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미소년의 조건 (미소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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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년의 조건은 기본적으론 절대적이다. '여자 뺨치는' 외모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최소한 가꾸고 꾸몄을 때 조명발이 없이도, 환한 햇볕 아래서
도 어색하지 않은 정도의, 귀엽고 예쁜 얼굴과 적절한 몸매가 뒷받침되지않으면 안 된다. 그 기준이야 사람마다 상당한 편차를 보이겠지만, 한국의
기준이 대체적으로 어떻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형성되어있다.
이 '미모'는 결정적인 조건으로, '먹고살기 위해' 문화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인류임을 나타내는 증표와도 같은 것이다. 외모가 안 되는 사람
들은 당분간은(사이보그가 되기 전까지) 고통을 감수하고 성형수술의 힘을 빌던가, 아니라면 다른 방면으로 -스타일과 인간성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미소년은 못 되더라도 매력적인 남자는 될 수 있을 테니까.
그 다음 중요한 조건은 자기애-나르시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잘 생겼더라도 스스로 '남성적 역할'에만 충실하며 자신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대상으로서 자타공인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소년이라고 할 수 없다.
미소년의 나르시즘은 흔히 사회적인 병으로 분류되는 '왕자병'과는 다른 성장과정을 지닌다. 왕자는 자기를 받들어주는 사람들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통해 가늠이 되는 것이지만, 미소년은 절대적으로 외모가 우선이며, 이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미소년이 된다.
아름다운 외모와, 자기애를 기본으로 하는 미소년이 그 다음 열중해야 할 것은 타고난 것을 잘 갈고 닦는 세련과 감수성의 개발이다. 당연한 얘기지
만.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끊임없이 만드는 일이 중요하며, 좋고 나쁜 것을 스스로 판단하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좋아하
는 것을 자기것으로 만들어야지, 유행하는 것을 무조건 자기에게 갖다 붙여서는 자연스러울 수 없고, 오래 갈 수 없다.
앞에서 말한 것이 개인적 조건이었다면, 지금부터 말할 것은 사회적 조건이다. 미소년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자신을 용인해주는 사회적 관계가 필
수라는 얘기다. 현재 십대파워의 신장과 더불어 십대들의 또래문화는 강력한 문화적 결집력을 발휘하고, 자기네들끼리 안에서는 쉽사리 기존과 '다른'
것들을 '멋진'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이 있다는 것이 미소년에게는 무척 유리한 조건이 된다. 혼자서만 나르시스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공
주의 권리와 함께 왕자의 권리가 가능해져야 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꾸미고 싶은 욕구에 대하여 사내답지 못하게, 계집애 같이, 하는 비난의 말들이 아직도 상당한 사회적 장을 지배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충분히 무시 가능하게 되는 사회적 장 또한 형성되고 있다. pc통신을 통해서건, 책이나 잡지를 통해서건, 친구들을 통해서건, 사회적 장이 형성되어야
만 자의식은 형성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데서 인간은 살아질 수 없는 법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는 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런 객관적인 인정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멋과 충족감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되면, 미소년의 사회적 심리적 존재는 보장된다.
미소년으로 계속 남아있는 것은 좀더 만만치 않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 번듯한 직장을 갖지 않고도 큰 부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연령기한이 넘어서
도 화려한 패션이 용인받을 수 있는 직업은 무척 제한되어 있다. 남들처럼 살면서 '사회적인 나이'를 그냥 먹어버리면 미'소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직업을 잘 택하든가, 동아리를 잘 만들어야 한다.(가족을 잘 구슬리는 능력도 필요할지 모른다.)
또 한가지, 지금 미소년으로 치장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는 아주 제한되어 있다. 뽀얀 피부나 그밖의 신체조건과, 힙합 패션, 복고풍, 그
밖에 몇몇 변종. 당장의 유행을 벗어나는 순간, 과연 어떤 코드를 통해 미소년으로 읽힐 수 있을지 미소년 자신은 연구해야 한다.
피부는 자기관리를 잘 하면 어느 정도 유지가 되지만 언제까지나 어린 열일곱, 스물의 얼굴로 남을 수는 없다. 살아온 날들이 얼굴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코드가 하나라도 비끄러져 나간 이상은, '남들과 똑같은' 코드의 미소년이 될 수는 없다. 자기 스스로 아름다움의 코드를 창조해내는 수밖에
따라서, 나이를 먹으면서는 한국의 고질적인 획일적 유행의식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계속해서 미소년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래의식
으로 뭉친 한국 젊은이들의 획일적 코드는 가히 거대파워다. 개인 혼자 그걸 벗어나는 미감을 발달시키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면서 자기 스타일을 만들고, 자기 자신으로로서 남아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미소년으로 남는다.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그 대가
는... 무한하다.
1999.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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