없는' 게이머에 가깝다.
영화 초반에 네오가 불법 디스켓을 꺼내는 책이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인 것을 보면, 일종의 조크를 거는 것은 분명하다. 워쇼스키 형제는 순전히 비평가들의 수선스러운 반응을 예상하며 장난삼아 이 책을 들먹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본이 있네 없네를 따지기 이전에 완전히 가상
으로 창조된 세계 속에서 벌이는 게임인데 어쩔것인가. [매트릭스]는 '믿기 힘들겠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현실을 가상현실, 매트릭스로 끌어내리며 그 단계 이후로는 완전히 가상현실과 현실을 손안에 가지고 놀며 게임처럼 즐긴다. 이렇게 실용적인 운용방식이 있는데 고뇌에
빠질 리가 없다.
사실 n세대는 시뮬라크르(원본 없는 기호=후레자식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나면서 접하는 환경과 같은 것으로, 처음부터 인공적인 세계에서 자라난 자들의 감수성은 두려움 대신에 익숙함만을 보이며, 새로운 것을 첨가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선다. 그도그럴것이 우리는 이것을 게임(이라는 익숙한 양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상은 실제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시뮬라크르가 지배할 것이다' 하는 두려움은 정보를 유연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모자라는 경건한 식자들에게 맡기고, 쾌락원칙에 따라서, [매트릭스]는 실제와 허상을 고민하지 않고 뛰어오른다.
3. 잡종의 힘 / 오락의 부유력?
남들은 [매트릭스]야말로 21세기 영화의 모델이라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잡종의 도를 가장 열정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기존 재료의 짬뽕영화다. sf영화들 잔뜩에다가, 일본 애니메이션, 홍콩영화, 게임의 법칙에, 기독교신화까지.
(세부목록은 [뉴로맨서], [다크맨], [다크시티], [토탈리콜], [공각기동대], 오우삼 등등 끝이 없다.)
그렇다면 21세기 영화는 잡종의 미덕이 될 것인가? 그럴것이다. 뛰어난 잡종만이 생존하는 것은 정상적인 생태계의 일반법칙이며, 급변기에서는 절대적이기까지한 법칙이니까 말이다. [매트릭스]는 그다지 독보적인 영화는 아니다. 아마도 가장 값비싼 sf액션 영화라는 형
식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헐드우드를 설래게 만들었을 것이다. 화려하고 비싸면서도 지적인 잡종능력, 이것이 sf 단일작 내지는 사이
버펑크로서는 더 뛰어나다고 평가될 수 있는 [공각기동대]보다도 이를 많이도 '따라한' [매트릭스]가 더 인기있고 언급해야할 작품이 되는 이유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재능은, 많이들 얘기하듯이, 독창성보다는 많은 좋은 것들을 긁어모아 멋지게 버무리는 능력에 있다. 시작부터 이 영화는 짜깁기, 혼성물로서 자신을 내세운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까만 화면을 위에서부터 세로로 침범해들어오는 초록빛 글자들은 얼핏 봐도 끊임없는 일본글자(아마
도 가타카나)의 무더기이다. 이 초록 글자들은 [공각기동대]의 가로로 가는 것을 단지 세로로 세운 것이다. 이 아이템부터 시작하여 연결선을 목뒤에 꽂고서 전뇌공간(사이버스페이스)으로 고스트(영혼)가 다이브하는 [공각기동대]와의 유사점 등등 해서 많다. 특히나 초반부터 방점을 콱 찍는 것이 스미
스요원의 '구사나기 자세'이다. 이건 거의
'난 공각기동대를 베꼈어요'
, 하고 말하는듯한, 그러니까 이건 표절이 아니라 오마쥬라는 약간 애교성의 제스쳐 같다. 그 아이콘-바닥을 아작내며 내려앉는 특징적인 구사나기 자세-의 활용은 앞으로 헐리우드가 어떤 겸허한 자세와 기세등등한 속도로 일본 애
니메이션을 흡수하고, 압도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떤 징후를 나타내주는 듯싶다. 뻔뻔스레 뺏어오거나 어줍잖게 흉내내지는 않을 것이나, 그래서 더욱 무서워진다고나 할까?
또 하나의 굵은 줄기인 홍콩영화의 영향을 보자면, 화려하기 짝이 없는 무협액션은 역시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매트릭스 풍경과 반군 전사들의 뽀다구에 잘 어울린다. 현란한 특수효과 속에 묻힌 키아누 리브스의 쿵후자세는
어설프지만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표정과 상황과 어울려서 그런대로 말이 된다. 즐거움을 주는 것은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의 정신이 첨단기술과 만났을 때 펼쳐지는 놀라운 비주얼이다. 여기에 오우삼의 진지하고도 스타일리스트다운 액션-시간과 아이템들이 그대로 투입된다. 그리고 이 많은 것들을
통합하는 것은 바로 게임의 법칙이다.
단적으로, 모피스를 구하러 간 건물 로비에서 한판 붙는 장면을 보면 커다란 기둥 사이로 피하면서 재주를 피우며 적들을 섬멸하는 주인공들의 모양은, 구사나기가 인류진화도가 그려진 박물관에서 장갑차와 맞붙는 장면을 생각나게 하며, 얄쌍한 썬글라스 끼고 검은 바바리를 휘날리며 끝없이 떨어
지는 탄피와 함께 날라다니는 모습은 여지없이 오우삼이다. 이 장면은 대놓고 게임처럼 진행되는데, 한판 시작할 때와 끝날 때를 알려주는 '완전 게임 음악'까지 등장한다. [매트릭스]는 게임을 기본 포맷으로 하여 다국적 양식들을 이종교배(하이브리드)하며, 만화적 과장법이 모든 sf적인 진지한 요소
에 짤깍 붙어서 진정 통일성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도 가장 심각하게 제시하는 것은 아마도 네오의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무너지는 과정의 충격일텐데, 편안한 여행을? 이해를 위해서 등장시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안전띠매고 준비를 마치게 된다. '도우미 자세'의 모피스는 자상하지만 왠지 코믹하다. 무엇보다도, 심
각하게 고민할 시간은 없다. 우리는 몇분만에 빨간약을 먹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고, 역시 몇분만에 이제까지 알았던 세계는 모두 사라지고 인간이 기계에 의해 경작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하며, 각종 격투기를 익힌 다음에는 내가 과연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의심해봐야한다.
네오는 이 모든 것을 굉장히 어렵게 받아들이는듯 하지만, 실은 한번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는, 놀랍도록 단순한 캐릭터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최대 악역인 사이퍼가 '고통 속의 현실보다는 가짜라도 좋으니 편하고 안락하게, 즐겁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으로 인해 조직을
배신하는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이 놀라울 정도로 단세포적인 네오와 전사들의 '곧은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당면한 거대한 전투 앞에서 전혀 사심없이 임하는 이 전사들은 아마도 가미가제 병사들이거나, 아니면 (바로) 게임 캐릭터일 것이다.
[매트릭스]의 가벼움은 그 단순함에서 나온다.
근본적으로 [매트릭스]는 '하나의 진실'만을 허용하는 굳건한 전통 위에 있다.
진짜 같은 허상이지만, 그것을 깨어나고 나면 하나의 진실만이 남는다. 우리에게 어려운 점은 그것이 허상임을 깨닫는 것이지, 결코 마지막으로 디딜 하나의 진실마저 없다는 것
이 아니다. [매트릭스]의 매트릭스에 대한 입장은 분명히 '가짜'라는 것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해서도, 현실이라고 믿는 것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은 갖지 않는다.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신호에 불과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매트릭스]는 명백하게 가상이라고 알고있는 세계의
액션들을 진짜처럼 즐기는 우회로를 탄다. 단순하고 정연한 논리다. 근본적으로 물질세계에 대한 의심이 없다. 그 점에서 [매트릭스]는 안전한 놀이기구이다. 우리는 아무데도 여행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단순함으로써 게임이라는 포맷 하나로 모든 잡다한 요소들을 모아들이고도 좀처럼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한다. 오락의 부유력이라고나 할까, '가볍게 만드는 힘'은 놀라워서 아주 쉽게 이질적인 것들을 붙이고 하나의 꼴로 엮어내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동양정신은
참으로 편리한, 해석의 무한자유를 보장하는 소스로서 빈 데를 잘 메꿔주고 있다. 분명 매트릭스 개념은 '사이버스페이스' 개념의 확장 개념에 불과한데, 매트릭스에서 죽으면 죽어!버리고, 전화선이 차단되면 못! 돌아오고 등등의 말도 안 되는 (게임의) 제약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죽으면 몸도 죽
는다' 한 마디로 족한 것이다. 그러나 이건 게임의 법칙일 뿐이다.
게임으로서 [매트릭스]는 모든 혼합물을 이어붙이고, 20세기 막판의 경이로운 시각이미지의 파티로서 매끄럽고 빛나는 외관을 자랑하며, sf와 액션영화가 교차하는 최정점에 '극한까지 운동을 미분해나가 시간을 증폭시키는' 오우삼의 화두를 적극적으로 배치한다. 절대절명의 순간마다 등장하는 이
느린 시간들은 과장법이란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적극성을 지니고 있어서 [매트릭스]가 지닌 가장 진지하면서도 교육적인 측면이 된다. 매년 매시간 수동적으로 맞아들이는 시간이 아니라 운동에 의해, 달리는 나의 시각과 속도에 의해서 구성되고 발생하는
시간이다. 시각이미지가 더없이 촉각적이 됨으로써(손에 잡힐듯한 총알) 이미지와 물질의 수렴을 감각적으로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도 몹시 교육적이다.
스스로 잡종임을 자처하고, 오락으로서 승부하는 이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얄밉게도 주장은 전혀 하지 않고 안전제일주의로 물러나 있으면서도 톡 불거져나온 극한미분의 순간이 진공처럼 우리의 감각과 사고를 빨아들이듯 집중시키는 점에 있다.
4. 아날로그, 미래를 추억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구식 통신수단인양 취급받는 유선전화기만이 매트릭스와 접속할 수 있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이 심대한 오락이 성립되기 위하여 끼워맞춰진 몇개 안 되는 억지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스타일로서 이해해 주자면, 이 시절에도 여전히
필름을 돌려 영화를 찍는 고상한 취미, 돈을 내고 어두컴컴한 극장에 앉아 뭔가를 기대하고 앉아있는 낡은 취미와 어울리는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로 몸을 두르고 고래의 정서와 낡디낡은 윤리를 따라 살아가는 탈산업화, 정보화사회의 인간들에게 '아직 존재하는 것에 대한 향수
를 벌써부터 불러일으키는', 시간을 '질러가는' 즐거움이다.
[매트릭스]는 첨단의 돌진과 아날로그의 향수를 뒤섞어 탈산업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리며, 숨겨진 불만과 두려움의 수위를 조절하려
애쓴다. 지금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n세대는 이 영화를 '필수 2번 보기영화'로 지정함으로써 후한 점수를 주었다. 시종일관 쾌
락의 코드로 철학적인 문제까지도 통합해버린 [매트릭스]는 가장 대중적인 입맛에 맞는 재미를 제공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맨끝장면의 전화거는 네오와 넓어지는 전망의 (버즈아이뷰) 도시 컷들은 [론머맨]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불합리한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
서 물질계의 삶을 그만두고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부활하여, 그 시작으로 전세계의 전화벨을 울리는 론머맨의 숭고한(정말 그렇다...) 시도와 매트릭스
운영의 도를 깨달아 슈퍼맨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키아누 리브스의 왠지 코믹한 모습은 대비된다.
분명 같은 능력을 얻은 이야기인데도 이리도 정반대의 분위기가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유머가 아닌 것으로는 어떤 진리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시대정신 때문인가? 스스로를 숨기고 포장하지
않고선 어떤 '주장'도 망설여지게도 정보의 수명은 짧아져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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