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슬림한 것이 아름답다 -패션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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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마른 인형스러운 신
슬림한 것이 아름답다라는 구호는 담배뿐만 아니라 패션과 아파트, 핸드폰,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미감을 주도하는 강력한 이념이다. 심지어 다마고치나
통통족 십대모델, 텔레토비 등 오동통한 것이 아름다울 때,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고, 그들이 슬림의 원칙을 보기좋게 깨버리기
때문에, '재미있는 반성적 미감'으로서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케이블티비 여성채널에서 심심치않게 보여주는 패션쇼들을 보면, 패션모델의 첫째
조건은 역시 '길이'다. 잘 생긴 얼굴보다는 길쭉한 몸이 먼저다. 먼저 길쭉하게 쫙 빠지고,
그 다음에 아름다울 수가 있다. 특히나 동양인 모델들을 보면 세간에서 '미인이다' 라고 할만한
얼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명 '개성적인' 얼굴들이 많은데, 그 아무러나한 얼굴들
모두를 개성적이다고 하여 용서해줄 넒은 관용심들이 모두에게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난 아직은 키가 그렇게 큰 여자들이 적어서라고 생각한다. 서양인들이나 광대뼈 나오고
눈만 째진 여자가 나타나면 '동양 미인'이라고 생각하지 동양인의 눈이 그렇게 낮겠는가.
한국의 모델들은 대강 보아 기존의 정형적인 미인의 얼굴에서 좀 눈이 좀 째지고 볼 통통한,
그러니까 요새 들고일어난 십대 모델의 정형적인 상으로 다가가는 얼굴이라든가, 광대뼈가
나오던가 하는 식으로 '조금 개성적인' 모양이다.
지금은 당연하게들 생각하지만, 예전의 패션모델들은 그렇게까지 일반 여성보다 키가 크지도
않았고, 마르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패션모델에 대한 생각을 한번 점검해보게 한다.
어렵게 갈거 없이 영화배우만 봐도 60년대를 풍미했던 마릴린 먼로만 봐도 요즘 미인의
기준으로서는 참 뚱뚱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뜨고 있는 배우 기네스 펠트로와 비교해보자.
참 기도 안 차는 차이이다. 패션모델 뺨치게 가느다란 기네스 펠트로가 아니어도, 전반적으로
잘 나가는 여배우들은 길고, 최소한 말랐다. 60년대만이 아니라, 80년대와도 비교가 안 된다.
(70년대와는 좀 다른듯 하다. 너무 말라깽이라서 나뭇가지 같다고 트위기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모델을 보면, 꼭 기네스 펠트로 수준이다.)
이건 일종의 미학적 경쟁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데, 좀더 슬림한 체형을, 좀더 슬림한 체형을 하고 찾다보니 90년대의 모델들은 80년대 모델보다는 확실히 키가 커
지고 더 마른 모양이 된 게 아닌가 한다. 게다가 90년대 내내 실험한 것은 좀더
이상한 옷을, 좀더 파격적인 라인-특히나 다리 짧아보이는 라인-을 좀더 길고 가는
모델에게 입혀 멋지게 성공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마른 몸의 문화적 함의
만약에 19세기의 미감을 가진 사람이 현대의 패션모델들을 본다면 '외계인' 내지는
'불모의 땅'이라고 그들을 폄하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거의 있는지도 모를
작은 엉덩이와 바싹 마른 팔다리, 이것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여성의 기능을 무시하는
미감이다.미감이라고 말했다. 즉 실제로 아이 낳고 잘 사는 모델들이 많은 사실과는 별개의,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는 '미감'에 관한 것이다. 이 미감은 드러내놓고 출산반대를 외치지는
않는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인 비난을 피해 단지 '아름다움', 미감의 문제로서
위장한 채 다른 가치를 품고 있다. 그것은 여성의 출산의무를 기계가 대체하는 세상에서 온
전령과도 같은 이미지다. (실제 세계에서 능력있는 모델들은 아이를 낳고도 다시 예전의
몸매로 돌아가서 잘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쇠꼬챙이처럼 마른 몸매가 소리없이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지금의 과학발전의 방향은 얼마든지 페미니즘적인 주제를 사이버펑크의 주제로
바꾸어버리는 변환을 가져온다고 본다. 사회적인 여성 차별의 주요 구실이 되는 임신과
출산, 육아 문제, 이것은 여성의 육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문화적으로 사람들을 개화?시키는 것보다는 언제나 테크놀로지의 빠르고 강력한
효과가 먼저다.
아이를 아기공장(어감이 나쁘다면, 아가방?)에서 만들 수 있다면, 여성이 임신에서
해방된다면 여성은 그렇게 힘들게 몸매 망쳐가면서 자식을 낳느라 사회생활 손해보며
결혼과 가정에 매일 일도 없을 것이다. 또 임신의 불안감에 떨며 불편한 성생활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맘대로 쾌락을 추구해도 좋을 것이고 어쨋건 자기 할 량이다.
불가항력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많은 여자들이 남자에게, 사회적 시선에
얽매일 이유가 없어진다. 많은 성도덕 논쟁들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남성들 역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여성의 동의만 얻는다면, 얼마든지 자기 자식을 만들어 키울 수 있고,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굳이 결혼하여 마누라를 봉양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이런 기술들이 발달하면 자본주의의 논리에 모든 과정이 노출되어 상품화될
것이고, 또 새로운 사회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가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무엇보다도 강렬히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현대의 가족 해체의 경향에 맞추어 기술은
발전할 것이다. 불임부부와 동성애부부, 자기의 몸과 활동을 중요시하는 여성들의 욕망,
그리고 편리성의 미덕 때문에 아기공장의 미래는 가깝다.
조화가 아니라 숭고미
솔직히 패션모델은 지나치게 가늘다. 여성의 육체가 성적 매력을 위해 가장 적절한
볼륨으로 가꾸어지기 위해서라면 그보단 휠씬 통통한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가장 잘
나가는 탑모델들 얘기다.) 패션모델의 극악스러울 정도의 가느다란 몸은, '섹시하다'는
느낌 이전에 경악스럽고, 다른 말로 하면 숭고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것이 미스코리아
등의 미인대회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여성의 상품화를 비난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패션
모델에 대해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이유인지 모른다. 아무리 그럴싸한 비난을 생각해내 봤자,
단지 일반적인 여성으로서는 불가능한 몸매를 미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건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즉 건강을 혹사하면서 어리석은 다이어트에 매달리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하는
이상으로 갈 순 없다.
그러나, 아무리 다이어트로 몸을 학대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하고, 미의 획일화에 대해
반발심을 갖더라도, 아찔하도록 길다래서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 형상들에 대한 경탄과
선망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찬란한 무대의 빛을 받으며 등장하는 여신들에게
함부로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건 어려운 일인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패션모델에 대해 반기를 들은 세력은 거의 유일하게 <바디샵>이었다.
바디샵의 마스코트 <루비>는 똥똥한 몸매에 배까지 나온, 귀엽게 생긴 마론인형이다.
만화 속의 배불뚝이 남자로서가 아니면 나온 적이 없을 듯한 엄청난 똥배를 하고 있다.
바디샵은 극소수 여성들만이 가능한 체형을 배타적인 미적 기준인양 제시하는 미디어의
불평등에 대해 좀더 일반여성들에 체형에 가깝고, 통통해서 귀여운 마스코트 루비를
통해 맞대응한다. 이미지엔 이미지로 대응하는 것, 바람직한 방향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지 패션모델을 패배시키는 것은 아니다.
되려 이 마르기마르기 경향에 대해 실질적인 제동을 거는 것은 엉뚱하게도 패션협회의
규제가 될 지도 모른다. 드디어 영국정부는 2000년 6월 21일 런던에서 여성장관 및
영국의 모델 에이전시, 패션잡지계 거물들을 모아 '몸매 정상 회담'을 열었다. 영국의학협회
등은 TV 및 패션쇼 등에 등장하는 마른 모델들에 자극받아서 정상적인 몸매임에도
외모컴플렉스와 식사장애를 겪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과는
패션계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마른 모델의 출연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자체 규제책을
내놓는 것으로 갔다. TV에 다양한 체형의 여성이 등장할 수 있게 하고, 패션쇼에 일정 비율
이상을 '정상적' 몸매의 여성에게 배정하는 방안 등이다.
패션모델의 극악스럽기까지 한 마른 몸매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현대가 너무 잔인한
요구를 그들에게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마약중독이 된들 이렇게 마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한 남성 모델을 보면, 여성 모델에게 적용되는
엄청난 슬림형과는 큰 격차가 있다. 대개 남자들은 일반인 중 키가 좀 크고 날씬하고
상체근육이 좀 발달한 정도의 체형일 뿐이다. 아직까지 패션계에는 근육이 탱탱하게
발달한 남자가 다수 여성들에겐 '섹시하다고' 느껴진다는 함의가 퍼져있는 듯하다.
그런 번들번들한 남자들은 몹시 '느끼하다고' 느끼는 여성들도 많지만 말이다.
그러나 패션모델들에게 맛있는 걸 먹을 권리를 찾아주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약간은 '안 되었다'는 생각은 하지만 역시 '좋아보이는 것' 역시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난 길이는 좀 짧지만 맛난거 먹고 사는 행복한 나에 대해서
만족하며, 패션쇼의 화려한 연출과 늘 함께 하는 쇼킹한 길이들에 보는 즐거움을 느낀다.
다만, 지나친 슬림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고, 인류
체형의 한계 안에서 또 다른 '더 멋진 이유'를 찾아 이를테면 강인한 야성미라든가,
성숙미라든가, 가능한 여러가지 가치로 포장되어 반대급부의 '좀더 인간적인 몸매'를
칭송하는 경향 역시 생기지 않을까 한다. 물론 나중에야 '유전자변형 패션모델'이 나올
가능성을 생각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영국은 참 재미난 나라다. 전부터 그 문화적 특성에 힘입어 수많은 뛰어난 락밴드들을
배출했고, 벌써 10년 전부터 잘 나가는 빅사이즈 모델이 있었다. 요즘엔 73kg의 '현실적 몸매'의
소피 달이라는 모델이 세계적으로 뜨고있어서 마리 클레르 6월호(영국판)은 '현실적' 몸매 vs
'완벽한' 몸매란 주제로 소피 달과 파멜라 앤더슨을 표지모델로 캐스팅해 2가지 표지를
발행했다. 어느 쪽이 더 많이 팔렸는지에 대한 기사는 안타깝게도 못 들었지만, 그게
어느쪽이든 간에 난 그다지 '목욕하는 여인' 풍의 풍만한 몸매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보다는 '선망'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남자 입장이라면
역시 '섹시하다'고 느끼는가 아닌가가 기준이 되겠지만 여자인 나의 입장은 어떤 여자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 여자가 아름답고 섹시하다는 느끼는 것과 함께, 나도
그 여자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쯤은 포함한 것이다. 난 풍만한 몸으로 모성적인
여자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이 부럽지는 않다. 차라리 케이트 모스의 빈약할 정도의
마른 몸매가 부러움을 일으킨다. 그건 내가 이미 사춘기를 지나며 잃어버린 마른 몸매,
어린아이의 특질이다.
또다시 어린애성이 등장한다?
어린아이의 미감은 역시 죽죽 위로 크기만 하는 굴곡 없는 마른 몸매다. 내 사춘기의
첫장면은 내 미감과는 달리 점점 굴곡이 생기기 시작하는 몸에 대한 엄청난 부끄러움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종이인형을 많이 가지고 놀았다. 어린시절의 미감을 지배하던 팔다리 쭉쭉
볼륨 없음 몸매의 종이인형을, 많이 그리곤 했다. 커가면서, 그런 몸매로 계속 남을
순 없다는 걸 알았고, 성인사회에 널리 퍼진 볼륨감있는 몸매라는 것의 개념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한 구석에는 여자의 의문지 권린지 숙명인지 알 수 없는 건강한
출산을 위한 조건과는 상관없이 죽죽 커버린 몸들을 어디선가 만나고 싶은 욕망이 남아있었나
보다.
어쩌면 마른 모델이 아름다운 것도 역시, 어린아이의 미감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도무지 여자 같지 않은, 도무지 인간 같지 않은 몸매가
전하는 이미지는 유성생식의 부정일수도 있고, 영원히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어린애성에
머무르려는 인류의 의지가 과장스럽게 분출된 미감일 수도 있다. 어린애성으로 단성생식의
이미지로서 촉진하는 것이 인류의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가자는 것일 수 있다고
난 추정해본다.
물론 반드시 키가 크고 몸매가 길어지는 방법으로만 사이버인류가 탄생하는 거라면
인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징후는 징후일 뿐이다.
키와 머리 속에 든 생각은 상관없을 때가 더 많으니까. 중요한건 이미지의 기능이다.
패션모델은 멋지고도 괴상한 옷을 입고 조명을 받으며 걸어다니는 일 외에는 그다지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가까운 미래의 인류의 상을 제시함으로써 그리고 특정한 방향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빼어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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