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남자의 악세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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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우산을 쓰고 얇게 내리는 빗속을 걸어가던 나는 한 가지 어려움에 봉착했다. 앞서
걸어가는 키크고 날씬한, 모노톤으로 옷을 입은 사람이 과연 남자일까, 여자일까? 그 훤칠한
길이와 시원시원한 걸음걸이를 보면 남자인 것 같았다. 그러나 가뿐가뿐한 것이, 터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가 길어서 묶었지만 이건 남자들도 할 수 있는 차림새다. 그러나, 분명
여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곱창밴드 비스름한 (좀더 굵기가 가늘은) 머리끈을 했다. 그리고 역시
여자들만이 매는 숄더백 큰거를 매고 있다. 좀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씬한 미인은 역시 남자가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이나 도저히 남자는
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있는 악세서리로 단장한 그 남자의 차림새는 어쨋거나 무척 어울리고
괜찮았으니, '앞서가는 남자'로 불러줘도 되지 않을까 한다. 뒷모습만을 보고 하는 말이지만. ^^;
요즘 몇년간 한국의 젊은이 패션을 볼 때, 남자 패션에서 가장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을 들라고
한다면 난 헤어밴드를 꼽고 싶다. 이 헤어밴드야말로 3년 전만해도 도저히 남자는 감히 할 수
없었던, 여자들만의 악세서리였다. 물론 머리 긴 남자들이 집에서 뒹굴거릴 때 누나꺼 동생꺼
뺏어서 하는 것은 말고 얘기다. 패션은 어디까지나, 남한테 보여줘도 좋다고 생각하고 집밖에
입고 쓰고 하고 나갈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외출해서 친구들한테
여자친구한테 보여주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악세서리로서 헤어밴드가 유행을 탄 것은
불과 1년 남짓이 되었을 뿐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그룹 NRG의 잘 생긴 모군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조그맣고 잘 생긴 얼굴에
헤어밴드를 하고 머리를 뒤고 깐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그후로 '색다른 맛'을 내기 위해
여럿 중 한 명 정도는 헤어밴드를 하는 모습을 다른 그룹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 거리에서도
가끔은 볼 수 있다. 한동안은 아주 잘 생긴 남자 아니면 헤어밴드를 할 엄두도 못 내나 싶더니,
요새엔 대충 생긴 선수들도 그냥 하고 다니는 걸 보니 확실히 유행이 되긴 했나 보다.
헤어밴드를 하고 다니는 남자들은 보는 여자들의 심정은 대충 두 종류일 것이다. '밥맛없어'와
'잘 생긴 놈이 하면 용서해주지'. 남자가 머리만 좀 길어도 '지가 무슨 김경호야?' 하며
밥맛없어하는 여자들도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런 보수적인 취향의 여자들은 제 갈길을 가라고
하고 우리는 상관하지 말기로 하자. 글쎄, '아직까지'라고 한정을 해야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시 얼굴이 조그맣고 잘 생긴 남자가 헤어밴드를 한 모습은 어울리고 멋지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모습을 보기란 퍽 괴로운것 같다. '남자가 헤어밴드를 하다니, 정말 진취적이고
민주적이고 깨인 미감을 지녔구나', 하고 감탄하기엔 우리의 눈과 살갗은 너무나 정직하다.
너무 예쁜 모습엔 한숨을 내쉬며 너무나 안 어울리는 모습엔 닭살이 부르르 일어나는 것이다.
재미난 것은, 지금까지 그러니까 20세기의 패션을 보면 계속해서 남자가 입는 옷을 여자들이
뺏어오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양 패션을 보면 19세기부터는 그랬던 것 같은데,
테일러 칼라라든가 어깨뻥을 댄 정장이라든가 결정적으로는 바지. 여성은 자신을 해방하기
위해 부단히 남성의 전유물로 못박힌 옷들을 빼앗아왔다. 바지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일을
하기에 치마보다 편하다. 행동에 자유를 주는 것만큼 몸에 자유를 주는 것이 있을까.
지금 여자들은 행동의 편리를 위해 바지를 입을 수도 있지만 좀더 색다르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 치마를 입을 수도 있다. 자신의 편안함이나 자신감, 미감이나 충족감을 위해 편한 옷이든
불편한 옷이든 간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기표현의 방도로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직업이나
신분, 돈에 따라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성별로 따졌을 때, 여자는 남자는 원천봉쇄 불가능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치마를 입을 권리. 그것은 여성의 활동성에 대한 제약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불편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남자에게는 치마를 입을 권리가 박탈되어있다. 그래서 남자는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자신을
뽐내는 역할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를 에스코트하는 역할에 머무는 것이다. 그 반대로 남성의
역할이 제한되었기에 치마를 입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실존적으로 한
남자는 치마를 입을 수 없고 헤어밴드나 곱창밴드를 할 수도 핸드백을 들 수도 없기에 제한된
남성의 역할 안에 남아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남자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치마입을 권리를 주장한다면, 동시에
그 행동은 남녀차별을 깨뜨리는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는 남자가 치마를
입지 못하도록 엄하게 단속한다. 기껏 비슷하게 가는 것이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이라는 킬트를
입는 것 정도를 관습적으로 용인하며, 바지 위에 덧입은 보자기?치마 정도를 패션으로 봐준다.
한국에서도 몇년전 서태지의 킬트와 김원준(인지 누군지 헷갈린다)의 랩스커트가 있었다.
뭐 그리 생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치마 금지'가 무너지는 건 멀고먼 일 같다.
지금까지 '정형적인' 남성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젊은이들은 많은 반항의 방법을 개발해왔다.
귀걸이와 피어싱, 문신, 염색, 심지어는 매니큐어까지. 새끼 손가락 하나 정도는 좀 길러서
귀엽게 매니큐어를 칠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본 것은 벌써 몇년 전 일이다. 그러나 귀걸이만
해도 아직도 그 형태는 매우 조심스러워서 링이나 메탈스럽거나 힙합스러운것 외의 컬러풀하고
멋진 모양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헤어밴드의 반란이 무척이나 재밌고 즐겁다. 아직까지는 만화에서나 확인이
되고 있는 머리삔 반란 역시 그렇다. 지금까지 여성복이 남성의 전유물을 빼앗아왔던 역사를
뒤집어, 남자의 패션이 여성의 전유물을 채어다가 멋진 남자의 스타일을 창조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즐거운 일이다. (한동안은 어쨋거나) 잘 생긴 남자라야 그런 짓을 할 것이요,
잘 빠진 남자라야 그런 짓을 할 것이니 여자 입장에서도 환영하지 아니할 수 없다.
헤어밴드든지 치마든지 화장이든지 간에, 남자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여자를 자유롭게 한다.
2000.12.6
옛날 리더스다이제스트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한 여자가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안 가져와서
동동거리고 있는데, 왠 남자가 나타나 '같이 쓰고 가시죠?' 그러는 것이다. 너무나 반가와서
쳐다보니 남자가 커다랗고 화려한 꽃무늬 우산을 펴며 하는 말. '저 혼자서는 도무지..*-_-*'
그림:
남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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