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십대문화와 표절 불감증
back to noculture
과연 십대는 문화생산자로서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십대문화는 점점 더 거대한 시장으로 커나가고 있고, 이제는 신세대도 아니고 n세대를 잡아야 잡화점 하나를
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아직까진 십대는 문화생산자로서는 등장하지 못했다. 잘생긴 얼굴 좀 빌려주고 인기를 얻는 그런 식의 부가가치 생산은 고
려하지 않기로 한다. 문화'생산'자로서 판단력이란 자질을 시험받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난 지금까지 한국의 십대는 이제 막 문화생산자로서 등장할 즈음에 있다고, 아마도 언제 터지느냐만 남은 과포화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다. 네트워크와 함께, 십대
문화의 거대화와 함께, 입시제도의 약간의 변화와 함께, 어떤 가능성이 고딩영화제로 약간 비추어졌고, 이제 좀 있으면 뭔가가 일어날 것이다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터진 것은 왠 엉뚱한 표절작이었다. 만화가 유시진과 김진 및 무라카미 류 등을 고스란히 베껴낸 습작도 못되는 것을 가지고 안혜영이라는
고3 여학생이 [야간비행]이라는 단편소설집을 내었다. 이 표절가는 고딩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조그맣게나마 이미 한가닥 날리고 있었고, 표절작을 대학진학을 위해
이용해먹을 작정이었다는 혐의도 짙다.
난 그 첫번째 타자가 어처구니 없이 너덜너덜한 표절작품이라는 것에 몹시 기분이 상했다. 것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만화가를 그렇게 뻔히 보이게 베껴놓고는 표
절 아니라고 아직도 버팅기는 그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가장 돈이 안 들고 외압이나 남의 도움 필요없이 자기 맘대로 생산할 수 있는 전통적인 문화상품은 역시 책이다. 아무래도 첫타자는 아마 자연스럽게 이쪽에서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도 빤히 들여다보이는 표절이라니, 게다가 어떻게 출판사는 이런 심각한 표절을 몰라봤단 말인가?
(물론 홈페이지나 웹진 제작의 찬란한 가능성을 제껴둔 것은 나의 실수 -.-;)
맨날 표절음악을 귀에 꽂고 살다보면 멀쩡한 사람도 다 이렇게 되나? 혹시 서태지만이 아니라 h모그룹의 팬은 아닐까? 쓴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웃기는
사건은, 표절가 개인의 뻔뻔함이나 멍청함, 고집에 당연히 원인이 있겠지만, 사회적인 표절불감증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뭐든지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청소년기에 이 심각한 표절천국의 나라에서 자라난 이유로 병신같은 개념을 형성하게 된 것에 대해 난 조의를 표한다. 그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동정이다.
만약에 변명을 하고자 한다면, 즉 범죄를 저지르게 된 '정황적 증거'를 파고들자면, 무궁무진한 꺼리들이 있다. 먼저 가장 든든한 빽으로 자리하고 있는 '표절 문
화'. 이 나라는 창작가 개인의 권리라는게 과연 인정된 적이 있나싶게 근대화가 덜된 곳이서서, 들키지만 않는다면 훔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가요계와 방송계
에서는 불문율처럼 외고 있다.
특히 일반인은 접근이 '금지'되어있는 일본 문화산업계라는 거대한 교과서가 있으니, 아주 싼값에 베낄 수도 있고, 신났을 것이다. 들켜서 표절사건이 불거져도, 이
런저런 방법으로 다 빠져나가고 아무도 처벌받지는 않으니, 그리고 한국사람은 관용성도 풍부하지만 망각력 또한 뛰어나서 쉽게 잊고 용서하니, 안 하는 놈이 병신
인 판이다. 다른 분야, 소설쪽도 표절사건이 그렇게 빈번하지는 않지만 처벌받는 일도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만화쪽 역시, 지금까지 일본만화를 표절한 것은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다. 일본의 작품들을 표절하는 일은 한국의 일본문화 수입금지 정책 탓으로 아주 양성화되어 있어서, 정말로 일본문화가 그대로 다 들어온다면 앞
으로 밝혀질 표절의 범위는 거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러나, 표절과의 동침 분위기로 일변하는 한국의 문화산업의 전망은 아주 어둡다. 세상은 이곳처럼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적당히 베껴먹고
해먹는 것들이 가득찬 문화산업은 거의 미래가 없다고 봐야한다. 새롭고 창조적인 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이 뭘 해보려해도 언제나 가로막고 마는 관례와 전통 역시
쉽게 사라질리가 없다. 그런 것들은 자멸하는 날까지도 계속되리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 작품을 만들었을 때, 혹은 연구에 성공했을 때, 이곳은 실제적인 창작자, 혹은 연구자에게 부와 명예가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조직의 장長에게
공로가 돌아간다. 줄잘서고, 윗대가리에 잘 보이는 것만이 잘먹고 잘사는 길인데 힘들고 고통스런 창조의 길을 가라고 하는건 불공평한 요구다. 언론매체들도, 능력
있는 필자를 찾기보다는 그저 대학교수의 이름을 모셔오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도 안전한 지면 메꾸기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의 지위와 그 생산물의 질을 동일
시하는 무식함으로 일변한다. 처음부터 창조를 어렵게 하는 이런
<한국적 분위기>(관련글 -> )는 법보다 휠씬 강한 것이다.
지금 세상의 변화는 게다가 더더욱 어려운 과제를 표절 퇴치자들에게 던져주는데, 하드웨어의 발달 자체가 창작뿐만 아니라 표절을 용이하게도 하며, 경계를 불
분명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개인 컴퓨터의 폭발적 보급과 함께 시작된 네트워크 세상은, 잡담과 문학, 무의미와 가치있는 정보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pc 통신의 활성화와 함께, 많은 이들이 특히 십대와 이십대의 언어생활이 달라졌다. 넷세대에겐 이미 입으로 말하는 것과 손가락으로 글쓰는 것의 경계가 사라지
고 있고, 쉽고 별것 아닌 텍스트와 어렵고 대단한 텍스트가 분리되어있지 않고 언제나 혼재되어있고, 뒤섞이는 양상 속에서 산다. 즉 입으로는 친구들과 가족들과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고 글로는 엄숙한 문학이나 경제, 과학 등을 배우는 구조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손가락 가는 대로 주절거린 것이 문학이 되기도 하는,
삶과 텍스트가 짬뽕된 세계에 닿아있다.
그러나 언제나 남의 글을 쉽게 퍼올 수 있고, 또 이것을 쉽사리 편집해서 다른 글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또한 자기글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는 윤리관이 희미
해지고 있다. 들키지만 않으면, 몇명 빼곤 모르는 사실이 될테니 말이다. 통신세계의 '공인 윤리'는 누구나 정보를 공유하지만 창작자의 권리-명예는 존중을 해준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퍼온글입니다 한 마디에 혹은 그 말도 없는 속에 예의는 묻혀버리고 조회수로만 평가되는 경향 역시 지배적이다. 이것은 아주
반복적이고 '교육적인' 경험이다.
창작자의 권리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문학의 엄숙함과 경건주의가 깔려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현대사회의 변혁들은 정보의 생산과 교환을 아주 쉽게 일반에
게 가능하게 한다. 하드웨어의 변혁으로 인해, 누구나 글쓰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아주 쉽고, 샘플링으로 곡을 만드는 것도 뚝딱, 아주 쉽
다. 하지만 그래서 그만큼 쓰레기 같은 글들, 작품들, 그리고 표절이 발생할 위험도 용량이 커졌다. 생산방법 자체가 달라졌는데, 이에 대해 작가가 패트론에게서
독립해 다수의 독자들을 향해 상업적 글을 팔아먹기 시작하던 시절 형성된 잣대만을 절대적으로 들이댄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저작권에 대해서 엄격한
서양인들도 샘플링은 인정하지 않는가. 표절은 절대 용서 못 하나 샘플링은 인정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윤리다. 2차적 창작물로서 인정할 수 있으니까. 한국의 저
작권 윤리? 그런건 없다. 무조건 돈많은 놈, 권력과 언론을 장악한 놈이 장땡이다.
최신의 기술과 고래의 썩어빠진 의식의 합작품인 이 '한국적 상황' 앞에서, 언제나 가장 민감한 문화적 대응을 보이는 십대는 과연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당분간은 기대할 수 없겠다는 비관적 전망을 지금 나는 말할 수밖에 없다. 아직 교육제도는 역시 대학입시를 향해 모든 것이 짜여져있고, 입시제도의 개
혁이라는 것도 고작 얼굴 예뻐서, 기획사가 잘 밀어줘서 인기 좋은 연예인을 일류 대학에 보내주는 정도의 '좋은일'밖에는 못하는거 같고, 그 입시교육을 뚫고 알아
서 잘 커줄 인물들이 몇이나 나올 수 있을지, 별전망 없어 보인다.
표절홍수 속에서 그리고 표절론의 헛된 메아리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사실이 의외로 엄청난 제약을 그 세대에게 걸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도 든다.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을 등에 업고 휩쓸은 패러디/패스티쉬 논쟁이 어린 두뇌들에게 어떤 면죄부를 무의식중에 발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의 세
대를 형성했다는 것만으로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지금의 십대도 이십대가 될 것이고, 돈을 벌어들이는 것, 결국 체제에는 아무런 해가 없는 것, 즉 단지 감각적
인 것만을 적절히 자극하고 끌어모아 십대문화를 해먹겠다는 '이성적인' 직업인들도 계속 공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성공작들이 있을 것인가? 한국이
란 작은 나라 안에서 저울질하는 것은 점점 의미가 없어질 것이고, 적당히 사기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것인데. 어찌되었건, 우리가 적응해야할 윤리는 인터넷을
이미 장악한 서양인들의 윤리인데 말이다.
하드웨어의 혁신에 대해 역시 인간의 윤리는 몇백년을 뒤지고 있다. 이 괴리는 계속 누적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1999.10.26
back to no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