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골드마인] 부천99 씨네락-꿩먹고 알먹으려다...9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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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다녀온 부천 영화제 씨네락나이트는 한 마디로 미스테이크였다. 이 더운 날 그 먼 부천까지 가서는,
이틀전에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은행에 가서 입금하고서 간 보람이 전혀 없이, 엉뚱한 안경만
깨먹고 왔다.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를 그동안 눈독만 들이고 가지 못했던 나는, 이번만큼은 꼭 가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보고싶었던 것은 벨벳골드마인으로, 내가 좋아하는 이안 맥그리거도
나오고, 얘기를 대충 들어보니 화려한 영상미를 약속하는 듯하야 그리고 시네락나이트라는 패키지?로
델리스파이스도 나온다고 하니 그야말로 꿩먹고알먹고가 아닌가... 다른 건 못 보더라도
이것만큼은 꼭 봐야겠다 하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7시반이 시작인 이 영화가 영화시작하기 10분 전엔 입장을 완료해달라고 했기에 일찍부터 수선을 피워 갔더니... 세상에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줄을
좍 서있다. 현매가 많은 것인가... 했더니 예매한 사람에게 표를 주는데 좌석이 없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도대체 예약은 뭣때문에 하는건가? 어이가 없었다. 어떻
게든지 이상한 데 앉지 않기 위해 줄을 서서 (대개는 철퍼덕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8시까지 이어졌다. 공연에 앞서 밴드들이 리허설을 아직 못 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밴드가 늦게 와서인지 현장 정비가 늦어져서인지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원래 우리나라 공연문화가 30분 늦게 시작하는 건 기본이니까 미리 계산한 것이 있
든가 무슨 믿는 구석이 있겠지, 하고 철썩같이 믿고 나는 기다렸다. 설마 영화가 두 시간이 넘을 줄이야 알았는가. 설마 길어야 두시간이겠거니, 한시간 반에서 두
시간 사이면 8시에 시작하더라도 10시엔 대충 끝나고 한 밴드 정도는 보고 갈 수도 있을거다. 그런데 관객이 많다는 이유로 8시 20분이 넘어서야 영화는 시작됐
다. 그리고 영화는 2시간도 더 되는, 긴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대충 말해서 글램락스타가 어떻게 70년대 젊은이들을 매혹시켰나 하는, 10년이 지난 80년대에 와서 그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인데, 회고하는 시점이
80년대라는 게 우습긴 하지만 그럭저럭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편이라서 잔재미는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 남자가 워낙에 매력적으로 생겨서 그거 구경하는 재
미에라도 다른 건 왠만하면 용서해 줄 수도 있었다. 내내 자아도취적인 연출, 양성애자들 무더기에다가 나중엔 심지어 나레이터 역의 남자까지 게이 계열에 합류
할 때는 무지 깼지만, 그래도 잘 생긴 남자들의 동성애니까, 봐줄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너무 길었다. 좋은 구경도 한두번이지, 점입가경으로 계속되는
애정행각은 역겹다고까지는 보지 않았지만, 정말 바보같았다. 왜들 그렇게 사는 건지. 예전에 [도어스]를 보고 감명받을 때와는 달리 내가 커서 그런지, 그렇게
허무를 향해 치닫는 젊음의 낭비는 바보스러워 보인다. 뭐 그거야 보는 사람의 시각 차이니까 그들의 의견은 나름대로 인정을 한다 치자, 그래도 별로 설득력이
없는 자아도취였다.
그래도 건질만한 것은 남자들의 화장에 대해서 좀더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글램락과 동성애가 어떻게 상관이 되는지도 몰랐던 나로서는 남자의 꾸미고 싶은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엉길 때 동성애와 만나는 지점이 닿아있다는 것을 안 것은 작은 수확이다. 하지만, 이 수확이라는 것도 이거라도 없으면 너무 억울
해서 약간의 과대포장을 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중간에 이안 맥그리거를 본 두 사람의 눈동자에 뜨던 하트와 달러의 유머에 웃어제낀 관객의 심정과 비슷
하다. 점차 지루해지는 차에 그거라도 있어서 한 번 웃고나니 좀더 버틸 힘이 생겼다. 그 장면마저 없었으면 지루해서 나가는 사람들이 좀더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락은 과연 창녀인가... 락스타가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이 오로지 그 많은 대중에게 성적인 매력을 뽐내고 그들에게 사랑받는 신기한? 애정형태를 실천하는
것인가... 다른 것을 하는 건 과연 불가능한건가... 락이 뭔지 회의하는 건 아직도 하고있다.
영화가 끝나니 10시 반이었다. 만약에 공연을 본다면 차가 끊긴다. 부천에서 일요일 그 시간에 택시가 몇대나 있을 것이며 또 요금은 얼마가 나올 것인가. 대부
분의 관객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르르 몰려나와 택시타고, 버스타고, 전철타고, 집으로 갔다. 아마도 부천이 집이거나 그날 밤샐 작정을 하고 온 사람들만
이 밴드들의 공연을 봤을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은 너무 착하다. 어느 면에선 그래서 한국영화를 망치는 지도 모르겠다. 도대체가 기본이 제대로 되지 않아도 아무 말 않고 영화를 향한
애정으로 참아주니 말이다. 집에 가느라 바빠선지, 아니면 너무 지쳐서인지, 아무도 항의 안 하고 그저 열심히 자리를 뜬다. 실은 그렇게 무성의하게 일정을 잡아
놓고는 관객들이 공연은 하나도 못 보고 자리를 뜨게 만든 것은, 환불을 요구해도 할 말이 없는 주최측의 잘못이다. 도대체가 10시 반에도 아직 시작 안 한 공
연을 보고 부천에서 서울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말이다. 그것이 9시반에 시작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무리가 있는 일이니까, 일정 자체를
잘못 잡았다고 봐야한다. 게다가 관객이 많아서, 탓을 하는데... 왜 벨벳골드마인은 그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 번밖에 상영을 안 하는 것이냐 말이다, 첨부터.
만약에 씨네락나이트가 아닌 다른 상영이 있었으면 영화가 주목적인 사람들은 글로 가고, 꿩먹고 알먹고 할 사람은 씨네락 가고, 사람이 이렇게나 몰리는 것은 피
할 수도 있었다. 최소한 욕심부린 내가 잘못인가부지... 하고 마음을 위로하기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지정좌석이 아니라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당한 피해 때문에 더더욱 이를 갈 수밖에 없었지만, 역시 영화 하나 보려고 교통 불편
한 그 먼데까지 와서 똥개훈련하듯이 줄맞춰 앉아 몇 시간씩 기다리는 것이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기본자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기본자세는, 심심해서 혹은 재밌을 거 같아서 영화를 고르고, 표를 사고, 의자에 앉아 팝콘이나 먹고 노닥거리면서 기다리다가 영화를
보는 것이다. 손쉬운 오락으로서의 영화의 본분을 망각하고, 수련회를 방불케하는 요상한 줄세우기를 하는 영화제란 정말 한심스럽다. 그런 식으로 해서 잘 커보겠
다는 건가? 먼저 표를 산 사람이 좀더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상식일텐데, 그것을 제대로 지키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시간 전
부터 와서 기다리고, 뛰어들어가는 것만은 피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가 무슨 일본 오타쿠라고 목숨걸고 작품을 보러 뛰어다닌단 말인가? 그러다가 정말 사고날
뻔 했다.
내 안경을 들이받은 여자는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고는 내가 정신을 추스르는 새에 도망가버렸다. 어딘가 남아있을 자리 찾아서. 내 색안경은 97년에 무테로 맞
춘 동그랗고 아주 예쁜 파랑색의, 내가 몹시 아끼는 물건이다. 올해 들어서 유행한 무테 안경에 편승해서 길거리에서 사 쓴 소모품이 아니다. 내심 나의 앞서가
는 패션감각을 자랑하게 만드는 썬글라스였고, 그걸 썼을 때는 언제나 몸가짐도 조심했다. 뿔테와 달리 깨지기도 쉽고 섬세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리 끼
우는 조임쇄 바로 옆으로 깨어지면서 눈 옆에 아주 살짝 스치는 상처만이 났다. 만약에 눈에 상처가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부천 영화제는 관객들에
게 무리한 자리싸움을 시킨 죄값을 치러야 했을거다. 아무리 돈이 들어도 난 소송한다. 옆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안 보고 무조건 자리찾아 뛴 여자도 잘못
을 했지만, 그렇게 절박하게 뛰어다니도록 만든 주최측의 과실이 더 근본적이라고 본다.
어쨋거나 도망가버린 그 여자는 나쁜 년이다. 나도 자리에 눈이 어두워 앞만 보느라고 미처 피하지 못한 죄가 있으니 절반씩 상호과실이라고 생각했고, 그 귀중
한 안경이 부서진 일차 충격에서 벗어나 상처가 없나 살피고서 문제를 해결해야지 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여자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런 때 자기 과실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복구비용을 분담하는 것은 당연한 시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발을 밟아서 신발을 더럽힌 정도라면 미안하다는 말로 족할지 몰라도, 안경이 깨
지는 건 상당히 위험에 근접한 사고다. 내 안경이 길에서 파는 만원짜리라고 착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쨋거나 유리가 깨지도록 머리를 부딪혀놓고는 안부도 확
인 안 하고 달아나는 것은 무슨 뻔뻔함인가.
도대체 자리가 뭐길래, 그보다는 영화가 뭐길래 그런 웃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 다치지는 않아서 그냥 참아보긴 하지만, 입장료에 수리비에 택시비까지 엄
청나게 비싼 값으로 본 영화다. 앞으로 볼 영화 최소 여덟 편 이상이 다 날라갔다. 안경이 제대로 복구가 될지, 그것도 확실치 않다. 똑같은 알이 없으면 돈이
배로 들테니 돈도 돈이지만 나의 유서깊은 보물이 망가진 나의 억울함은 어디 가서 호소한다 말인가.
어렵사리 준비하고 운영하는 영화제에 대하여, 난 되도록이면 나쁜 얘기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불평없이 서서 기다렸고 더우면 부채질하며 영화봤다. 하지
만, 늘 이런 식이라면 어느 천년에 가서 한국영화 발전을 이룩할 셈인가. 만약, 헐리우드 영화가 직배를 할 뿐만 아니라 영화관마저 직접 운영을 해서 확실한 써
비스를 보장한다면 난 거기로 가지 한국 영화관은 되도록 피해갈 거다. 관객들의 기본 심리는 그렇다고 본다. 좋은 영화를 편하게 보고싶은건 관객으로서 당연히
바라는 일이지 않은가? 같은 영화라도 사운드도 의자도 후지고 앞사람 머리에 가려서 짜증나는 종로통 극장에서 보기보다는 화면도 그만하면 괜찮고 객석 의자가
좀더 인간적으로 설치된 씨티극장에 가서 보는게 더 기분 좋듯이, 씨티극장은 명함도 못 내미는 안락한 객석과 시야확보를 자랑하는 미국식 극장이 들어온다면
너도나도 그쪽으로 선호도가 기우는 건 당연할거다.
신선한 영화 보기 힘든 요즘,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보물을 발견하기 위한 영화광들의 애정에 대해 주최측은 너무나 성의없이 미숙한 진행으로 짜증을 증가
시킨다는게 내 생각이다. 예매라는 행위를 거의 무로 돌리는 '자율좌석제'라는 것의 테러에 대해서는, 거의 분노를 느낀다. 앞으로 올 인터넷 세상이라는게 클릭은
클릭이고, 실세계는 무조건 몸으로 뛰어 자기자리를 확보해야만 하는 건가? 도대체가 발달된 매체를 이용하는 것을 그렇게 무용지물로 만드는 후진 사고방식으로
판타스틱 영화제라는 걸 개최한다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다.
이렇게 간만에 좋은 영화 없을까 하고 부천에 가서 꿩먹고 알먹고 하려던 나의 계획은 여지없이 아작나서 꿩먹다 체한 꼴이 되었다. 알은 또 깨뜨리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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