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매주의는무엇이될것인가

UserPreferences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싶은건 모든 여성들의 소망이다'라고 요즘의 여성잡지나 체형관리센터의 선전문구들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기억을 되살려보면 '모든 여성들의 소망'은 아름다운 몸매가 아니라 '얼굴'이었던 것이 아직 10년도 안 지난 가까운 과거의 진실이다. 외모지상주의의 본산 한국에서 미인의 기준이 얼굴에서 몸매로 이동한 것은 그동안 젊은이들의 체형이 많이 서구화되었고, 따라서 다소 강력한 기준을 적용해도 좋을 만큼 몸매들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에 걸맞는 패션들도 유행하며 몸매주의를 부추긴다.

몸매주의란 먹고 살만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몸매를 중시하여 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써 중용하기까지 하는 사상을 말한다. 멋진 몸매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게으르거나 가난하거나 늙었거나 무능력하다. 다른 동물과 다른 인간의 별난 문화의 전통 때문에 여성에 대해 더 강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나, 미국처럼 남성에 대해서도 두드러지는 나라도 있다.

몸매주의의 긍정적 효과

단 하루를 살아도 예쁘게 살다 죽고 싶다면서 위험도 높은 성형수술을 각오하는 여자들이 들끓는 외모지상주의의 나라 한국에서 몸매주의의 광풍이 부는 것에 대해 나는 그렇게 큰 우려와 걱정은 하지 않는다. 뜯어고치면 만사오케이라는 얼굴성형에 비해 그 파급력이 제한되어있는 몸성형은 그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몸관리의 자리를 감히 넘볼 수 없다. 나이를 먹는다고 은퇴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 이곳도 곧이어 고운 피부와 날씬한 몸을 추구하다보면 다다를 수밖에 없는 결론인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 만들기'의 각종 방법들이 유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영이나 근육트레이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이미 간편하게 서양을 따라 요가가 유행할 기미를 보이고 있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유구한 전통의 동양인답게 내외공을 함께 다스리는 무술을 배울 수도 있다. 아름다운 몸매를 추구하고, 그렇다고 무식한 다이어트나 무리한 성형수술을 동원하지 않고 제대로 끈기 있게, 또한 자기단련의 일환으로서 몸관리를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자기 몸에 투자를 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몸관리는 단지 몸매의 일로서 끝나지 않는다. 인생 자체가 일을 위해서 혹은 가정을 위해서 최적화되어야만 했던 '지난날의 바람직한 캐릭터들'은 퇴출되고, 몸과 마음, 일과 기쁨, 자기와 남들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자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몸의 계급

몸매주의의 시작은 짝짓기에서 성공하기 위한 인간 본연의 욕망이겠지만, 그 치열함의 본령은 언제나 계급의 표지로서 기능할 때 나타난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대엔 잘 먹어 오동통한 살집이 잘 나가는 계급의 표시가 될 수 있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운동을 하고 몸매를 가꿀 여유가 된다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계급적 표시가 된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남녀를 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자들이 더 스트레스를 받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곳은 몸을 중상위 관리자가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자기관리의 일환으로 본다. 그래서 여자는 그냥 적당히 날씬한 정도면 되지만, 남자의 경우는 다부진 근육질 몸매가 아니면 승진에 지장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참으로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렇다.

더 잘 살기

인간들이 왜 그렇게 남의 선망을 받는 계급이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보이고라도 싶어하는지 말하자면 입아프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경쟁과 선망의 원리에 의해서 인류가 만들어낸 '좋은 것들'은 흔히 전파된다는 것이다. 허영심에 잡아먹혀 자신의 몸을 함부로 망가뜨린다든가, 자기 인생을 쉽게 저당잡힌다든가 하는 불행한 사태에 대한 경계만큼이나, 인간이 어떤 식으로 자기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자기 삶을, 사회를 그리고 지구를 변화시켜왔는가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대중은 잘 나가는 계급을 좇고, 잘 나가는 계급은 그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부와 유전자, 여유의 미덕을 최대한 발휘한다. 대중은 계속 따라잡지만 또한 뒤쳐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연속운동은 결국 '더 잘 살자'라는 인간의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다. 분배의 공정성 문제를 잠시 접어두고 말하자면 말이다. 말하자면 '모두가 부르주아가 되는 것'이 현대사회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잘 살아보세! 라는 구호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지금의 한국 역시 그렇다. see also 더잘살아보세

대중이 부르주아급의 여유를 갖는 것은 지구의 역사에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몸에 대한 대중의 집착이 자기 한몸의 성공과 쾌락을 위한 몸매주의에 머물지 않고 자기의 몸과 인류의 운명, 지구생태계를 아우르는 통일된 인식으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는 첫째 조건은 아마도 대중적인 '삶의 여유'가 될 것이다.

--남승희

캠퍼스스타일 우먼칼럼 2002년 9월호

후기: 이 글을 쓴 뒤 1, 2년 후 한국은 웰빙열풍과 함께 요가열풍이 불었다. 대략 2004년, 2005년 대중적인 차원에서도 '웰빙'이라는 말이 지겹게 느껴지는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