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너의 [거짓말]엔 한번 속지 두번은 안 속는다
-'청소년 보호'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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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난, 한번도 안 속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장선우 감독에 대해선 말이다. 영화 [거짓말]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예술도, 포르노도 아니고, 그저 '스스로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만'이 목적이다. 교복입은 잘 빠진 여자애를 내보이고서 섹스는 졸업한 후에 시킨다는 얄팍한 수법으로 빠져나가는 장선우 감독의 진실은, 그전의 작품들(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로 미루어볼 때 '어린애를 따먹고 싶다' 라고밖에 해석이 안 되는 바이다. 솔직하게 그냥 '따먹고 싶다'고 하지 못하고 이리 꼬고 저리 꼬아서 뭔가 있는듯 양념을 쳐바르는 장선우 감독의 '사기술'을 예술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해라. [거짓말]을 예술이라고 부르는 장선우 감독이나 외설이라고 부르는 음대협이나 자기네 본성을 가리고 덮는 '위선'을 행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하는 식의 청소년을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공익광고를 보면 사실 웃기지도 않다. 지금 문화산업의 스포트라이트가 어딜 향하고 있는데, 누구를 (성적으로) 팔아먹어야 장사가 되는 판인데 누굴 보호한다는 건지. 욕망의 대상으로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연예인들이 온통 십대판인데 말이다. 모델이나 탤런트는 물론이고 특히 아이돌 가수들은 모조리 십대 중, 후반이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십대는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물론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건 동시에 욕망의 주체로서도 초대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초대는 '착한 소비자로서의 위치'를 벗어나서는 거의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정말 불공정한 것이다.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은 말그대로 '한창때'이며, 잘 나가는 청춘이다. 가장 멋진 패션과 가장 멋진 육체. 욕망의 대상으로서도, 주체로서도 아무런 하자가 없는 (즉 스스로나 남들이나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시절인 것이다. 'n세대'를 안 팔아먹으면 핸드폰도, 컴퓨터도, 초고속인터넷망도, 드라마도 물론 음악도 도무지 팔아먹을 수가 없다. 만약에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족속이다. 그것은 물론 돈이다.
만약에 부모가 돈을 많이 벌어서, 게다가 용돈을 잔뜩 줘서 비싼 브랜드 제품들을 별걱정없이 사입고 두르고, 좋은 데 가서 좋은걸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개 그렇게 부가 공평하게 분배가 되지는 않는다. 많은 십대들은 입고 싶은 옷을 사고 친구들한테 꿀리지 않게 놀고 다달이 핸드폰 유지비를 내기 위해서 패스트푸드점이나 주유소 아르바이트 같은 파트타임제 저임금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어느 자본주의 사회나 비슷하겠지만, 한국의 파트타임제 노동자의 위치는 불안정하고 열악하다. 뭔가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최소한 대학생도 아닌 신분으로는 아무도 써주질 않고.
한마디로 지금 한국의 십대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가운데에 주인공으로 나서 있지만 손발은 다 짤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네트세대로서 능력을 발휘해야할 터이지만, '학교는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것'이기에 컴으로 밤새는 대신 입시공부에 매달리는 것이 정상이고, 활화산 같이 타오르는 청춘을 불살라야 하는데'청소년은 무조건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애정생활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는 다 지하로 숨어들어가 버려서 비위생적이고 '타락한 느낌을 자아내는' 불편한 환경에서만 성적 쾌락이란 걸 즐길 수 있다. (실질적인 피임교육만 남녀 중고등학생한테 실시해도 이 나라 여성 복지는 많이 좋아질텐데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공인된 나이, 공인된 학력에 다다르기 전에는 몸으로 떼우는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 고등학생 정도면 벌써 뛰어난 문장력과 사고력을 갖춘 사람도 있고, 인터넷 사업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인생의 여러가지 굴곡을 드러내는 연기를 할 능력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성년자는 '미래를 위해' '마련되는' 자들이기 때문에 돈을 벌 권리가 없다고들 한다. 웃기게도, 그 마
지막의 연기능력만큼은 공인되어있다. 고등학생 탤런트, 배우는 이미 많지 않은가. 물론 우리나라 배우들은 전체적으로 몹시 연기를 못한다. 별로 능력은 없지만 어쨋거나 얼굴 내밀 '자격'은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젊고' 예쁘고 잘 생겼다는 자격요건 말이다.
난 연예인이다 난 만팔천원이다
다른 사회활동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유독 연예계만 십대를 우대해 주는 것은 한 가지 사실, '욕망은 솔직하다'는 걸 인증하고 있다. 학교와 법제도, 기득권은 절대로 미성년은 보호대상이며 각종 사회악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하고, 그들의 욕망은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는 분들이-사회지도층?위해층?- 지들은 딴구멍으로 영계 찾아다니고 세컨드 거느리고 살긴 한다.) 그러나, 가장 예쁘고 만인의 욕망의 대상이 될 만한 성적 매력을 지닌 탤런트, 가수나 모델이라야만 '대박'은 터뜨릴 수 있다. 학생은 공부해야지 등의 원리를 따지다간 그 판에선 절대 돈 못 벌고 쫄딱 망한다.
십대가 연예계를 주름잡는 건 그들이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십대가 욕망의 주체로서 돈을 주고 음반을 사는, 문화상품의 소비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미디어를 장악한 '십대취향'은 십대뿐만 아니라 이십대 및 '만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예전의 십대들처럼 자기보다 몇살씩 나이 많은 이십대의 우상들로 만족하지 않는다. 자기와 똑같은, 어린 나이의 스타를 통해 감정이입하고 대리충족하며 선망과 질투심을 만족한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오빠들'을 향해 사랑을 쏟아붓는 대신 스스로가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게 더 보람있고 만족스러울거 같으나,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대야 할말없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들이 제일 선호하는 직업이 연예인이라고 한다. 연예인은 아무 똑부러지는 능력 없어도, 단지 아름다운 존재(외모)만으로 인정받고 돈도 잘 버는, 멋진 직업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물론 돈을 많이 벌어도 (특히 가수들은) 반드시 자기가 가져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대개 그 점은 무시하는 거 같다.
많은 청소년들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건 당장에 다른 길들은 모두 막혀있는 것과 달리 연예인은 자기 또래가 '운좋게' 또는 '부모님이 이쁘게 낳아준 덕분에'지만 단숨에 '뭔가 이루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솔직한 욕망 때문일 것이다. 만인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누구나 그러고 싶겠지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사회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은 기존의 이십대와 새로이 추가된 십대뿐이다. (한국에서는 그렇다. 미국에서야 삼십대 스타가 많지만) 물론 되는건 그중에 극소수뿐이지만, 자기는 꿈꿀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일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 즉 십대들 다수는 경제적 독립을 행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밑천은 젊은 육체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모델이나 탤런트가 될 기회를 잡을 수는 없다. 또한 모두가 열심히 내일의 성공을 꿈꾸며 공부에 매진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많은 십대들은 폼나게 유명 브랜드를 걸치고 싶고, 멋진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와 사귀고 싶고, 신나게 놀고 폼나게 쓰고싶다. 그런데, 돈이 없다. 이 점에서 힘들고 돈도 별로 못 받는 노동 대신 손쉽게 많이 벌 수 있는 '몸팔기'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이걸 소수 날라리의 문제로 치부하기 전에,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성풍속과 성의식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신매매범을 아십니까?
옛날 옛적에(80년대 후반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인신매매범'이 왜 활개를 쳤는지에 대해, 지금은 왜 없어졌는지에 대해, 우리는 지금 아주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그땐 '영계'를 찾는 남자들은 많았지만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고, 지금은 제발로 걸어들어오는 공급이 많은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성의식은 정말로 많이 달라져서 옛날엔 '몸 버리고 인생 쫑나야' 겨우 체념했던 '영계'들이 요즘엔 단지 좀 '인간답게' (돈을) 써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성적 써비스업에 종사하는 케이스가 많다는 것이다. 갖가지 젊음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잠시 자존심을 누르고 아저씨들을 상대해 고수익을 올린다, 라는 것은 '배가 고파서' 라든가 '이왕 버린 몸' 이라든가 하는 궁색한 윤리와는 상관없는 나름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은 바로 이런걸 두고 하는게 아닌가 싶다.
십대의 욕망 얘기하다가 갑자기 인신매매니, 성적 써비스업이니 하고 뛰는 것에 대해 뭐라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에서 직업을 가진 젊은 여성 중 접대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은 상당하다. (몇백?몇십?만이래더라) 한국이 태국이처럼 성을 관광상품화하는 데도 아닌데 오로지 '내수용'인 그 공급을 다 채워주는 수요가 있다는 것은 참 기가 찬 일이다. 한국 남자들에게 일상적으로 제공되는 갖가지 성적 써비스들은 정말 지나치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아닌척, 가족이니 순결이니 하고 유교주의를 드높이니 역겨운 일이지.) 서양 바이어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놀라는게 그 일상적인 접대문화라는데.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이미 성적 써비스업(호스티스, 호스트, 매춘 등)이라는게 '자기를 완전히 내버리는 일'이라는 인식은 퇴색했다. 별로 떳떳치 못하다는 인식은 여전히 다수를 지배하지만, 그게 뭐 그리 큰 일인가 하는, 얼마든지 있는 일상적인 일로 취급하는 경향 역시 지배적이 되었다.
나라도 파는데 buy korea!
지금은 '몸팔기'가 부추김당하는 시절이다. 현대인들은 이미 각종 미디어를 통해 성적 이미지 마케팅, 즉 '몸팔기'에 익숙해져 있다. 2000년 봄에 크게 히트친 018의 광고, 난 만 팔천원이다.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카피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도메인도 무주공산 사이버스페이스에다가 말뚝박아서 팔고, 나라도 파는 시절이다. 상상력도 팔고 (광고) 안심도 팔고 (보험) 나라도 파는데 (by korea) 나의 몸이라고 못 팔으랴?
우리들 스스로도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판다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자본주의 상도덕이 내재화되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우수한 인재라서 벤처에서 연봉 얼마에 비싼 몸값에 팔리는 것만이 자랑스럽고, 워낙 섹시하고 매력적이라 하루밤 얼마에 제일 잘 나가는 선수라는 건 무조건 부끄러우란 법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남의 말 좋아하고 체면이 세상에서 젤 중요한 나라이지만 한편에선 스스럼없이 웃음을 팔고, 성적 써비스를 판다.
섹시함의 힘과 여성의 지위
무조건 억압당하기만 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부추김을 당하면서 스스로가 갖는 (성적) 가치를 자각하게 된 젊은 여성들이, 어떤 형태로든 성의 상품화와 자기 사이에 가지고 있는 것은 자존심, 그리고 남들 눈의 무서움밖에 없다.
여자가 자신의 섹시함이 가진 힘을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다. 이걸 통과 못 하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비리비리할 수도 있다. 또 이걸 과신하여 아무데나 앵겨붙으려고 하다가는 품위고 뭐고 다 떨어지고 '잡년' 취급을 받는 신세가 된다.
현대 한국인들은 흔히 '전통윤리'라고 하면 가문중심주의에 남녀유별, 치명적? 순결주의로 치장한 조선시대 유교주의를 생각하곤 하지만 실은 그것도 한반도에 정착한지는 긴긴 역사에 오백년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민중들의 삶은 지배층의 윤리와는 상관없이 전개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문제의 '전통윤리'가 일반화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온나라 백성이 다 양반가문에 족보를 차게되면서부터라고 보아야 될거 같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대한민국 시대까지 비교적 짧은 시기(길어야 2백년 정도?)에 형성된 극악스러운 여성차별 이데올로기를 우리가 상대하고있는 셈이 된다. 이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남성의 자유분방한 성은 그의 지위와 예술적 능력에 따라 찬양되기도 하고 최소한 '힘의 발현'으로서 높이 평가받는데 비해 여성의 자유분방함은 곧 '화냥질'일 뿐, 그 이외의 어떠한 것도 되지 않는다.
새롭게 성개방이라든가 여성해방이라든가 개인주의 등등의 사조가 흘러들어왔지만, 그리고 자본주의라는게 여성상품화 없이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것이기에 '개방' 자체는 많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성개방에 대해서는, 그리고 몸팔기라는 행태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회적으로 경멸일변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 안에는 전래의 유교주의자들도 있고, 자유분방한 젊은이들도 있고, 엄청나게 다른 윤리와 생활양식이 혼재해 있다. 그런데, 그것이 플러스 10 마이너스 10이면 합이 0인게 아니라 합은 언제나 20 이상인 것이다. 곱하기를 해서 100 정도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미 잘 나가고 있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성윤리는 언제나 사회적 테러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나 여성이거나, 미성년자라면 아주 만만한 상대다.
권력을 가진 측에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만 제도와 무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실제 사회가 굴러가는 방향은 자유분방한 성윤리, 다양한 욕망의 분출이 될 것이지만, 그리고 거기에 발 맞추어야만 '문화산업' 시대에 맞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겠지만, '문란함'의 죄값을 치루는 개인들은 꼭 만들어 놓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이상한, 눈가리고 아웅 식의 겉치레지만, 지배적인 사회윤리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들 겉으로는 '아닌 척' 해야한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은 욕망의 대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오로지 잘 나가기에는 걸리적거리는 여러가지가 많다. 시선을 한눈에 모으는
것은 분명 일종의 권력이다. 특히나 한국사람은 우뇌중심이라 외모에 약하니 여성의 섹시함은 남들을 움직이기 위한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재수없는 사회적 테러에 또한 노출되는 건 무슨 일인가. 이렇게 되면, 여성들의 성은 억압당하는 것도, 부추김당하는 것도 결국은 한 가지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남성 욕망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또 한 무더기의 썰이 등장을 하겠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런 사회적 착각을 그저 무시하고 남성의 욕망을 이용해서 챙길 것만 챙기는 여성들도 많다는 사실만 지적하자. 그들에겐 남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원조교제라는 미명 아래 일종의 프리랜서 매춘을 하는 여중고생들은 분명 그럴 것이다. 그들은 위험은 감수하지만 죄책감은 없다.
불공정 거래?
다른 거 팔면 고맙게 잘 받아쓰면서 성적 써비스를 파는 자에 대해서는 유독 인간취급을 안 하고 막되먹은 취급을 하는 사회적 의식은 참으로 자본주의 신민답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고래로 생산력의 근원이 되는 생식을 집중관리하다보니 강한 윤리가 성에 매여져있기 때문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심히 상도덕에 어긋난 것이 아닌가 한다. 산 놈은 뭐라 안 하고 판 년만 뭐라하다니, 이건 불공정 거래다.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
성적 써비스를 사고 파는 행위에 대해서 각 개인들은 다른 윤리를 가질 수 있다. 이를테면, 나의 윤리의식으로는 그건 인격과 성에 대한 모독으로, 참 아니꼽고 치사한 행위라고 생각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개의 매매춘이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사의 노동과 권력관계들은 원래 아니꼽고 치사한 것과 아예 관계없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사정이다.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이해를 해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상황에 마주할 때마다 생각이 바뀌곤 한다. 그래도 최소한, 공정성만큼은 유지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파는 행위가 떳떳치 못하다면, 사는 행위 역시 떳떳치 못한 것이다. 사는 행위가 욕구불만을 해결하는 필수적인 것이라면, 파는 행위 역시 해결사나 성적 장애 치료사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남성 역시 단순한 자유분방을 벗어나서 몸팔기로 나서면 사회적 경멸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지위가 떨어지는 정도'는 다르다. 지금은 남성의 성도 상품화되고, 사회적으로도 대상화되어가는 중이다. '성적 담론의 도마 위에 올라갈 필요가 없는' 기득권을 가진 자로서만 살아가기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남성이 그것을 부정하거나, 혹은 박탈되거나 하여 벗어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남성들에게 해방을 주는 것이라고 난 본다. 위에서 얘기한 젊은 여성들과 마찬가지의 도전과 위험에 남성들 역시 처하게 되는 것이다. 욕망의 대상으로서 자신을 내놓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아닌척 하는 정신으로는 온전한 욕망의 발현을 기대할 수 없다. 갖가지 사회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꾸밈없는 자신의 성정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그러한 몸과 시선을 통해서만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조화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난 믿는다.
청소년에겐 보호가 아니라 권리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다. 십대들에겐 '사회악으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한게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는게 필요하다. 스스로 조건을 갖춰나가고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는데 배려와 지원을 해주어야 하지, 만 19세가 되기 전까진 기다려, 하고 모든 삶의 모험과 재미를 차단하는 어거지는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존중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랑스럽지 못한 삶에선 아무것도 해낼 수 있는게 없다. 청소년은 보호해야할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 누려 마땅한 권리들을 빼앗은 쪽이 반성을 해야하며, 권리를 돌려주어야한다.
성생활을 포함하여 연애를 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당연 안전한 섹스를 위한 교육과 인격적으로 도움되는 만남을 위한 코치가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일어서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는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파트타임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미성년 취업에 대한 보호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좀더 큰 기회, 넓은 기회를 갖기 위해서 대학에 진학할 생각으로 공부에 열중하여 성공하는 십대는 어디까지나 소수일 수박에 없다. 그외의 분야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찾으려하는 젊은이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크나큰 폭력이다. 그리고 육체의 성숙과 더불어 당장 누려야할 성애의 열락을 무조건 유보한다는 것도 억지스러운
환상일 뿐이다. 그들이 당장의 기쁨들과 모험, 인생을 위해 하는 선택을 가로막을 권리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이 사회에서 뭘 하려면 늘 돈이 들어서 문제지만, 그것도 최소한 자기네가 벌어서 쓰겠다는 거야 막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음란물에 대한 기준 역시 뒤엎어야한다고 본다. 한국의 음란물의 기준은 매우 편협하다. 법조문에 달린 '정상적인 성인이 얼굴 붉히지 않을 정도' 라는 기준의 잣대가 되는건 '한달에 한번도 못하는' 생활에 지친 중년들의 좀스러운 성의식뿐인 게 아닌지? 실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변태적 성욕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성인용인한 다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적당한 단계를 몇개 더 만들어서 (15세이상가, 13세이상가 등) 일상생활과의 거리에서 받는 충격을 줄이고, 일찍부터 새디즘이 아니라 범죄에 가까운 포르노에 익숙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요새 영화관에 걸리는 미성년 관람불가 정도는, 개인차는 있겠지만 아마도 만 13세 이상이면 다 수용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원조교제 신드롬에 대해서는 다음에..
200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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