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수퍼모델

UserPreferences

그런데, 도전수퍼모델 1기에서도 제일 괜찮은 여자-일리스를 3명 남았을 때 잘라버리더니, 2기에서도 역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4명까지 남았던 에이프릴을 3명째에서 자른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것은 심사위원들및 프로듀서이자 수퍼모델인 타이라의 편협한 심성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겉으로는 '에이프릴, 당신은 포즈는 잘 취하지만 카메라와 정서적인 교감이 부족하다' 고 했지만 사실은 모델 주제에 나서서 연출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 괘씸죄로 찍힌 것이 아닌가 한다. 게다가 이 점에 대해서 사진작가 및 남자 심사위원이 한 마디 충고를 하려고 할 때마다 타이라 및 여자 심사위원이 말을 가로채서 딱 부러지게 비판만 하고 끝내는 폼이, '네 죄를 알렸다' 쪽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심히 의심스럽다.

에이프릴을 자른 이유가 '사진작가의 일을 빼앗았다'는 것이라면 그건 그 사진작가 얼마나 속좁은 인간이며 예술가로서도 별볼 일 없는 인간인가를 증명할 뿐이다. 패션 사진작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은 모델로부터 최대한의 매력을 끌어내어 화면에 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포즈를 주문할 수도 있고 초보모델이라면 여러가지 지도를 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 모델 2명과 함께 고품격 섹시 누드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서 모델들끼리 의논하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을 기분 나빠한다면, 그런 속좁은 인간의 사진이란 것은 잘 해봐야 평범한 것일 뿐이라고 나는 속단하고 싶다. 원래 사진이라는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스타일과 사진을 찍혀주는 사람의 스타일이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다. 양쪽의 에너지가 교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이고, 작업이 잘 되면 에너지의 폭발과도 같은 사건이 일어나 아주 끝내주는 사진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모델이 (감히) 연출을 시도했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고, 그냥 잘라버리다니, 그동안 실수를 저지르는 수많은 모델들을 처음엔 용서해준 관행을 생각해봐도 역시 '부당하다'. 게다가 사진작가가 애도 아니고 초보 모델도 아닌데, 기분 나쁘면, 사진찍는 작업에 문제가 될 만하다면 그 자리에서 지적하고 '제대로' 연출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번 도전수퍼모델 2기에서는 자기 스타일을 연출하는 테스트를 많이 했는데, 처음엔 악세서리를 주고 꾸미라고 하더니 다음엔 남의 옷장을 뒤져서 입고, 이번 에이프릴을 떨구는 마당엔 티셔츠를 잘라 파티패션을 만들어보라고까지 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들이 디자이너의 영역을 (감히) 침범한다고는 전혀 생각도 안 했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도전수퍼모델의 문제점은 심사위원들이 자기네 잘난 존심을 건드리거나 자기보다 잘난 모델은 뽑지 않고 떨궈버리는 데에 있다. 1기의 일리스가 떨어진 것도 그렇게밖에는 상상이 안 된다. '아름다움이란 에스트로겐 과다일 뿐이다'라고 '경솔하게'도 심사위원들의 지적 수준에는 너무 어려운 얘기를 꺼내버린 일리스는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잘렸다. 타이라는 '상업적 미'와 '아방한 미' 혹은 '미국적인 미'와 '유럽적인 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서 수퍼모델감을 골라야 한다는 듯 설을 풀어댔지만, 이번 2기에서는 그런 말은 전혀 비추지도 않았다. 즉 여러가지 상품광고에서 주문이 들어올 모델감을 찾는다는 이유가 아니라 단지 자기보다 잘났고, 앞으로도 엄청 잘나버릴 여자라서 자른 것이다. 일리스는 파리에 데려다 놓으면 즉각 프레타포르테 톱10엔 들어갈 재목이었다. 그에 비하면 섀넌은 평범한 모델에 불과하고 에이드리안은 다소 우둔한 미인에 불과하다.

에이프릴은 일리스보다는 좀더 평범한 모델감이지만, 그래도 요아나나 샌디보다는 훨씬 제대로 된 모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성 넘치게 생긴 게 꼭 노선미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영어권 태생인 듯 하니 훨씬 유리하고, 몸매도 완벽하다. 출생도 다국적이라 미모도 다국적다와서 요즘 같은 시대에 적합한 미인이라고 할 수 있다. 패션모델 쪽에서라면 문제없이 큰 재목이 될 수 있다고 사료된다.

나는 3명을 고르면서 왜 요아나를 탈락시키지 않았는가에 대해 화가 났다. 샌디는 싱겁고 맹하지만, 아예 맹한 맛이라도 있지 요아나는 전혀 개성이 없고 단지 남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거의 안 저질러서 지금까지 안 잘렸을 뿐이다. 심사위원들도 요아나를 1등으로 뽑을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장점이 없다. 단지 에이프릴을 자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메쎄르디스를 다리가 짧다고 짜르고 요아나는 개성이 부족하다는 둥 엉덩이가 크다는 둥 하면서 자르고 남는 샌디를 1등으로 뽑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정신을 못차리고 또 사진 찍는 자세도 영 아니었던 샌디를 단지 티셔츠 잘 잘랐다고 남겨둔다는 것은 의혹의 소지가 많다. 샌디야말로 그들이 찾던 수퍼모델의 체형을 갖춘, 그러나 타이라를 능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잔챙이로 낙점된 모델인 듯 하다. 만약 에이프릴이 런웨이까지 하도록 했다면 그때 가서 자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워킹을 제일 잘 했을 것이다. 그래서 3명째에 잘라버린 것이다.

2004.8.12 문화코멘트

2004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