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갑바 없는 남자가 아름답다? -남성의 여성화에 대해 (미소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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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한동안 유행의 첨단을 걸었던 남자 모델의 경향은 몸집도 작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였다. 이것을 용인하는 사
회는 남성이 스스로의 성을 버리고 변환을 꾀하는 사회다.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남성역할이 사라져가고 자연환경 오염과 정신적 스트레스 과다로 인해
남성의 정자수가 격감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위기감이 커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을 반드시 위기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남성성의 탈각에
대해 즐거이 미적인 수용을 하는 흐름이 있다.
남자로 생긴 것은 확실하다 해도 성이 탈각된 듯한 남자의 매력을 은근히 풍기는 락아티스트들이 대거 인기를 얻고 있는 점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한
다. 블러가 그렇고, 라디오헤드도 상당히 그렇다. 특히나 벡은 다재다능한 인물로서 그 카리스마와 함께 소년같은 외모로 한동안 영미권의 수많은 젊
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LA메탈이나 데스 슬래쉬 등 '범메탈류'에서 보이는 마쵸맨 스타일의 남성성에 일종의 대항 구도를 설정한다고 볼 수
있다. 일명 '갑바 없는 남자가 아름답다' 이다. 특히 보컬 데이먼을 앞세운 블러의 독특한 매력은 상당해서, 그 자체로 '거세된 현대 남성의 섹쉬얼리
티'라고 할 만하다.
갑바맨이 아름다운 것을 그다지 실감나게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한국의 여성들은 그다지 관심없어 할지 몰라도, 갑바맨 즉 근육미가 넘치는 남성이
유행하는 것은 남성들이 여성의 직접적인 성욕의 대상으로 대상화되고,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난 것은, 근육질이 발달하다 못해 울퉁불퉁 튀어나온 것과 현대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성취할 수 있는 건강체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지나치게 운동을 많이 하면 유해산소가 체내에 쌓여서 일찍 노화한다고 한다. 갑바맨의 근육미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사냥이나 전쟁에서 뛰어
나기 위한 유용성보다는 아마도 당연히 그런 유용성을 구실로, 여성의 눈에 들기 위한 정자전쟁의 일환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힘 깨나 쓰는
레슬링 선수들의 근육은 보디빌더처럼 울퉁불퉁하거나 부풀어오르지 않고, 유연해 보인다.
한국 여자들이 목숨 걸고 다이어트하는 것과 비슷할 정도의 절박성을 가지고, 미국 남자들은 우람한 근육질에 대해 컴플렉스를 갖고 그런 체형에 도
달하기 위해 과도한 운동에 시달리는 편이다. 남자로서도, 직장이나 사회에서 평가받는 능력자로서도 자기관리의 기본요소로 탄탄한 몸매는 중요히며,
미국 남자들은 차마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이를 목격한 한국 유학생이 하는 말은 이렇다. 한국 남자들은 참 편하게 사는거야. ^^; 인생의 어려움을 모른
다는 말이다. 거야 물론 여러 모로 그럴 수 있겠지만.
근육이 발달한 '머슴형' 남성미는 우리들의 편견과는 달리 여자 위에 군림하는 마쵸맨이 아니라 지칠줄 모르는 성생활의 봉사를 의미하는, 철저하게
여성의 이익을 위한 이미지로서 매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여자는 지배당하는 척 하면서 얼마든지 남자를 부려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독립된 지위가 더 확고해질수록 소심하고 정력이 떨어질 듯한 나약한 화이트칼라 이미지보다는 단순무식한 육체노동자 스타일을 선호하는 여자들이
많아질거라고 본다.
한국에서도 요즘 미남형 얼굴에 근육미를 자랑하는 구본승이 뜨고, 진작에 미소년류와 구별되는 근육맨 스타일의 클론이 인기를 얻었지만, 갑바맨은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사회적 반향을 얻은 적이 없다. (헬스는 유행을 했지만, 갑바맨의 인기는 그다지 ... -.-;;;) 그런 면에서 근육미가 전사회적으로
유행하기도 전에 미소년이 창궐하는 지금의 현상은, 워낙에 '얼굴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자라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역시 '남자들 살기에 편하다'는 확인을 하게 되는 대목인 것이다. ^^;
미소년은 '남자의 의무'(여자를 보호하고, 기쁘게 해줘야 한다는), '여성의 특권'(여자만이 꾸밀 권리가 있다는)을 무시하며, 남녀평등(?!)을 누구보다도
먼저 실천하고 있다. '갑바 없는 남자' 중에 제일 가는 남자로서, 여성을 닮아가기에 아름다운, 여성을 닮아서 삶의 오밀조밀한 즐거움들을 누릴 줄 아
는 자족적인 남자다.
이 현대사회 남성의 여성화, 그중에서도 미소년 현상은 동성애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화
[벨벳 골드마인]을 보며 화장한 남자가 얼마나 소름끼치게 아름다운가, 남자들의 꾸미고 싶은 욕망과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어떻게 동성애로 이어지는가에 대해 실감나게 공부를 하긴 했지만, 역시 미소년이 동성애에 의존하는 바는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영화
[해피투게더]나 아름다운 게이를 받아들이는 일반 여성들의 심정은
단지 '아름다운 남자'에 대한 선망으로, 아름다운 동성애자를 미소년 애호식으로 바꾸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건 동성애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웃기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전연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H물이라고 부르는, 아마추어 만화에서 특히 많이 등장하는 동성애들도, 대개의 경우, 아름다운 남자들의 몸을 드러내는 적절한 꺼리로서 주요 애용된
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여성들이 동성애-게이에 대해 갖는 관용성은 대개 이런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 어떤 면에서, 남성들이 포르노를 통해 레즈비
언에 대한 관용성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남성들의 레즈포르노와 여성들의 미소년 애호가 전혀 다른 점은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자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이다. 비교하는 것도 좀 미안할 정도로, 미소년은 다른 존재가 된다.
내친 김에 더 따져 보자면, 우리의 미소년은 옛날 그리이스인들이 가졌던 기득권 남성 중심의 소년애와도 역시 전연 상관이 없다. 아름다운 소년의
육체적 여건은 비슷할지 몰라도, 관계맺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위태롭고도 아름다운 인생의 짧은 한 시기를 보내는 소년을 향한 오직 자유로운 한 부
류, 기득권 남성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가 아름답기를 원하며 또한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는 '여성적 시선'이 미소년과 관계맺는다.
미소년과 여성적 시선은 동질적 관계에 있다. 달라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같아서 만난다. 이들의 나르시즘은 자기 밖의 사물들을 향한 사랑과 다르지
않다. 이점에서 남성적 시선과 전혀 다르며, 사물세계를 보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힘이 있다.
난 한국의 미소년애호는 상당히 미학적이고도 건전한(?!)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것은 존중하고 존중받는 쾌락이다. 아직 시작일 뿐이니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름대로 정당성은 있다. 그러나 어떤 문화의 시작은 늘 이끄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소년 애호는, 이
것이 만화와 같은 픽션물의 인물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는 즐거움'이다. 미소년의 섹쉬얼한 매력은, 직접적인 성적인 자
극이라기보다는 그 시각적 아름다움에 의한 미적인 만족감 이후에 오는 이차적인 것이다. 이점에서, 여성의 비공격적인 성질과 결합하여 미소년 애호
는 순수한 관능적 쾌락이 된다.
1999.9.7
->관능적 쾌락? 여성적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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