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진리가 정열보다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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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논쟁하기
보다는 나이, 신분, 빽, 완력 등의 논리외적 요소로서 상대의 기세를 제압하려고
하는 싸움질의 경향이 농후하다. 민족마다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차분한 어조의
논리 정연한 주장이 통하는 곳은 사회관계 중에 아주 일부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있어서나 세일즈에 있어서나 연애에 있어서나, 통하는 것은 감정이지 논리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고발하거나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이로 인해 오랫동안
당혹스러웠고, 뭔가 대처법을 마련하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제법 단순하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짝을
찾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인다고 하지만 그보다 휠씬 막중해서인지
당연히 다 안다고 생각해서인지 부연하지 않은 전제는 성욕은 모든 문화적 행위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늘 자기기만이 자아성찰보다 우위에 있다. 자기기만을 잘 하는 사람이
이성을 더 쉽게 매혹하며 유전자를 더 많이 뿌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론'([이기적인 유전자], [유전자의 음모])에 근거한 추론이다. 이기적
유전자론은 모든 문제를 유전자의 책략으로 환원하는게 아닌가 싶은 '환원론적 과학'
의 냄새가 풀풀 나긴 하지만 가끔씩 절묘하게 들어맞는 가설을 제공하곤 한다.
한 개인이 솔직한 것은,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속을 위험이 줄어들고 공정한
거래를 함으로써 이득이 될 수 있지만, 당사자나 당사자의 배우자, 가족에게는
그다지 덕될 것도 없고 심지어 손해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적당히 거짓말하는 능력'은 개인과 가족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필수가
되다시피 한다. 아주 단순한 문제로, 애인에게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보다는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이 있다. 거짓말의 차원이 아닌 '자신감'
의 차원에서도, 인간은 자기기만 능력으로 자신의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림으로써 행복하게 살고, 자기능력 이상을 인정받거나, 발휘하기도 한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는 것은 사실상 1. 평가 '기준'을 '객관적이고
수치적인 사회통념'에 맞추어 본다는 의미다. 깎아내리던 추켜세우던 어느 쪽에인가
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판적인 많은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어두운 세계에
서 살며 불행을 즐긴다. 그리고 2.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사실까지도 다 끄집
어내어 본다는 의미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공정히 평가하고 자기와 남, 옛것과 새것,
작은 차원의 것과 큰 차원의 것을 가리지 않고 유추해 볼 때, 어느 정도의 공정성,
'있는 그대로'라 불러도 과히 부끄럽지는 않은 자기만의 성찰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역시, 어느 순간에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순도의 차이일 것이다. 대개 '잘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일수록 그 순도는 떨어진다.
많은 걸 고민하는 건 빨리 늙는 한가지 방법이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책을 쓸 정도로 많은 항목들을 점검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돌아보는'
성향을 가졌고, 많은 걸 알고 싶었고, 모든 것에 답을 말하고 싶었다. 이런 가당치
않은 똥고집도 일종의 정열로서, 유전자가 원인제공을 했지만 환경에 따라 클 수도
있고 뒤로 물러날 수도 있다. 다행히 난 생각하는 싹을 짓밟히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불합리들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즐겁게 살 시간을 줄이는 길로 갈 위험이 큰 것이다. 그리고 희생은 늘 대가를 요구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물음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기엔 먹고살기에, 또 사랑하고 미워하기에
바쁘다. 그래도 사회가 전보다 휠씬 대중교육이 만연해졌고, 정보소통도 획기적인
발전을 하는 중이니까, 좀 낫긴 하다. 일하고 짝찾고 남는 시간에 우리는 정보의
바다를 서핑할 수 있다.
지금 이 세상이 전보다 더 나아진 사정이라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나머지 욕망을 상당히 희생해야 했던 지난날에 비해서 확실히 지식에 접근하는 길이 대중화되었고, 따라서 희생을 '아주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화장하고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고, 연애까지 하면서도 공부할 시간을 가진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란 이유로, 남자의 요구에 자기를 맞춰들어가는 일만 없다면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희생을 줄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진리를 위해 다른 욕망을 희생해야만 하는 금욕적 인간들의 진리란 것은 처음부터
치우치고 완전치 못한 것이 될 것을 예정하고 있다. 뽐내는 수컷의 자질(멋진 몸매,
정력, 뻔뻔함 등)이 없어 학문의 길로 들어선 식자들의 비율이 줄어들수록 정보는
솔직하고 투명해질 것이다.
삶의 기쁨과 자신의 탐구 사이에 균형감각을 가지고 문제를 처리하는 현명한 탐구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조건이 현대사회엔 자라나고 있다고 난 주장하련다.
과거의 가치들이 자기폭풍에 날려가버릴 듯한 현재의 불안한 사회에서 더욱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가치들만이 판치는 판이 벌어질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되도록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우선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 살고, 자기 유전자를 많이 남기는 방법이니 똑똑한 사람이 할 짓이다.
개인적으로, 날 멈출 수 없게 하는 것은 '하고 싶은' 욕망뿐만이 아니다. '알고 싶은' 욕망이 날 오늘의 이 모습으로 이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서도 흡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이러저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사정들 때문이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왜 그런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탐구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혹은, 앞으로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를 내실있게 고민하면 된다. 필요하면, 필요한 호르몬이 나오는 것이고 원한다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의문이 잊혀지지 않았기에 전진해왔다. 아무생각없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모든걸 버려버리고픈 유혹, 그리고 나의 불평불만과 컴플렉스를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걸 해석해버리는 위험, 그에 따라 나의 삶을 위한 자리는 내버리고서 메마르는 부작용,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맞서싸운 큰 적들이다. 페미니즘을 버리면서야
그에 따르는 이율배반, 또는 결벽증을 버렸다. 그게 가장 큰 고비였다고 생각된다.
나는 지금의 균형감각이 그럭저럭 맘에 든다. 아주 맘에 드는건 아니다. 한쪽의
부족함을 느낀다. 한참동안 많이 놀았으니 이제 또 많은 걸 흡수하고 싶다.
인간세상에서 진리는 정열보다 못하고, 거짓말보다 인기가 없지만 네트에서 몇가지선을 타고서는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행복도 성적순이 아니지만,
1순위가 아니어도 잘 사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까. 사회가 불합리할수록 개인의
정당한 행위는 보답받지 못하며 따라서 '똑똑한' 사람보다는 '열의 넘치는' 사람이 거래상대로 가치가 있다. 쉽게 치이지 않고 지치지 않는 성질이 전체적인
파악능력보다 중요시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어린' 사람을 높이 쳐주는 가치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된다. '아직은' 지치지 않았다는 것이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지식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다. (이건 즉 단순노동 속에선 쌓을게 별로 없다란 얘기다.) 이렇게 되면 '똑똑함'에 도달할 가능성이 희박함에 따라 정열만이 (어쩌면 비극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다면 사회의 합리화는 그와 반대되는 운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20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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