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어려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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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지식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지식을 독점하여 그걸로 먹고사는
인간들은 모두 싫어한다. 지식인이란 자기 지식을 소통시켜 팔아먹고 사는게 도리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나라는 어쨋거나) 지식인들이란 대개 자기가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간에
그들의 '어려운 말'을 통해 뭔가 있는듯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의 어려운 말 때문에 지식이
여전히 소통되지 않고 독점된 채로 남아있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법이 없다.
나도 비평이란 걸 하는 사람이고 소위 '어려운' 책들을 읽어치워대는 편이지만, 최소한의
양식이란 것은 가지고 있다. 양심적으로 말해서, 어렵게 쓰는 것은 쓰는 사람의 능력부족이다.
좋은 내용, 의미있는 글이라도 어렵게 쓴 글도 있다. 그러나, 좀더 쉽게 쓰는 것은 좋은
내용을 쓰는 것 이상으로 비상한 노력과 재주가 필요한 일이며, 어디까지나 어렵고 좋은
글보다는 쉽고 좋은 글이 휠씬 가치가 높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가 단지 훈련된 사람들만이 읽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지식의 유통을 위해서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소한 이놈의 나라는) 되도록 어려워야 아무나 보고 함부로 비평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망상에 식자들이 빠져있는 듯하다. 쉽게 쓴다는 것은 단지 일반
독자를 상대로 술렁술렁 이빨이나 까서 에세이나 팔아먹는, 학문과는 관계없는 일로 생각한다.
난 지금 에세이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에세이만큼 글쓰는 사람의 역량과 밑천을 다 내어놓고
솜씨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없다. 쉬운 말로 자기의 사상을 풀어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도식화나 통속화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 책임도 감수한다는 것이다. 부드럽게 독자들의 뇌리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재밌고도 적절한 화제거리를 던지고 이야기를 끌어내는 솜씨, 리듬감
있는 문장, 모든 실력을 총동원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마광수 교수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형편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교수는
너무나 쉬운 말로써 자기 사상을 펼쳐나갔고, 따라서 아무나 반론할 수 있었다. 주제도 언제나
성이니 섹시함이니 하는 것들이어서 교수 신분에 그런 점잖치 못한 얘기나 하니 끌려가기나
하지, 하고 복지부동의 철학을 고수하는 한국 '일반인'들의 세평까지 들어야했다.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나온 1989년부터 2001년 지금까지, 마교수는 동네북처럼 얻어맞은
적은 많았지만 정작 그 선도적인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은 적은 없다. (근데 이것은 실은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지 않아서' 받은 핍박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고매하신 분들은 결국 사회주의권이 망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해체주의니
포스트구조주의 등등 새로운 사조가 유입되면서부터 변신하여 문화니 뭐니 성이니 개인이니
몸이니 하는 화두들을 말아잡수시기에 바빴다. 일반 독자분들은 단지 그런 소문만을 들으셨을
것이다. 정확한 실체를 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걸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조차
분명히 않은 번역문의 쪼가리에 의지하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도올 김용옥의 강의에 대한 반발이 서서히 나오고 있는 모양을 보면서 다시 그런
생각을 한다. 역시나, 김용옥이 엔터테이너로서 자신을 내놓았다는 이유로 개나소나 비판을
하려드는 건 아닐까 한다. 어느 고매하신 교수분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건간에 신문기자나 문화비평가 따위가 함부로 '지나친 도식화니 일반화'를 지적한 것을
볼 수 있겠는가.
김용옥의 책들은 대개가 재미있고 열의가 있으며 독창적이다. 좋은 책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쉽게 잘 쓰여진 문장은 아니지만 톡 까는 재미가 있고 흡입력이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인이
쓴 책 중에는 이만한 좋은 책의 요건을 갖춘 학문적 저서들이 찾아보기 힘들다. 독창성
하나만이라도 좀 갖춘 책도 정말 없다. 서양철학자, 사상가가 한 얘기 횡설수설 풀어쓰면서
팔아먹는 식자들을 난 싫어하는데, 스스로에게 독창성이 부족하다면 성심껏 연구해서 번역이나
충실히 해주었으면 고맙겠다. 유행하는 몇몇 빼고는 참으로 번역이 안 되어있다. 철학이나
문학이나 뭐나.
훌륭한 책들은 모두 재미있다. 조금 어려울 때도 있지만 재미가 있기에, 계속해서 사람의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흥미를 당기는 재미있는 책을 보기
힘든 것은 어쩌만 이 나라만 별난 병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학자가 쓴 책은
쉽고도 훌륭한 것이 많다. 물론, 워낙에 쟁쟁해야 여기까지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원래 쉬운 말로도 얼마든지 책을 쓸 수 있고 인정받기에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쉬운 말로 책을 쓰는 사람을 두들기지 않고, 어려운 말로 책을 쓰는 사람을
우러러보지 않는다면 사태는 조금 개선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은 나라의 학계가 그렇게나 어려운 말을 선호하며 그로써 체신을 유지하려 하는 것은
어쩌면 자기네 밥그릇을 유지하기 위한 자동정화작용일지도 모른다. 사실, 어려운 말을 통해
배우기 위해서는 어려운 말을 익혀야하고, 그렇게 힘들여 배운 것을 다시 쉬운 말로 풀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나 재주가 필요한 것이다. 나쁜 의도라기보다는 능력부족이 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보는 움직여야하고 지식은 확대재생산, 돌연변이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썩을
뿐이다. 자기네만 지식을 독점하고서 야금야금 흘리면서 장사해먹을 수 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전자기 네트워크는 정보의 독점을 물리적으로 깨부수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요새 대학이 장사가 안 되는 이유가 뭔데. 독자들도 자기 권리를 찾았을 좋겠다. 어려운 말에
대해서, 야단을 좀 치자.
- 나 역시 어려운 말 비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쉽게 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계속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나의 감각과 직관, 시스템을 갈고닦는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난 노력하며, 노력한다는 이유로 모자란 점이나 어려운
글의 폐해를 어물쩍 용서받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 얘기를 시작한 것은
어디까지나 재미난 책을 읽고 싶으며, 재미없는 글은 읽기 싫기 때문이다. -
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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