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는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어서 비평이 필요없었다. 모자른 게 있어야, 모호한 게 있어야 설명을 하지, 무슨 말을 더 갖다붙일 이유를 찾을 수 없기에 난 평을 하는걸 즐거이 단념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나를 편하게 해주는 명작을 만났는지, 정말 고마이 여기면서,,, 하지만 한 가지 수고는 하기로 했다. 뛰어난 작품에 대한 대접으로, 어록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공각기동대 비평이라기보다는 공각기동대 어록 및 주석의 성격을 지니며, 어록으로 봐주기를 희망한다. ^^
사족이지만, 내가 맨처음 본 것은 애니매이션이며,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매이션 공각기동대가 원작인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 공각기동대보다 못하다거나, 심지어 원작을 배신하는 졸작이라는 박무직씨의 견해에는 저얼대로 반대한다.
나의 공각기동대는 애니매이션 공각기동대이며, 나중에 본 원작은 상당히 느끼한 미녀 사이보그에도 불구하고 그 섹시하고도 코믹한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있었지만, 작품에 대한 본질적인 평가 자체를 빗나가게 하는 차이는 아니었다.
두 작가 사이에 스타일과 세계관의 차이가 있지만, 오시이 마모루는 시로 마사무네의 세계를 적절히 자기것과 접합시켜 하나의 빼어난 작품을 만들었고, 도리어 원작에 쓸데없이 붙어있는 여성비하적인 양념을 걷어내고 구사나기를 하드보일드적인 스타일로 살려냄으로써, 원작의 선입관이 없는 나의 눈으로 봤을 때, 문화사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1. 유사체험이건, 꿈이건, 존재하는 사실이건 ,,, 인간이 한평생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아주 적은 양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실재와 가상, 이들의 구분은 인간을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불행에 빠트린다. 너는 이만큼 크지 않고,,, 또 너는 이만큼 가지지 않았고,,, 티비를 보는 것과 마약을 하는 것은 실은 같은 이유인 것이다. 그 구분을 잊는 것.
너무나 뛰어난 일격이 이 구분에 가해지는데, 그것은 개체의 인간이 한평생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아주 작다는 것. 무엇이 실재하는 것이고, 또 무엇이 허상이며, 무엇이 가치있는 것이고, 또 어떤 명제가 틀렸다는 것, 그런 가름들을 무효화하는 것은 바로 그 작디작음이다. 실제로 어떤 진리도 완벽하게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간은 스스로의 진화단계에서, 상황들 속에서 가장 적절한 진리를 가지려고 할 뿐이다. 그것을 자기의 아집들로, 고매한 이상이나 보편적 윤리, 인간이 잘살기 위한 당연한 조건들로 우기고 있지.
작디작음은, 인간이나, 혹은 전자머리가 가지고 있는 복잡방대한 네트워크 안에서 벌어지는, 그 네트워크와 다른 네크워크들의 연결과 소통 속에서 발생하는 진리들에 대한 절대적인 증거다. 진리의 보편타당성에 대한 절대적인 반증. 오로지 나는 나의 두뇌 안에 걸려지는 사건들과 감정들 속에서, 즉각적이고도 투명한 나의 진리를 주장할 수 있다. 바로 '난 이렇게 하기를 원한다' 라고 하는 것. 구사나기의 망설임없는 행동들이 가지는 명쾌성은 단지 전자머리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열린 네트워크 속에 있는 하나의 개체 두뇌로서, 혹은 하나이든 여러개이든 상관없는 두뇌로 구성된 하나의 주체로서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미덕인 것이다.
내 주장은 편협한 파충류뇌의 명령밖에는 모르는 이기적이고 치사하고 난폭한 영장류들의 꼬장을 용서해주기 위한 구실과는 전연 관련이 없다. 그들의 아주 편협하고 미련한 진리에 대해서는 언제나 '무시'라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을 뿐이다. 한 가지 방법 외로는 소통을 거부하는 영혼은 목졸려 죽을 것이다. 천천히 진행되는가, 빨리 진행되는가의 차이만 있다.
기본적으로 이 방대한 네트워크들 속에서 한 주체가 가지는 넓이는 대륙을 휩쓴다. 자발적으로 자기를 내어놓고, 또 남을 받아들이는 열린 개체들은 좀더 넓은, 활성화된 주체를 구성하게 된다. 우리는 사이보그를 본받아야 한다. 또한 [론머맨]의 교훈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자의식은 부르조아가 만든 민법과 형법이 규정하는 사회적 관계의 것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주체는 피부로 둘러싸인 유기체 개체별로 발생하는 법이 없다. 우리는 단지 네크워크 속에서 구성된다. 그 사이에서.
2. 사람이,,, 자신으로 있기 위해서는 놀랄 정도의 많은 물건들이 필요하지
도무지 처리곤란한 자아라는 것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소설과 영화를 만들었다. 없애려 하나 실패하기도 하고, 드높이 외치며 자유로운 영혼 혹은 자율적 주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자아는 확실히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가지고 있는 것이다. 침팬지도 하이에나도 남과 다른 자기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로 자기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물론 자기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자아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수사적으로만, 그렇다.
인간이 자아로 고민하는 것은 자신의 육체로 다른 이와 다른 하나의 '사물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언제라도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얼음지치다 잘 못 넘어졌는데 재수가 없을래니까 스피드 스케이트 날이 쓱 지나가면 절단날 수 있는 손을 가지고는 나는 무엇일까? 를 생각하고 앉아있다. 탈수중인 세탁기에만 집어넣어봐도 처절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육신, 혹은 나라고 하는 것은 아주 다치기 쉽고, 내가 먹어치우는 사물들과 아주 비슷한, 하나의 사물이다. 물질대사 외에도 고단위 정보처리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 인간의 우월함과 고귀성을 주장하는 것이 사이버네틱스에 의해 도전받는 지금, 자아라는 것은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에게 부모와 족보로써 존재가치를 일러주듯이, 자아에게 생물 개체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의식화 정보처리 프로그램의 뛰어남이나, 언어화의 미덕으로써 존재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늘 사이버네틱스에게 추격당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새로운 차원으로 바뀌어야할 것이다.
인간의 자아가 도전받는 것은 대개 외로움에 의해서다. 인간은 고단위 정보처리 능력을 가진 뇌 덕분으로 자기를 둘러싼 세상과 자기자신을 바라보며, 인식과 판단이라는 것을 하지만, 한편으로 이를 잡아주며 유대감을 확인하는 영장류로서의 인간은 다른 이들의 사랑과 접촉, 인정을 원하는 것이다. 자만심 가득한 자아로서는 남들과의 거리를 요구하지만, 단지 한 마리 유인원의 후손일 뿐인 나의 몸은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나의 자아는 나의 자존심이 그 뿌리는 먼옛날 파충류시절의 고집스런 세력권 싸움하는 작은 뇌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기 싫어하며 '언제나 상처입는 자신의 감수성'을 나무란다. 그 모든 오래된 싸움을,,, 그 모든 오래된 고민을,,, 계속해야 할까?
차원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인간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을 친구를 가지고 있다면, 혹시 자기를 거절할 지도 모르는 타인을 두려움과 적개심을 가지고 대할 이유는 줄어들테니까. 인간이 자본주의를 발명한 이래 계속되는 '개인화 장비'의 발달은 개인의 대인의존도를 크게 낮춤으로써 싫어도 필요에 의해 마주보는 관계들을 많이 없애주고 있다. 이를 인간소외, 고립화로 해석하는 자들은 중대한 착각을하고 있는데, 마치 개인화 장비들이 외로움이라는 악을 발명한 것처럼 망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오라는 큰 악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외로움이라는 작은 악이, 증오가 줄어들자 더 잘 보이게 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개인화 장비는 기본적으로 외로움을 깨트릴 방도들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물론 발달된 개인화 장비의 사용법을 쉽사리 배우지 못하는 구세대들은 남들의 자유나, 외로움을 보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왜 전처럼 가족이 화목하게 모여 지루한 그들의 일생을 되풀이, 전수받지 않느냐고 윤리나 인간미를 들먹이며 따질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그들의 증오나 체념, 외로움을 한꺼번에 다 받아들이기보다는, 게임을 하고 티비를 보고 PC통신을 하면서 주어진 자유에 들러붙는 외로움을 해결할 다른 방법들을 개발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닌가?
나는 늘 테크놀로지가 윤리를 다이어트한다는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개인화 장비는 인간의 증오거리를 없애주며 더 가볍고 넓은 만남을 주선하고, 인간이라는 종 자체를 더 나은 차원으로 옮겨가도록 훈련시킨다는 점을 강조하련다. 놀랄 정도로 많은 물건들-것들,,, 이것은 다른 것을 위한 놀랄 정도로 많은 테크놀로지로 대체될 수 있다. 인간의 자아라는 것은 그림그리기와 비슷해서 다른 것으로 나가기 위해선 끝끝내 지우지 않으려는 기본 스케치가 존재하는 한편,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전연 새로운 몸을 입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자기자신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수많은 지점들에 맞닥뜨리는 속에서, 자아라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진다.
3. 2029년의 사람들은 기계를 사랑한다
이 기계는 분명히 말하지만 도구가 아니다. 인간의 일부이자 인간 또한 이것의 일부인, 혹은 배우자인 기계, 인간을 발생시키는 기계이다. 인간이 나무작대기를 쓰는 법을 익힌 이래, 불을 지펴 고기를 구워먹은 이래, 기계는 인간의 도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복잡해지고 인간과 뗄래야 뗄 수 없이 이어져 인간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가 되었다. 이미 그를 도구라고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벌써 오래전에 우리의 감각이 되었고, 환경이 되었으며, 두뇌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과 기계에 대한 가장 명쾌한 서술인 안토니오 네그리의 말을 들어보자.
"주체성의 생산은 언제나 이종교배hybridization, 경계교차의 과정이다. 그리고 현대 역사에서 이 주체적 혼성물은 갈수록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접속면에서 생산된다."
[디오니소스의 노동 1]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공저(갈무리 p.46)
컴퓨터를 단지 도구로만 보는, 혹은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이들은 이 얘기를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목숨처럼 자동차를 사랑하듯이,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애인처럼 여긴다. 우리는 단지 유용한 써비스만을 제공받지 않으며 그 소통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감각들, 사랑들을 느끼고 기억하고 잊어버리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를 만든다. 주체인 인간 개체들이 컴퓨터라는 도구를 통해 외부세계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인간 개체들과 컴퓨터와 전화선의 만남이 하나하나의 네트워크의 가지를 만들고, 그 활동들, 스파크들 속에서 주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텔레비젼에 대해서도, 혹은 구닥다리 매체인 신문이나 책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컴은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적이며, 좀더 즉각적인 반응으로 더 적극적으로 주체생산을 촉발한다는 점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 강력한 힘이 가지는 차이는 결정적이다.
"기계는 주체의 특질들 중의 또 하나의 어떤 것으로서, 주체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 구성부분이다. 그것은 어떤 부속물이나 인공보철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체는 그것의 핵심, 그것의 성질에서 보면 인간이면서 동시에 기계이다."
4. 너의 뇌파에 오늘은 잡음이 많다. 무슨 일인가? -생리중이야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종족번식의 목적을 위한 기관을 가지고 있는데, 생리당사자인 여자들은 이를 불편하기 짝이 없어하며, 손해 없이 없앨 수만 있다면 없애버리고 싶어한다. 인간의 각종 감각능력, 판단능력, 신체능력의 최대치를 뛰어넘는 인조인간이 이런 인간의 약점마저 가지고 있는 것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할 것인가? 단지 오리지날을 복제한 모델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인조인간이 약점마저 감수하는, 스타일을 간직한 모습으로 태어난 것임을 말해준다.
중요한 것은 기계가 감수성을 갖는 일이다. 전자머리가 인간과 마찬가지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좋고 나쁜 것을, 아름답고 추한 것을 구분하는 판단력이라는 것을 가져야한다. 판단력은 결코 1+1=2, 살인은 죄악이다 식으로 입력되어서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완벽한 도덕 프로그램도 이성 프로그램도 판단력을 탄생시킬 수 없다.
판단력은 자기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계의 소식을 언제나 자기의 상태와, 목적과, 욕망과 관련한다. 자기라는 것을 갖고 있는 지능체만이 판단력을 가질 수 있다. 자기보존이라는 것에 흥미가 없는, 자기의 확장과 외부세계의 향수를 욕망하지 않는 인공지능은 판단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외부가 자기에게 비추이는 것, 혹은 자기가 빨아들인 세계,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감수성이라 부르는 것이다. 감수성이 없으면 판단력이 없다. 이를테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들은 음악이 아닌 음악에 대해선 흥미가 없는 평론가들은 모두 감각성장을 멈춘, 즉 판단능력이 결여된 자들이다.
여담으로, 구사나기의 생리는 단지 수사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는데, 나의 추리는 이러하다. 수많은 각각의 기관과 기능들에는 각각의 흐름과 버그가 존재한다. 그 버그들을 처리하는 메카니즘 역시 존재하고, 이것의 버그도 존재한다. 이러한 흐름엔 어떤 기간의 집중적인 '버그 발생기간' 이 있을 수 있고 이를 '생리' 라고 부른다. 이 기간엔 버그가 빈번하지만 버그발생기간의 내력으로 해나간다. 생리가 없는 때는 당연히 버그에 대한 부담없이 일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실용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당연히, 구사나기의 생리는 미학적인 이유에서 있다.
5. 단위 전투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동일 모델로 구성된 시스템은 어딘가 치명적인 약점을 갖는다
생명체 다양성 전략과 같은 이유이다. 암수 성의 출현 이전부터 시작된 생명의 성은 유전물질을 주고받음으로써 엄청나게 유연한 환경적응을 해내었고, 변화무쌍한 성을 암수로 제한한 동물과 식물들이 발달한 후에도 역시 그 엄청난 조합의 가능성은 한 개체 안에, 종족 안에 엄청나게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는 환경에 적응하고, 또한 이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여유분을 조성했다. 우리가 가진 뇌, 우리가 가진 DNA, 어느 것 하나 지나치게 풍족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개체가 그대로 영원히 남지 않고 자기와 같으나, 전혀 다른 '자식'을 낳고 '죽음'으로서 생을 마감하는 방식은 인류라는 별난 종족의 발명으로 인해 이제는 좀 다른 방식의 진화를 점쳐보게 되었다. 다양성은 암수 외의 다른 방법으로도 생산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너나 할것 없이 자아의 병에 시달리고 있는 인간들 사이를 메우기 위해 인류보안계획이라는 무식하기 그지 없는 합병책을 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야말로 우리를 불행과 느린 자살일 뿐인 가련한 인생으로 추락할 위험을, 죽음을 내쫓아줄 수 있는 것이다.
차이는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인 기계, 특히나 인조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강렬히 제시된다. 우리의 주인공 구사나기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특수 프로그램으로 태어나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가 된 자기의 '닮은 꼴'를 만나며, 그와의 결합으로 네트워크의 자유에 도달한다. 인간은 자기와 다르나, 같은 인조인간을 따라 새로운 주체로 나아간다. 인간은 기계를 통해서만 자유를 얻는 것이다.
6. 결점이 없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으나 디버그가 불가능한 프로그램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중심주의에서 아직 못 벗어난 자들은 아무도 쥬라기 공원의 모든 시스템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한 컴퓨터가 가져올지 모르는 재앙을 경고한다. 그러나, 특별히 지구 전체, 혹은 우주 전체의 모든 운행들을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관제탑---가이아나, 신---이 없으면 금단현상을 일으키는 서구의 불행한 전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런 촌스러운 언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
프로그램이 변천하는 방식 역시 생물의 방식과 닮은 점이 있다. 결점은 수정할 수 있다. 환경엔 적응한다. 부적응이 밝혀지면, 다른 방식을 찾아낼 것. 조건을 0에 놓고 시작할 수는 없다. 완벽한 통제, 어떤 경우에서라도 대처할 수 있는 완벽한 지성,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불확실성과 적절한 유추 사이에 균형을 잡고 '잘해나갈' 수 있는 지능체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는 디버그가 가능하다.
7. 어린아이일 때는 말하는 것도 어린아이처럼, 생각하는 것도 어린아이처럼, 그러나 어른이 되면 어린아이 때의 일을 잊는다
이 얘기에 나는 싸아하니 떠오르는 니체의 추억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듣기론 성서가 원전이라고 하지만..^^;;) 아주 단순명쾌한 교훈이다. 인간은 유인원의 기억을 잊고, 다리를 건너가야한다. 편협과 질투 허영심 상처받은 자존심 스스로 깎아내린 욕망으로 점철된 인간이란 존재를 버리고, 전혀 새로운 관계로, 전혀 새로운 네크워크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환경이라고 부르는 것과 진정한 일체가 될 네크워크 속의, 사이의 영혼으로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즐거이, 훌훌 잔재를 털어버리고 우리는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여기엔 인형사용이라고 불리웠던 프로그램도, 소좌라고 불리웠던 여자도 없다."
(사진 출처:http://my.netian.com/~younhm/ghost 및 http://my.netian.com/~yjg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