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대한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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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열매를 맺는다는 본 목적에서 유리되어 인간의 소소한 만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꽃들에게, 인간이 지켜줘야할 기본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꽃들을 아름답게 오래 보존한다. 꽃다발의 묶음을 푼 다음에도 예쁘게 잘 꽂아놓고, 하루에 한 번씩 (여유가 된다면 두 번이라도) 물도 갈아주고, 점점 마르고 미워지는 것들을 제거하며, 그 작업이 어느 한계선을 넘게 되면 와장창 솎아내어 더 작은 병에 (주로 컵에) 더 작은 다발을 만들어 꽂는다. 역시 아름답게. 큰 다발이었을 때랑은 모양이나 분위기가 좀 달라지는 것이 보통이다. 여러 개의 컵에 갖가지 사이즈의 꽃꽂이가 될 때도 있다. 여러 방에, 여러 사람의 책상에 꽃들이 배분된다. 나는 성실하게 그 과정을 즐긴다. 작은 다발이 되어도, 여전히 꽃은 예쁘다.

물론 이렇게 성실히 관리하고 끝까지 즐길 만큼 예쁘지 않고 성의 없는 꽃다발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꽃은 원래 아름답지만, 상상력 제로인 무미건조하고 본때없는 꽃다발이란 것은 늘 존재한다. 나의 취향을 말하자면, 아름답게 색상과 그 외 여러 변주가 하모니를 이루는 꽃다발을 좋아하며, 재미없게도 빨간 장미를 그것도 싱싱하지도 않은 것들을 두리두리 종이니 천이니 하는 것들로 왕창왕창 말아둔 것들을 제일 싫어한다. 거기에 꽃다발을 받은 후 병에 꽂기 어렵게시리 키의 차이가 너무 나게 잘라놓은 다발이라면, 정말이지 황당하다. 준 사람의 성의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다. 대개 그런 장미 꽃다발치고 철사로 쓸데없이 몇번씩 감아놓지 않은게 없다. 꽃송이 하나하나마다 종이를 씌워놓은 것도 있다. 그런 걸 일일이 풀러서 키맞춰 잘라서 다시 꽃병에 꽂아야 하고 남은 엄청난 쓰레기들을 깨끗하게 치워야 하는 노동이 어떤 것인지를 (로맨스 철저 실종이다 -.-;) 선물한 사람은 둘째치고 꽃집 주인들은 전혀 모르는 것인지... 꽃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밥벌이를 빙자로, 팔릴 물건을 만든다는 핑계로 꽃들에 대한 예의를 조금도 지키지 않는 그들은 꽃에 손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함부로 한 것은 꽃만이 아니다. 꽃다발로 전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과, 꽃다발을 꽂아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생겨날 수 있는 인간의 마음 또한 그들은 지치고 무디게 하고 더럽힌 것이다. 꽃이란 것을 인간이 즐기는 행위 자체를 무의미하게 희석하고, 휘저어놓는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즐기려고 한다면 예의를 지켜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모양으로 다듬고 꾸미며, 그 아름다움을 모쪼록 오래 즐길 수 있도록 잘 관리해주는 것. 꽃도 그렇고 다른 것들도 그렇다.

문화코멘트 2005.10.20

남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