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지는말새로워지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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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자꾸 낡아지고 있다. 생활은 자꾸 새로워지고 있다. 말은 영구히 '헌 것, 부족한 것'으로 존재한다.

이태준의 문장강화의 한 구절이다. 벌써 반세기 전에 나온 책이지만 한국어 작문의 기초를 가르치는 책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실히 감동과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개화기때 언문일치 운동으로 시작된 현대 한국어가 발전을 거듭하야 드디어 1930년대에는 성숙한 문학으로 꽃피었기에 1940년에 이렇게 훌륭하고 또 지금의 우리와 소통하는 데 무리가 없는 작법책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말은 이때 형성한 모습을 지금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화기 시절의 글은 무척 읽기 힘든데 반해 1930년대의 문학작품들은 별문제 없이 이해되며, 한국어교육을 제대로 받은 우리는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재미있게도 언어란 생활용품이며, 따라서 끊임없이 실생활의 변화를 받아들여야하고, 죽은 언어의 찌꺼기를 주절대는 의고체 따위는 싹 쓸어버려야한다고 주장했던 이 책이 그때와 다름없이 잘 이해되고 있다. 내 생각엔 이 책만한 무게의 새로운 작법책이 나타나려면, 1930년대의 문학의 수준을 뛰어넘는, 질적으로 다른 문학의 성숙이 먼저 이루어져야하지 않을까 한다. 혹시 지금 그런 질적 도약이 있는가?

한국어 파괴?

문학의 몰락에 이어, 한국어의 파괴가 도처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중이긴 하다. pc통신에서 시작된 '통신어'의 융성은 인터넷에서 확산, 괴물화 과정을 거쳐 지금은 통신어 안 쓰기 운동마저 일으키고 있다. 통신어의 주요 향유층인 청소년들의 한국어 발음이 유아어화하고 있는 것도 못지 않은 문제다. 기본적으로 현시점에서 한국어의 최대 문제는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언어교육을 못 받고 '잡초처럼'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안 좋은 버릇들만 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어공부하느라 바빠 국어공부를 못 해서인지, 말만 통하면 됐지, 하고 친구랑 수다떨고 인터넷에서 채팅하는 수준에서 자기가 한국어를 다 안다, 고 생각하고 노력을 안 해서인지 발음도 맞춤법도 문장구사력도 갈수록 떨어져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수준낮음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네트워크 사회가 갖는 막강한 힘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학교와 티비뉴스에는 공적인 삶이 있었고 집과 친구들 사이에는 사적인 삶이 있어 그 두 가지는 서로 침범하지 않고 그럭저럭 병행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더 배우고 자라날수록 더 공적 사회에 연결되었으며, 권리와 책임을 함께 늘려나갔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다르다. 이 동네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찧고 까불고 하는 언어가 곧장 공적인 공간을 차지하고, 사회성을 지닌다. 따라서 친구사이에 하는 말과 예절을 또래문화로서 자랑스러워하고, 이걸 공적 영역에서도 적용, 과시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제대로 된 한국어구사는 물론이요, 공적 영역에 대한 존중도 어려워져간다. 실제로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을 타보면 요즘 청소년들의 공공질서 수준은 갈수록 개판이다. 여기에 파괴니 몰락이니 하는 극단적인 어휘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 요즘 언어생활의 문제점인 선정주의 탓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어는 끔찍스레 늘어나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새로워지는 삶의 쓰레기 문제

말이 자꾸 낡아지는 것은 생활이 자꾸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람의 삶을 반영한다. 언어가 그 삶을 조작하는 방식인 생각과 기억과 소통을 담는 그릇으로서 특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바로 문명이라고 하는 것의 특성이다. 그래서 이 언어를 어떤 것으로 쓰는가 하는 문제는 이 문명을 어떻게 이끄는가 하는 대업과 이어진다.

삶 속에서 말은 흐르고, 흐르는 물은 자정작용을 하지만, 새로이 배출되는 쓰레기더미가 워낙에 많다보면 인위적으로 치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유용한 물건과 쓰레기를 구분하는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것으로 기준을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통신어 안 쓰기 운동쪽에서는 손쉬운 기준으로 표준어를 내세운다. 공적인 영역에서 표준어를 기본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표준어는 여기에서 단지 효과적인 도구로써 기능하는 것이고, 진정 진행되는 것 혹은 진행되어야 할 것은 공공 예절의 확립이다. 그리고 이는 그곳이(인터넷이) 공적인 영역임을 공인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흐름 속에서, 낡은 말은 계속해서 새것으로 바뀐다. 그렇기에 1990년대 들어 생긴 통신어들은 표준어에 반격을 가했지만, 또한 골치아픈 통신어 쓰레기들 역시 새것으로 갈아치워서 언어생활을 정비하고 새로운 생활을 편리하게 할 이유도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인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과정이며, 그 만남의 규칙들의 확립과정이 된다. 홈페이지 주인들의 자발적인 인터넷 언어정화운동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큰 부분으로 이미 자리한 이 새로운 방언을 규범어가 어떻게 대응 혹은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언어의 생태학, 인터넷의 시민사회 형성과정으로서 우리는 통신어와 표준어, 우리의 언어생활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통신어는 표준어가 될 수 있나? 2편 표준어라는도구, 3편 통신어의문제로 이어집니다.

남승희

캠퍼스스타일 트렌드스토리 2003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