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여성의 목소리 -크랜베리즈의 독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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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랜베리즈의 독창성은 아무래도 돌로레스의 기묘한 목소리에 기인한다.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어린시절 교회음악으로 다져진 복식호흡법의 가성에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목소리가 락과 만날 때, 기묘하고도 아름답고, 처절하면서도 카리스마적인 크랜베리즈가 된다. 나의 생각은, 이 독창성은 단지 이 시대의 이런저런 많은 밴드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하는 뚜렷한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앱설루틀리 그 목소리에 기인한다.
대중음악에서, 여성보컬은 먼저 크게 두 가지 목소리로 나눌 수 있다. 팝적인 목소리와 블루지한 목소리다. 물론, 이 분류가 그렇게 완벽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여성 보컬의 방향이 이 두 가지로 벋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선에서 얘기를 시작했으면 한다.
팝적인 목소리는 흔히 가창력과는 상관없는 한국의 댄스가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타고난 목소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목소리다. 만들어지지 않은 목소리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노래 좀 하는 아마추어와 큰 차이는 없다. 이건 그들을 경멸하는 의미가 아니라, 블루지한 목소리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한 얘기다.
블루지한 목소리는 만들어진 목소리다. 타고난 자기의 목소리에 더해서, 혹은 이걸 아예 뛰어넘어서 '재구성'한 것이다. 그 방법에 따라서 락과 블루스, 재즈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허스키하다'고 표현하는 목소리는 많은 경우 수없는 연습과 흡연으로 생기는데, 이것이 이 만들어진 목소리의 가수들이 그렇게나 많은 이유다. 노래 연습을 많이 하다보면 성대에 무리가 가고, 성대가 변조될 확율이 그만큼 커진다. 그에 따라, 가수는 목소리의 크기와 지치지 않는 발성을 위해 자기의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변조하게 된다. 이점은 남성 보컬들이 흔히 채택하는 진성 연습의 이유와 비슷하다. 다듬어지지 않는 목소리보다 만들어진 목소리가 오랫동안 불러도 휠씬 덜 축가기 때문에 그리고 연습을 열심히 하다 보면 여러 과정 속에서 어차피 상하게 될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연습, 공연 환경은 언제나 뿌연 담배연기와 지하실 환경오염물질로 이루어져있고, 밑바닥부터 실력을 닦아 올라간다는 정식을 따르자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팝계의 디바인 휘트니 휴스턴이나 셀렌느 디옹은 어느 쪽에 넣어야할지, 솔직히 나도 좀 모르겠다. 상당히 많은 연습으로 다듬은 목소리이긴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버리고 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확신이 안 서기 때문이다. 많은 팝가수들은 연습도 많이 하고 노래도 잘하지만 자기 목소리가 그대로 남으며, 그것을 매력으로 한다.
만들어진 목소리에 있어, 그 나아가는 방향은 대개 자신의 취향과 생긴 모습과 상관이 있는 선택일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 남성들처럼 하드락의 쫙 뻗는 목소리로는 잘 안 가고, 대개 블루지한 목소리로, 블루스나 재즈 쪽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끝까지 안 가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인기있는 것은 팝이므로 그 테두리 안에서 머물면서 블루스나 재즈의 냄새를 풍기는 적당한 타협선을 찾기 때문일거다. 하드락을 택하지 않는 것은, 여성 보컬이라는 존재 자체가 하드락의 그 남성적인 성격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여성 보컬을 인정하는 것은 아름답고 '무해한' 팝이던가, 아니면 이와 반대로 터프하고도 섹시한 블루스라고 본다. 락은 블루스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는 공격적이다. 좀더 단순하고 격한 음악인만큼,
공격적인 태도와도 제법 어울린다. 그래서 락보컬은 팝에 기울기도 하고, 블루지에 기울기도 한다.
재즈는 왜 안 따지냐고 묻는다면, 내가 보기에 재즈가수는 여성이 아니다. 엔터테이너로서 여성이 그 풍만을 넘어선 드럼통의 몸매를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재즈밖에 없는데, 이 여성은 성적 매력의 담론에서 벗어난다. 그건 아마도 재즈가 '예술' 대접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클래식 가수처럼 재즈가수도 팝계의 여성을 보는 전통과는 다른 전통에 속해있다고 난 생각한다. 물론 야리야리한 재즈가수도 있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흥행을 위한 '덤'의 성격과 같은 것이지, 결코 기본이 되지 못한다.
대중음악에 있어 궁극적인 것은 뮤지션의 성적 매력이다. 그 사실을 인정한 후에 예술을 얘기하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대중음악계에서 그 뛰어남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들 역시 그 배후에는 성적인 매력이 깔려있고, 성적인 매력과 음악 자체가 주는 감동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 차원에서 팬들은 형성된다. 락음악계의 특징적인 현상, 즉 인기끌려고 작정한 보컬 외에도 기타를 부여안고 현란한 기교를 부리는 기타리스트가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면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그래서 굵직한 아티스트들은 남성이 많다. 오랜 시간 인기를 누리면서 음악세계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대가로서 커가기 위해서는 여성이 좀더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는데,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듯이 여성에 대한 매력평가는 엄격해서 나이를 먹으면서 금방 노땅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아줌마 취급. 살쪄도 마찬가지. 서양쪽은 이제 좀 변했다지만, 그래도 팝계의 거물 여성들은 해가 가도 늙지 않고 오히려 노익장을 과시하는 여장부들뿐이다. 이건 여성 차별이 어쩌구 하며 떠들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뮤지션이라는 직업에 씌워져 있는 성적 매력의 '필수성'이 문제의 시작이었으니까 말이다. 싸울려면 개개인들의 성적 백일몽 전체랑 싸워야 한다.
뮤지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있어 어려운 점은 이것이다. 섹시한 여성,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은 존중받지 못한다. 그런데 섹시하지 않으면, 여자 취급을 못 받는다. 이 딜레마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여자를 (혹은 남자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순간 자기꺼로 맘대로 할 수 있는 물건처럼 생각하는 남자들의 성의식을 모두 재교육해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교육으로 안 되면 죽이던지 세뇌를 하던지) 물론 이건 잔인한 농담이지만, 평생을 잔인한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여성들과 남성들을 위해 '개인적인' 대응책도 없다면 말이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카리스마가 등장한다. 공격적인 태도와 빨아들일 듯한 흡입력으로 팬들을 매료시키는 홀, 가비지의 보컬은 상당히 전형적인 성공 케이스다. 그런지 성향과 울
부짖는 듯한 보컬은 상당히 찰떡궁합이다. 공격적이고 섹시한 의상을 입으면 폭행당할 위험이 도리어 줄어든다는 미국 의류관계자의 주장처럼, 그들 역시 상당히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미지이지만 이에 대해 함부로 찜쪄먹으려 드는 태도는 볼 수 없
다. 그러나 난 이건 너무 소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하면 스스로의 간에 무리가 오는 방법이랄까... 분노를 촉발시키는 모든 유형들이 그렇다. 한국에선 나오기 힘든 유형이인데, 그건 중용의 의식이 드높아서가 아니라 이곳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자꼴은 못 보는 남자들 분위기가 워낙에 우세하기 때문이다.
그와는 동떨어진 전략이지만 귀엽고 순수한 이미지로 약간의 범접할 수 없는 안전막을 치는 술수 역시 그런데로 효과적인 방법이다. 일본에 한참 유행했던,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한창 단물을 빨아먹은 미소녀 그룹이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어린애를 따먹으리? 전략이라고나 할까... 물론, 미소녀 역시 성적 매력으로 정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번 꺾어서 돌아오는 것일뿐. 요즘처럼 귀여운 이미지 일변도였던 미소녀 그룹들이 변신!하여 섹시한 척하기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경향을 보면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러나 변신한 모습을 보면 원래 귀엽고 애들같은 이미지에 맞춰 모아들인 선수들인데 아무리 섹시한 척 발악을 해도 역시 귀여운 척
계속하는 거만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최근 선탠이라도 하고 온듯한 ses 보면, 감히 tlc라도 따라하려고 하는 건지, 섹시하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은 어정쩡한 모습이 웃기기만 하다.
그러나 내가 귀엽기 전략을 옹호하거나 하려는 건 아니다. 귀여운 이미지가 방어적 역할을 어느정도 할 수 있다 해도, 존중의 문제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역시 농담따먹기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다. '피클 먹고 싶어'를 '핑클 먹고 싶어'로 농담따먹기하는 남자들의 반응을 기획사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하고 팀이름을 지었을까? 절대 아니올시다다. 처음부터 그러기를 바라고 적당한 방어막과 적당한 만만함으로 인기를 일으킬 생각이었을 것이다.
만약에 자기네더러 지으라고 했다면 절대로 그런 이름을 붙이진 못할 것이다. 역시 이것은 존중받기에 성공하지 못한 전술이다. 물론 이 여성그룹을 만든 기획사는 상관하지 않는다. 십대와 이십대 초반을 겨냥하여 몇년간 충분히 인기를 누리면 그만일 뿐, 그룹 해체한 후에 네 여자들이 어떤 인생을 걸어갈지에 대해선 전혀 걱정해줄 필요가 없지 않겠나? 능력있으면 가수를 더 하든가 탤런트라도 할 것이고 재주좋으면 시집이라도 잘 가겠지.
대개의 팝가수들은 스스로 자기의 이미지를 만인에게 연인으로서 제공하며, 아마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러나 단지 인기가 드높고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기엔 자존심이 용납 안하는 여성들 역시 많은 것이다. 문제는 성공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자신의 이미지 자체를 사랑받으면서도
존중받는 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등장시킬수 있는 (불완전하나마 세번째) 방법으로 '천상의 소리' *를 말해보자. 천상의 소리라니? 서양의 교회음악, 그중에도 보이소프라노를 떠올려주기 바란다.
*나는 인디락의 한 조류인 노이즈계열에서 나타나는 천상의 소리는 다루지 않는다. 이 글의 주제에서 많이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쪽 계열과는 다른 방법으로 상호작용을 거쳐 쓰인다는 차이만 지적을 하겠다.*
먼저 시네드 오코너가 있었다. 이 아일랜드 출신의 빡빡 대머리 여가수는 얼딜 가나, 특히 페스티발 같은데 참여한 동료 뮤지션들 사이에서 천상의 목소리라고 추앙을 받는데, 나는 여기서 락커들이라고 하는 남자들도 갖고 있는 기존의 성녀(성모 마리아)의 이미지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가장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듯한 목소리와 똑똑하고 정치적이라는 그 여자의 분노, 공격성의 결합, 절묘한 전략이다.
그 뒤에 나타난 크렌베리즈는 휠씬 더 적극적이고 강렬한 결합 양상을 보여준다. 맨처음 나타났을 때 소름끼침과 아름다움의 딱 중간을 가던 '좀비'의 그 목소리를 난 잊지 못한다. 수많은 반복을 통해 우리들은 그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수많은 아류들도 맞아들이게 되었지만 말이다. 돌로레스의 목소리는 천상적이라고 할 만한 창법상의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휠씬 드라마틱하게도 마녀로서 또한 동시에 희생자로서의 목소리로 나타난다. 밴드의 음악으로서 만들어졌기에 그 '천상적'인 것과 가까운 목소리와 강렬한 락사운드의 부딪힘이 기묘하고도 독창적인 그 긴장의 순간, 불편하고도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을 건네줄 수 있었다.
크랜베리즈의 업적은 일차적으로 '천상적 소리'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복식호흡법을 통한 가성'에 성대로 '디스트'를 거는, 팝적이지도 블루지하지도 않은 새로운 창법을 락에서 개시했다는 데에 있다. 2집 [no need to argure]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많은 여성 보컬들이 그 영향을 받아 블루지하지 않은 깨끗한 목소리에 전혀 팝적이지 않은 정서들, 태도를 결합시키는 시도를 하고, 성공하고 있다. 이것은 반드시 크랜베리즈라는 밴드의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 하는 케이스에 한정하는 얘기라 아니라, 전체 판도를 바꾸어버린 것을 말하는 것이다.
토리 아모스는 이런 전체 분위기와 무관하지는 않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가날픈 그 외모와 목소리가 담기엔 너무 무거운 듯한 이미지를 결합한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러나, 토리 아모스는 너무 연약한 쪽으로 기울어서 분노보다는 신경증에 가까운 태도를 형성했다고 난 본다.
그에 비하면 스웨덴 밴드 카디건스는 휠씬 팝적이지만 또만 배짱도 두둑해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영향을 거론할 일은 없을듯하지만, 역시 크렌베리즈의 성공으로 인해 간접적인 이득은 확실히 본 밴드라고 생각한다. 많은 팝적인 목소리의 보컬들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태도를 형성하고 있다. 즉 '이쁜이의 이쁜 노래'가 아닌 많고 많은 현대 사회의 여성의 정서들, 생각들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용인하는 것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회다. (즉, 그만큼 달라진 사회이다.)
넓게 따져서 천상의 목소리 사촌과라고 넣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여성 보컬 대가로는 비욕이 있다. 비욕의 매력은 소녀인지 여인인지 알 수 없는 그 모호함에 있는데, 뮤직비디오를 아무리 뜯어봐도 천진난만한 소녀같은 모습에 아주 복합적이고도 어쨋거나 인생을 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험과 '짬밥'이 깔려있는 사실에 당황스러워지기 십상이다. 가녀린듯하나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 역시 '절묘한 결합'파로서 신선하고도 오묘한 자기만의 영역을 차지한다.
현재의 락계의 여성 보컬들은 한껏 연약해지는 목소리와 거칠게 내지르는 목소리, 두 경향이 있다. 이미 크렌베리즈의 영향력은 얼마든지 연약해져도 되는-그래도 뭔가 있는-멋있는 락보컬을 양산하는데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그 독창성도, 유행도, 이젠 하나의 싸이클을 다 돌아 다른 것을 원하는 시점이라고 난 생각한다. '얼터너티브'라는 단어로 대별되던 그런지 열풍 또한 끝물이 지난지 한참 되어 단순한 코드의 '부서지는 기타 사운드'라는 특징을 여기저기 흩뿌린 채 사라졌는데, 보컬들에서도 역시 잔존한다고 봐야한다. 물론 우세한 것은 연약한 척 하는 파이다. 팝적인 느낌과 구별이 안 되도록 많이 나아갔는데,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랑과 존중을 동시에 획득하는' 성공을 거두었냐는 것에 대해서는, 대어와 잔챙이가 많이 달랐다는 말밖에는 못 하겠다. 또 다른 방식이 동원되어야 크랜베리즈와 같은 그리고 비욕과 같은 영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크랜베리즈의 경향은 갈수록 '애도의 노래'가 되어버리는 거 같아, 난 좀 슬펐다. 특히 4집에 이르러선 사놓고 거의 듣지 않을 정도로. 오래도록 긴장 속에 머무르는 것이 쉽지 않을테니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슬픔이나 고통, 혹은 변치않는 것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새로운 것, 많은 것들을 세우고 만들고 키우는 데서 오는 여유와 즐거움을 반영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나 이미 한 역할만으로도 크렌베리즈는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블루지하지 않은, 타고난 목소리로도, 그리고 외치고 저항하려 하지 않는, 맑은 목소리로도 공격적이고 드라마틱하고 만만치 않으며 풍부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우쳐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고맙다. 크렌베리즈의 이미지는 사랑과 존중을 동시에 받아 마땅한, 그런 것이었다. 섹슈얼하지 않으나 섹시한 것이라고 말해도 좋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매력적인 인격을 지니고 있다.
199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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