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로모그라피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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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로모라고 하는 조그맣고 귀여운 카메라의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 레닌그라드 광학연구소가 만든 이 작은 카메라는, 재밌게도 첩보용으로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0-; 요즘이야 당연 디지탈 카메라일테고, 사실 상상속의 70년대 첩보원 007도 이런건 안 썼을 것 같은 둔탁하게 생긴, 꽤 큰 카메라인데 말이다. -.-; 그런데 지금은 각종 디지탈 카메라가 각축전을 벌이는 와중에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전세계 호사가?^^;들의 사랑을 받는 카메라가 되었다.
딱 자동카메라 크기만한데다가 수동초점도 조잡하기 짝이 없고 노출은 자동이라는 이 웃기는 카메라가 들어서는 자리는, 비싸고 잘난 수동카메라를 가지고 작품 사진을 찍는 半프로들이 충분히 형성된, 아마도 국민소득이 1만불은 넘어선 나라의 '취미인'들 사이일 것이다. 취미인이란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기 취미를 즐기며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일반인의 자동카메라는 우습게 보인다. 갖가지 첨단기능을 갖춰도 어차피 자동카메라는 자동카메라인 것. 여행지에서 혹은 졸업식에서 나란히 줄지어 서서 하나 둘 셋!을 부르는 사진 외의 것은 허용을 하지 않는 물건이다. 이들에게는 다른 카메라가 필요하다. 좀 어두운데서 찍어도 그냥 어두운 채로 나와버리는 카메라, 말간 하늘을 찍어도 그냥 폼이 나와버리는 카메라, 비싸고 부담스러운 수동카메라가 찍어내는 작품들 수준까지는 아니더래도 확실히 자기것이라고 이름을 달 수 있을 정도의 자유와 기능을 허용하는 카메라. 그래서 로모가 좋은 것같다.
사실 한국이 로모국에 편입되는 시점이 하필이면 디지탈 카메라가 넘치게 발달하는 시기라서, 그 비싼 돈을 주고 디지탈 카메라를 사서 아마추어 사진이라고 과연 불러줄 수는 있는 걸까 의심되는 수준이 상당히 많은, 사진 취미를 영위하는 대학생 및 젊은층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싼값으로 보인다는게 로모의 이점이기도 했다. 사실 인터넷 환경이 이렇게나 좋지 않았더라면 디지탈 카메라가 이렇게 퍼지지 못했을 거라는 점에서, 한국의 디지탈 카메라 유행은 참 우연찮은 사치다. 그런데 지금 로모의 유행을 보면 아무래도, 디지탈 카메라가 퍼뜨린 인터넷-사진 문화 덕에, 또 가격 비교 덕에 대단위가 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실 양적으로는 디지탈 카메라 인구에 비교가 안 되겠지만.)
난 디지탈 카메라를 사기엔 아직 망설여져서 로모를 샀다. 로모가 FM2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디지탈 카메라를 대신하기엔 충분한 듯해서다. ^^; 아직까지 디지탈 카메라는 단점이 많은데, 그 단점을 가려버리는 장점들- 필름값이 안 든다, 찍은 것을 즉각 볼 수 있다, 근접촬영과 야간촬영 기능이 가격대에 비해 훌륭하다 등으로 만족하기엔 난 욕심이 많은 것이다. 나에게는 다른 장점을 다 가려버리는 최대 단점은 色이다.
디지탈이 흉내낼 수 없는 필름의 절대강점은 실제보다 더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영화를 필름으로 찍는 것이다. 프레임 속에는, 삶보다 더 아름다운 영상을 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는 위안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위안이든지 간에.
* 빨간 딱지 에로비디오는 예외다. 짜증 치수 올리기 경쟁하는 한국 드라마도 예외다. 이것들은 유치한 (남들한테 말하기 어려운, 그래서 유치한 욕망이라고 스스로에게 발뺌하는)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므로, 실제보다 더 유치한 외관을 취한다.*
로모는 필름의 장점을 뻥튀기하여 거의 로모의 장점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거의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은 사진 수준으로 예쁜 색상이 로모에서는 다반사로 얻어진다. 그리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약간 어두워지는 특성 때문에 그 색변화가 더 아름답다. 사진을 이제 찍기 시작한 아마추어에게 있어 이것처럼 간단하게 예술을 얻어내는 방법이 없다.
여기에 막강한 기동성과 간편성이 추가되므로, 우리는 즐겁게 로모 호사가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을 삶 속에 가깝게 위치시키는 것, 그러나 언제나 그 모양이 후즐근하지 않고 반반하고 매끈한 것, 그런 것을 우리는 로모에게 바란다.
로모는 좀더 많은 우연성을 사진에 개입시킨다. 셔터스피드를 기계에게 맡기고 자기의 감과 노하우를 믿은 채 그냥 셔터를 눌러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흘러가버린 사물도 어두운 화면도 모두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것들이다.이제 막 로모그래퍼가 된 나의 생각으로는, 로모를 들어서 제일 좋은 것이 가볍다, 간편하다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 조그만 카메라를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는-무시한다는 점이다. 주위에서 무시해주는 만큼, 야단스럽지 않게 순간순간 나와 접한 세상의 단면을 살며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로모가 정말로 좋은 점이다.
2001.5.31
로모코리아
로모클럽
어질어질해질 정도의 로모사진들이 잔뜩 있는 싸이트
내가 처음 찍은 로모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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