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양대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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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양대 트렌드: 기계론과 카오스론

과학에도 트렌드가 있다

그러나 특정 분야가 시대를 잘 만나 융성하는 것 말고도 관찰할 수 있는 트렌드가 또 있다. 이런 트렌드는 상당히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 약간은 멀리서부터 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은 17세기 이후 근대화를 추동한 핵심적인 과학이념인 기계론, 그리고 21세기 인류문명의 전환을 태동하고 있는 카오스론, 또는 '자기조직하는우주' 내지는 '생명의 그물 이론'이다.

이 두 트렌드는 경쟁관계인데, 그 역사를 거슬러올라가자면 서양과학의 시작점인 그리스철학의 질료와 형상 간의 대립까지 간다. 간단하게 도식화해보자면 만물의 본질이 그 구성원자냐, 아니면 그 관계냐 하는 싸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통합원리에 오랫동안 만족하고 있던 유럽이 '실험이 안 되는건 믿지 않는다'라는 야무진 생각을 하게되면서부터 경쟁에 다시 불이 붙게 된다. 최근 400년 가량 이 두 트렌드가 뜨고 지는 모양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큰 그림을 그려보자는게 나의 제안이다.

17세기 뉴턴 트렌드, 지구를 정복하다

20세기, 컴퓨터에 울고 웃고

카오스(혼돈)에서 질서를 읽어내는 수학을 복잡성의 수학, 혹은 비선형 동역학, 또는 동역학적 시스템 이론이라고 한다. 사실 그 기초가 세워진 것은 이미 20세기초이나 위대한 선구자 푸앙카레가 업적을 남기던 그 시대에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 계산을 통해 비선형적 동역학을 발전시킬 길이 없었고, 당시에 눈부시게 발전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그늘에 가려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반세기가 지나고 나자 1950년대에는 DNA 나선구조가 발견되어 1970년대 분자생물학이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환원주의' 트렌드는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 '새로운 과학'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프리고진, 마굴리스, 얀치, 러브록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창조적인 활동에 의해 모양이 갖춰져나갔고 점차 복잡성의 수학이 과학이론들을 따라잡았다. 1960년대에 외롭게 프랙탈 이론을 전개하던 만델브로도 1980년대 이후로는 보상을 받았다고 할 만하다. 최근의 사정으로 말하자면, 가장 자본주의적인 감각의 네트워크이론가도 복잡성의 수학을 신봉한다.

자기조직하는 우주, 생명의그물

프리고진의 업적은 '무산구조'를 제시함으로써 엔트로피 법칙에도 불구하고 생명현상이 가능한 것을 아주 합리적으로 설명한 데에 있다. 즉,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 에너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방출되고, 우주는 점점 쓰레기로 뒤덮히는데 생명이란 무엇인가? 최소한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열린 시스템으로서, 자기 밖에서 에너지를 얻으며 쓰레기를 방출하고, 스스로를 높은 질서도를 갖는 구조로 만드는 자기조직하는우주인 것이다.

마굴리스 또한 어떻게 박테리아와 같은 간단한 생명체가 연합을 통해 세포를 형성하고 복잡한 조직을 갖는 고등동물로 진화할 뿐 아니라 어떻게 환경을 자기에 맞게 적응시키고 지구생태계 자체를 만들어내었는지에 대해서 매우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이른바 '환원주의' 과학의 문제점은 자기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던 뉴턴시절에 세운 개념 안에 머무르기 때문에 온통 비선형적인 실제 자연을 그 연구대상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모난 자를 가지고는 프랙탈한 해안선을 잴 수가 없다. 모든 과학의 근간이었던 물리학은 실제로는 아주 제한된 분야에나 적용될 수 있는 관념적인 과학이었다. 따라서 실제 생명이 어떻게 생겨나며 살아가는가를 알아내는 데에는 새로운 도구,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각 분야의 연구들은 자기조직과 연결, 전체에 도달했다. 얀치는 1970년대에 이를 '자기조직' 패러다임이라고 불렀고, 카프라는 1995년 이를 '생명의그물'이라는 개념으로 총정리했다.

패러다임 전환 :물리학에서 생명과학으로

1960년대 쿤이 과학혁명의구조에서 제시한 '패러다임'이란 개념이 획기적이면서 엄청난 논쟁을 일으켰던 것은, 그동안 절대적인 진리인양 군림해오던 자연과학의 규칙이란 단지 '과학자 사회에서 약속된 것', 그리고 '개중 가장 성공한 것'에 불과하다는 불경스러운 결론 때문이었다. 세기초 물리학에서 일어난 지각변동을 보고도 끄떡도 안 한 수많은 경건주의자들 덕분에, 아직도 우리는 '환원주의의 세기' 안에 남아있다. 패러다임 안에 있으면 그것이 패러다임인지를 모르고 절대적인 진리인 듯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서 다른 패러다임에 대해 이단을 논한다. 이런 사정은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으니 우리 문명은 참 고단하고도 슬프다.

그러나 과학의 패러다임이 패션의 유행과 다른 점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공격하는 수많은 반증들이 모이게 되고, 더 유용한 해결을 제시하는 다른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완고한 패러다임도 결국은 깨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패션은 반증 없이 대안만 있으면 된다.) 현재 21세기의 시작을 지켜볼 때, 물리학에서 생명과학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환원주의와 신과학의 피터지는 싸움도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인간 유전자지도를 그리고 나니 생각보다 유전자수가 적어서 별수없이 네트워크이론으로 가야하는 생명정보공학쪽에서는 화해를 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될테고 등등. 카프라의 말대로 좋은 것 또는 건강한 것은 역동적 균형일 것이다.

추천도서

과학혁명의구조 토마스 쿤 1962 까치 -과학을 엄숙주의에서 구원한 책
생명의그물 프리초프 카프라 1995 범양사 -이 책이 너무 두껍다면 아래의 책들을 읽은 후 최종정리를 해도 좋음
혼돈의과학 존 브리그스/데이비드 피트 1989 범양사 -쉽고 재미있는 개괄서
혼돈으로부터의질서 일리야 프리고진/이사벨 스텐저스
자기조직하는우주 에리히 얀치 1980 범양사
생명이란무엇인가 린 마굴리스/도리언 세이건 1995
가이아 제임스 러브록 1979 범양사

--남승희

캠퍼스스타일 트렌드스토리 첫번째 200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