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대안적 미인의 등장?
back to noculture
요즘(1999년 후반기) 들어 tv에 많이 눈에 띄는 미인들의 한 가지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세기초 미인이랄까? 영화는 별로였지만 배우는 떠버린 [댄스댄스]와 스
피드 011 선전에서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는 황인영, 드라마 왕국 mbc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8시 일일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이태란, 이들 사이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얼굴이 전체적으로 약간 갸름하면서도 길어 계란형 미인임엔 틀림
없지만 절대로 '아이같아' 보이지는 않는 '성인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이
들이 바로 요새 뜨는 일종의 대안적 미인이랄까, 눈크고 이마가 넓고 코가 짧아
아이같아 보이는 세기말 미인형에 반대되는 듯한 요소들을 품고있는 미인형이다.
이런 징후는 댄스뮤직계에서도 볼 수 있다. 테크노바람을 타고 또다시 우후죽순
처럼 생겨나는 댄스뮤직 가수 중에 나라. 확실히 '어려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쫙
빠진 몸매에 약간은 '동양적'이라 할 만한 얼굴이 새로운 경향이랄까, 눈에 띈다.
지금까지의 기준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눈으로, 이런 얼굴이 미인이라고 인정되는
것은 아마도 패션계통 정도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재미난 것은 분장과 분위기 연출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들이 나오는 걸로 유명한
아모레 라네즈 모델의 이번(1999) 가을 이미지가 바로 이 '대안적 미인'이라는 것
이다. 조명탓도 좀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이태란의 얼굴과 비슷한 얼굴이 되었다.
예전에 김희선(여름)이나 오현경(가을) 닮은 분위기의 사진을 생각하면 참 재밌다.
드디어 일반 젊은 여성들이 꿈꾸는 여성상은 가망없는 공주나 실속 없는 섹시녀가
아니라 진취적이고 강단있는 현대여성상으로 움직이는 것인가? 글쎄...
얼마전 동아일보에 실린 재미난 기사를 보았는데, 현존하는 미인도를 가지고 분
석해본 결과, 조선전기의 이상적인 미인형은 코가 길고 약간 근엄하게 생긴데에
반해, 조선후기의 미인형은 코와 턱이 짧아 좀더 어린아이와 비슷한 형이었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가? 조선후기의 어린아이 같아 불안정해보이는 미인이야말로
아무생각 없이 남성의 성적 욕망에 부응해줄 수 있는 퇴폐형 미인이라고 한다면,
조선전기의 '근엄한' 여성은 진취적인 시대분위기가 미인형에 투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난 '세기초 미인'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다면 이 조선전기형 미인과 비슷한
지금의 유행을 그럴싸하게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기사는 조용진 교수의 말을 인용했는데, [얼굴, 한국인의 낯]을 보면 아주 재미
있게 한국인의 미의식, 진취적 미인과 퇴폐적 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희선을 최정점으로 하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형의 세기말 미인
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은 이쁘다고들 떠들어대도 뭐가 그렇게 이쁘다는거가?
눈이 넘 커서 떨어지겠다, 불안정한 얼굴이다 등이 나의 소견이다. 그 얼굴에 나는
상당한 불편함을 느낀다. (베스띠벨리 광고(아마도 98년 봄의 핑크톤광고) 하나만
빼고. 이 광고는 철두철미 어려보이는 이미지로 갔는데, 조명과 연출 모든 것이 뛰
어나서이겠지만, 상당히 이쁘다.) 물론, 남자에 대해서는 눈이 크다고 불만을 갖는
일이 거의 없던 것으로 보아 ^^; 내가 남녀차별을 하기는 하나 보다. 어쨋거나 내
가 상대적으로 맘에 들어하는 것은 '조선전기형 미인'으로서, 적당한 코의 길이와
아름다운 턱선이 사람을 안정감 있고도 믿음직하게 한다. 그런 여자에게라면 신뢰
와 사랑을 줄만하다는 생각인 것이다. 물론 나의 얼굴형이 조선후기형보다는 조선
전기형 미인에 가깝다는 것도 아마도 주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난
한국 탤런트 중에서는 심은하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다. '완전 전기형'은 아니지
만. 아무튼 그것은 나의 고집 내지는 취향일 뿐이었는데, 이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인기를 얻으며 떠오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역시, 가장 먼저 이제 사람들이 그
많던 '세기말 미인들'에 진력을 느끼기 시작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동안 문화산업의 중심이 십대로 점점 옮겨가면서 탤런트나 cf모델 등에서 보이
는 '미인들' 역시 나이대가 점점 내려가 스물초반에서 이제는 십대후반까지가 주축
이 되는게 사실이다. 얼굴형의 특징은 당연히 '어려보이는 것', 즉 짧은 코와 통통
한 볼, 뾰족하고 작은 턱, 커다란 눈 등으로, 끊임없이 갱신을 거듭하야 근일이년
동안의 여왕자리는 단연 김희선이였다. 물론, 김희선은 얼굴형만 어리지 실제 나이
나 묻어나오는 인격은 전혀 어리지 않다. 사실 중요한 건 어려보인다, 귀엽고 만만
해보인다 따라서 이쁘고 매력적이다라는 매카니즘이지, 실제로 꼭 어릴 필요는 없
는 것이다. 그보다는, 더 넓은 나이대의 남자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조금은 나
이가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려보이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무살의 011
티티엘'은 말만 스무살이지 실제 모델의 나이는 열다섯이다. 분명히 십대중후반부
터 이십대 초반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전략이었고, 상당히 성공했다.
그러나 십대중심의 문화기류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이제 어려보이는 얼굴, 세
기말 미인형은 이제 지루해보이는 지점에 다다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언제까지 십
대에게 얹혀있을 것인가, 다른 기류가 형성될 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가요'는 철저
히 십대중심이겠지만, 영화는 이십대, 뿐만 아니라 삼십대까지도, 드라마는 사오십
대까지도 포괄하는 시장을 가졌으니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뚜렷한 징후들이
지금 보이고 있다.
물론, 지금 내가 '대안적 미인형'이라고 이름붙여본 세기초형 미인들이 주류가 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최소한 몇년간의 유행이야 점칠 수 있지만. 만약에 경제가
호황이 되고 새천년의 시작을 흥분하여 앞날을 기대하는 분위기로 간다면 상당히
가능성 있다. 사회가 진취적인 분위기라면 같이 앞날을 헤쳐나갈 동반자로서 여성
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경향이 좀더 강해질 것이니 말이다. 여성들 입장에서도, 최
대한 자기를 감추고 남자에게 어떻게든지 섹시하게, 혹은 귀엽게, 고분고분하게 보
이려고 애쓰는 일은 상당히 귀찮고 피곤한 일일테니 환영할만 할 것이다.
내가 기대해보는 건 최소한 몇년 동안이라도 확실하게 조선전기형, '세기초' 미인
들이 인기를 모으면서 사회분위기를 형성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의 체형은 문
화의 영향을 받아 쉽게쉽게 바뀐다고 하더라도 여성들 대다수가 라라 크로포드의
몸매나 티티엘 모델의 얼굴이 되지는 못할 것이고, 현실세계에 사는 대다수 여성
들이 사회적 이상형과 자신의 현실 사이의 엄청난 거리에 자신감을 잃거나 하여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개발하는 일에서 등을 돌리는 불행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
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얼굴은 어린 나이에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그 얼
굴을 벗어난 젊은 나이에 '내 전성기는 다 갔어' 하며 젊음 포기하고 기성가치 밑
으로 기어들어가는 볼성사나운 꼴들은 연출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단지 개인의
의지나 능력뿐 아니라, 사회분위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시각적으로 매력
적이고 욕망의 대상이 되는 얼굴은 사회변화에 대해 가장 유연적이고 타협적이면
서도 언제나 핵심을 짚는(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선에서 정형화된다. 개인적인 반
항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히 흐름을 탈 줄 알며 거기에 더하여, 혹은 반
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매력적인 것으로 세울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언제나 경쟁상황에 놓여있어서는, 다수가 아름다운 여자가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1999.11.30
back to no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