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겐 보호가 아니라 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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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에서는 21세 이상만이 자기 몸에 문신할 권리를 가지게 하는 법안이 추진되는 중이라고 한다. 한국이야 이제 겨우 피어싱이 본격적으로 유행을 할까 하는 시점이고, 아직까지도 문신은 조폭이나 하는 것처럼 여기는 수준이지만, 미국은 이미 전부터 피어싱은 물론 갖가지 화려한 문신이 젊은이들 사이에 정착되어서 전문화되어 있다.
문신업계에서는 당연히 이 법안을 반대하는데, 그들의 아주 설득력 있는 반대 논리를 들어보자면 '법으로 금지하면 야매가 설쳐서 위생관리상 위험하다'는 것이다. 십대들은 법으로 금지한다고 문신을 안 할 리가 없다. 문신은 자기네의 젊고 아름다운 육체 위에 가장 스릴 넘치는 방법으로 자기의 미감을 표현하는 문화다. 절대 말린다고 말려질 리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십대들 역시 말린다고 말려질 리가 없다. 아무리 '청소년 보호'를 내세우며 금지를 시도하려해도, 문화는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보호가 아니라 권리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다. 십대들에겐 '사회악으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한게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는게 필요하다. 스스로 조건을 갖춰나가고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데 필요한 '배려와 지원'을 해주어야 하지, 18세가 되기 전까진 기다려, 하고 모든 삶의 모험과 재미를 차단하는 어거지는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존중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랑스럽지 못한 삶에선 아무것도 해낼 수 있는게 없다. 청소년은 보호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낡아빠진 사회의 추잡한 삶의 양식들을 걷어치우고, 새로이 자유롭고 건강한 삶의 양식들을 건설하고 실험할 주역들이다. 그들이 누려 마땅한 권리들을 빼앗은 쪽이 반성을 해야하며, 권리를 돌려주어야한다.
성생활을 포함하여 연애를 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당연 안전한 섹스를 위한 교육과 인격적으로 도움되는 만남을 위한 코치가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금지된 것에 대한 반동으로 도착적이고 무책임 일변도의 섹스가 판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훔친 사과가 맛있다고 금지된 쾌락에만 목매달고서 젊음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또한 사회적인 낭비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일어서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는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파트타임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미성년 취업에 대한 보호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좀더 큰 기회, 넓은 기회를 갖기 위해서 대학에 진학할 생각으로 공부에 열중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한정되어 있다. 그외의 분야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으려하는 젊은이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크나큰 폭력이다.
음란물 그냥 보라고 해라
음란물에 대한 기준 역시 뒤엎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음란물의 기준은 매우 편협하다. 법조문에 달린 '정상적인 성인이 얼굴 붉히지 않을 정도' 라는 기준의 잣대가 되는 건 '한달에 한번도 못하는' 지친 중년의 좀스러운 성의식뿐인 것은 아닌지? 좀 야하면 무조건 음란물 취급을 하는 것을 그만두어야하고, 무엇보다도 음란물 자체를 허용해야한다. 무슨 변태적 성욕을 다루든간에, 성인용인 한 다 허용해야 한다.
영화는 현실에 없는 사건을 통해 현실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해소시키는 희안한 물건이다. 영화에 폭력과 섹스가 난무한다고 걱정하는 많은이들은 현대가 옛날보다 훨씬 폭력과 섹스가 절제되고 억압된 일상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 환경호르몬 덕에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자들의 몸 속에 쓸데없이 남아 돌아다니고 있는 테스토스테론을 적절히 안전한 방법으로 분출해야 현대인의 삶이 편한 것이다.
포르노의 그 심각한 테스토스테론 과잉의 수준을 보면 물론 정떨어지 십상이겠지만, 들어먹지도 않는 금지만 되풀이할게 아니라 까놓고 훤한 대낮에 '포르노 비평'을 형성해보도록 하는게 낫지 않을까? 인터넷을 통한 포르노 문화의 소통은 막는다고 막아질 것이 아니다. 차라리 원없이 보고, 대신 (시간 버리고 눈버린) 책임은 자기가 지라고 하는게 낫다. 이것은 무책임한 발상인가? 그렇다. 제발 쓸데없이 남의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일들은 관두었으면 한다. 당신들은 그럴 권리가 없다.
아직 덜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르노 충격에서 보호하고 싶다면 15세이상 가능, 13세이상 가능 등으로 적당한 단계를 몇개 더 만들어서 업계가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도록 문화를 만드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새디즘이 아니라 범죄에 가까운 포르노에 익숙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요새 영화관에 걸리는 미성년 관람불가 정도는, 개인차는 있겠지만 아마도 만 13세 이상이면 다 수용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기다리라는 것은 억지다
어린아이는 때묻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청소년은 미래를 향해 더없이 건실하게 나아가고, 이 이미지들은 모두 환상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미래를 위해 살게 생겨먹지를 않았다. 독립된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책임지기에 많은 십대는 모자른 점 투성이일지 몰라도, 주어진 적이 없는 자율성을 어른이 된다고 갑자기 얻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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