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달콤한 것과 시큼한 것 - 서태지의 황금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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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 인간세상에서 쉽게 환영받는 것은 달콤한 것이다. 혹독한 기아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단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나 이젠 그런건 그만 먹고 담백하고 몸에 좋은 것이나 좀 먹었으면 하는 어른들이나간에, 전체적인 입맛은 단것을 선호한다.
달콤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은 먹을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화전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중에서도 '여자'와 '음악'에 대한 취향에만큼은 달콤함 일변도인 것이 아직까지는 진실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매력적인 여성 이미지들은 대개 날씬하고 달콤하고 무해하며, 청각환경을 이루는 대중음악들 역시 팝팝팝, 가요가요가요, 댄스댄스댄스, 기본적으로 무해하고 안 전복적이다.
** 미각과 음악문화는 몸에게 '적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모양을 보인다. 우리의 식생활이 외식산업에 많이 의존하는만큼, 조미료 첨가물 많이 치고 느끼하게 만든 단 음식들을 큰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어야 실질적으로 사회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음악도 비슷하다. 표절로 도배를 한 그게그거인 물질들이 아예 기본 환경으로 도시생활에 깔려있는데 일일이 다 분노하고 역겨워한다면, 건강한 생활이란게 정말이지 힘들어진다. 이래저래 굳세어야 할 한국인이다. **
새콤달콤?
근래에 달라진 점이라면 '한국 댄스'에 힙합이나 하드코어, 슬래쉬 따위가 접목되어 상당히 '시큼한' 맛을 내려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인데, 그 결과로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 나왔나 하면, 전혀 아니다. 양념으로 시큼한 맛을 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본분을 잊지 않아 '저항적인 척'만 하고 절대 저항은 안 하며 '공격적인 척'만 하고 아무도 공격하지 않는다. 갈데없는 젊음의 반항도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그냥 달콤한 것만 계속 먹기는 질렸다는 것일 뿐. 그렇다고 아예 시큼한 것을 먹을 생각은 없는 대중을 위한 요리일 뿐이라는 얘기다.
새콤달콤, 90년대 상반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가히 그 비율이 절묘하여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서태지는 랩과 메탈을 이어붙인, 그러면서도 여전히 가요로 남아있는 기가막힌! 음악을 만들어내어선 그것을 또 무대 위에서 춤과 아우러 완벽한 하나의 공감각적 예술양식을 제공했다.
거의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할만한데,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 이후 한국의 음악계는 확실히 그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요계는 그후 춤과 노래가 하나의 무대로 아우러지는 예술형식-댄스만을 선호하게 되었다. 여전히 막강 뽕짝과 발라드는 강세이지만 음악산업의 중심엔 언제나 댄스가 있고, 음악과 춤과 이미지, 스타의 총체적인 양상으로서 말할 만한 것도 댄스뿐이었다.
또 하나는, 서태지 덕분에 긍적적 맥락에서 메탈의 사운드에 접하게 된 많은 팬들이 점차 락매니아가 되어서 락팬들이 양적으로 큰 증가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시큼한 것은 옳은 것이다?
90년대 중후반, 세계를 휩쓴 얼터니티브 열풍 안에서, 니르바나가 세상에서 최고인듯 하던 락팬들의 미감은 단연 그동안 수없이 달콤하기만 했던 음악들에 식상했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시큼한 맛'에 정신없이 반한 것이었다. 90년대 한국에서 영화붐을 일구었던 영화매니아들의 열광은 한편으로는 지겹고 지겨운 TV에 대한 반발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90년대 새로이 형성된 한국인디락의 팬들 역시 같은 매카니즘을 가진다. 춤추는 인형들이 부르는 달콤하고 매끈한 가요는 지겹고 또 지겨운 것이었다. 이들 '인디팬들'은 모두 '시큼한게 좋은 것'이라는 감수성으로 자기길을 뚫고나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시큼한 것도 많이 먹으면 지겨워진다, 는 사실이다. 위선적인 모습도 역겨운 일지만 위악적인 태도 역시 많이 쳐다보면 질릴 수밖에 없다. 귀여운 척, 이쁜 척하는 가수들만 지겨워질 수 있는게 아니라 저항하는 척, 반항하는 척, 공격적인 척하는 음악 역시 지겨워질 수 있다. 그것이 언제나 새로운 형식과 감수성으로 새로 갱신되지 않는다면, 엇비슷한 모양으로 끝없이 반복된다면 말이다.
2000년 가을, 서태지가 오랜만에 컴백을 하여 하드코어스러운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이에 대한 많은 락팬들의 반응은 떫더름한 것이었다. 이미 그들은 시큼한 음악들을 많이 들었던 것이다. 콘도, RATM도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져 하드코어라는 장르가 이미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장구한 세월 속에 침잠해서 다시 생명력을 얻은 것도 아니고 그저 딱 '지겨울 만'해서 서태지가 '새로운 음악'을 한다고 시큼함의 비율을 대폭 올려서 돌아왔으니, 그렇게 대단한 반응이 나올리 만무하다.
단지 지금 그들 중 많은 이에게 그런 '좋은 음악'(락)을 많이 듣도록 시초에 자극해준 서태지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랄까 의리랄까 그런걸 가지고 있으니 일부러 나서서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고, 그저 '좋구만, 뭐' 하고 가만히나 있는 것이다. 그런 식이거나 아니면 좀더 '관용적'이거나. (아직 핌프락이 안 지겨운 팬들이라면 아마도 이쪽일 것이다.) 이게 과거 서태지의 팬이었던 락팬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내 눈에 안 차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일률적인' 평론가들의 태도인데, 그냥 '그저그렇다', 한 마디 하기도 왜 이리 눈치보이는 것인지, 막강 서태지팬들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질리면 먹지 않는다 그뿐이다
무엇으로 포장하든간에 원리는 단순하다. 달콤한 것에 식상한 사람은 조금은 시큼한 것을 먹고 싶어한다. 그러나, 본래 자기의 미각을 완전히 뒤집는 '완전 시큼한 것'은 먹지 못할 것이다. 적당한 비율의 안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시큼한 것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사람은 다시 달콤한 것이 먹고 싶다. 그렇지만 역시 완벽히 달콤한 것엔 우욱~ 느끼해... 하며 돌아서고, 적당히 그 미각을 자극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얼터 열풍 뒤에 새록새록 인기를 얻은 모던락의 조류들은 이 매카니즘으로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이 판별을 가지고 단지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분명 '옳은 것'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끝까지, 무식하게도 사기를 치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한 노래를 좋아하거나 또는 싫어하거나 할 수는 없다. 개인이 그 속에 속해서 사는 문화라는 것의 힘이 사람들이 되도록 같은 것을 좋아하고 또 같은 것을 싫어하도록 응집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그들 각자는 경험의 폭이 다른 것이다.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지만, 그 속도는 각부분에서 천차만별이다. 한쪽에서는 이제야 좀 시큼한 것에 반색을 하며 반기지만 다른 쪽에서는 그 어정쩡함에 떫더름해한다. 그리고, 달콤함과 시큼함 외에도 있을 수 있는 수많은 범주들 또한 나름의 새로움과 지겨움의 싸이클을 가지고서 맛의 변별을 행할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미각이 옳다고도 할 수 없고 매니아나 락팬들의 미각이 옳다고도 할 수 없다. 누구나 자기의 입맛 안에서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것이니까. 좀더 정보가 빠른 매니아가 꼭 좋은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무슨 분야이건간에 매니아라면 일반대중보다야 먼저 식상했을테니 남들보다 좋은 맛을 먼저 보고 한참동안 지겨움에 멀미나는 인생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좋고나쁨의 미감적 판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모두가 자신의 역사가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감상을 말하고 또 다른이의 반응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고, 그 위에서 엄정한 비판을 하든지 화기애애한 담론을 형성하든지 할 수 있는 '양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양식을 키우는 토양 위에서만이 풍부하고 세련되고도 활기있는 문화를 꽃피울 것이다.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20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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