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지진실보다더유효한허구의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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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llage, M. Night Shyamalan(나이트샤말란) 감독 및 각본

1. 신이 지배하지 않는 청교도 마을

빌리지를 극장에서 처음 보면서 이상했던 것은, 더없이 청교도적으로 살고 있는 그 마을 사람들이 기독교의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일만 나면, 혹은 성적으로 좀 흥분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오, 나의 신이시여!'를 남발하는 서구인들의 언어관습과 문화를 생각해볼 때, 참 이상한 분위기였다. 꼭 교구 목사 같은 지위에 있는 듯한 월리엄 허트의 입에서도 결코 '하느님'이 나오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한데 모이고, 음식을 거하게 차려놓고 먹고 마시며 자기네 삶에 감사하고, 결혼식을 하고, 장례식도 한다. 그래도 '주님'의 이름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리고 보면 마을 장로들은 여자와 남자가 딱히 불평등해 보이지 않는다. 여자들은 주로 집안에서 뜨개질을 하고 요리를 하고, 남자들은 농사일을 하고 바깥일을 하고 뭐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분업은 있되 불평등은 없어 보인다. 기묘하게 이상적인 청교도 마을이다. 그래서 이것이 판타지인걸까.

기독교가 없다는 것이 결국 복선이 되고 마는 것이 마지막의 반전이다. 기독교가 없는 청교도 마을. 그것은 그들이 신을 버린 시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신을 버린 물질문명의 극한, 도덕도 윤리도 내팽겨치고 모두들 자기의 이기심만 추구하는 패덕의 시대, 그 시대를 부정하고 자기네만의 공동체를 만든 그들은, 새로 만든 윤리적이고 반물질주의적인 청교도적인 삶에 기독교의 신을 부활시키지 않았다.

왜? 기독교의 신은 자기만의 아집이 세며, 결국 사람들에게 싸움을 시키기 때문일까? 각자 모시고 있는 신이 다르다고, 생각과 관습이 다르다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는 일을 지금껏 몇 세기에 걸쳐 대량으로 되풀이해댄 주역이 기독교니까? 혹, 미국이 기독교의 나라이면서도 자본주의의 최대의 악덕을 구현하는 모순 때문에 그런 엄청난 잠재성을 지닌 기독교를 배제한 것일까? 아니면 어쩌면, 그들은 단지 기독교의 신보다 더 효율성이 큰 신을 원했던 것일까?

아무튼 그들은 기독교의 신은 버렸지만 두려움의 대상은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원초적이고 정직한 형태의 신앙의 대상을 만들었다. '단지 두려움의 대상'인 존재를. 숲 속의 괴물을 (신의) 창조물(creature)이라는 기독교적인 단어로 부르는 그들은 자기네 삶에서 신을 배제하고 터부만을 자기네 윤리를 유지하는 보조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괴물은 매우 창의적인 발상이다. 그들은 그저 자기네만의 마을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들을 세상과 단절시켜줄 더 확실한 것이 필요했다. 괴물은 마을 사람들이 그들이 버리고 떠나온 악덕의 도시로 행여나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삶의 유지를 위한 기본이 된다.

그런데 그 괴물들은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존재다. 이쪽에서 이쪽의 규칙을 지키면, 저쪽에서도 저쪽의 규칙을 지킨다. 하지만 어떻게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알 수 있을까? 그 부분이 미스테리이기 때문에 숲 속의 괴물은 단지 겁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일상적인 윤리에까지 침투하는 ‘두려운 신’이 된다.

이 두려움의 기전은 빨강색의 터부로서 완성된다.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그들’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빨간 옷도 빨간 루즈도 안 된다. 빨간 열매조차 땅에 파묻어버려야 한다. 그들의 마을은 이렇게 녹색의 전원풍에 그림같은 집들, 절대 튀지 않는 우중충한 옷을 입은 청교도들의 마을로서, 기독교의 신 없이도 완벽히 조율된다. 사치하지 말아라 같은 가르침이 필요없다. 빨강색의 터부는 완벽하게 상징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규율이 된다.

빨강색은 피의 색이다. 빨강색의 터부는 그들이 세상을 버리고 오게 된 이유와 직결되는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자 그 마을의 지향점이 되는 것이다. 마치 지금은 잊혀진 이유로 인해서 먼 선조들의 삶과 죽음을, 공동체의 역사를 좌우했던 에피소드를 신화라는 형태로 이어받고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처럼, 원주민을 몰아낸 땅에 정착한 이 백인 청교도들은 매우 성공적으로 빨강색의 터부를 안착한 듯이 보인다.

빨강색을 피하기 위해서는 피를 보는 것을 피해야 한다. 피를 보면 안 된다. 그들에겐 항생제가 없다. 마을을 만든 장로들에게 있어선 피를 보고 사람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단지 싸우면 안 된다, 죽이면 안 된다라는 윤리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들은 모두 가족을 폭력으로 잃는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다. 아버지 신의 가르침이나 엄포만으로도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모든 죄악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같은 인간을 죽이는 죄악이다.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막아야 했다. 그를 위해 다른 모든 편리함도 윤택함도 다양한 가능성도 다 버리고 숲 속의 고립된 세계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그래서 무서운 숲 속 괴물의 위협과 빨강색의 터부를 결합하여 윤리적이고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그러면서도 여전히 원초적인 자기네만의 망상을 만들었다. 너무나 효율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공평무사하고 단순하고 목가적인 금욕적인 삶에 완벽하게 기능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회적이면서도 거의 집단 무의식 차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근원적인 신화를 만들었다. 이 마을 장로들은 참으로 독창적인 사람들이다.

2. 허구의 상극

이를 보아하니 와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에서 첫번째 매트릭스가 망했던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에게 근심걱정 없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게 하자, 결국 모든 사람들이 그 복된 삶을 견디지 못 하고 자살하기 일쑤고, 세상은 피폐하고 망가졌다. 그러나 <빌리지>의 마을은 그럴 염려가 없다. 이것을 미리 대비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단지 마을을 도시와 단절시킨다는 단순한 목적에서 유발된 것일지 과연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마을은 자기네의 소박하고 복된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종의 기본 탑재 기능의 하나-절대악으로서의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들은 그 괴물을 상극(相克)으로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음양오행론에 따르면 상극이란 나를 누르고 죽이는 존재이다. 만약 내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행 중의 목(木)이라면 금(金)이 나의 상극이 된다. 즉 금은 나를 누르고 죽일 수 있다. 쳐버릴 수 있다. 만약 내가 금이라면 화(火)가 나를 극한다. 화는 나를 녹여버리고 내 존재를 없앨 수 있다. 즉 극(克)은 ‘죽임’의 행위다.

그러나, 그저 ‘죽임’의 행위를 하니 절대 악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죽임’의 행위 중에는 ‘살림’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나의 성장과 발전, 결실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래서 서로 상(相)자를 붙여 상극이라고 한다. 금(金)의 죽임의 행위가 없으면 목(木)은 계속 기고만장으로 뻗어나가려고만 할 뿐 자기의 형(形)을 갖추지 못 하며, 화(火)의 죽임의 행위가 없으면 금(金)은 결코 쓸모있는 모양으로 자기를 단련하지 못 한다. 죽임도 살림도 결국 적당히 알맞게 되어야만 좋은 삶을, 생명의 아름다운 생장수장(生長收藏)을 도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우주에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의 악’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유가 있는 허구이다. 두려움은, 삶을 위한 가상의 죽음이다. 숲 속의 괴물은, 마을의 영속을 위한, 윤리의 강화를 위한 가상의 파괴자, 죽음이다. 그것은 더없이 순수하고 맑은 마을 청년들의 영혼을 길러내기 위해 생겨났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행여라도 그르치는 일이 없고자 만들어낸, 생(生)하기 위한 극(克)이다.

그러나 이 괴물이 과연 ‘알맞은’ 상극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혼란스럽다. 무엇보다도, ‘입밖에 내어서는 안 되는 그들’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부모를 따라, 언니 오빠들을 따라 마루 밑의 피난처에 웅크리고 앉아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 이들의 두려움은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도시 문명의 폭력에 잃고서 숲 속을 찾아든 장로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한 것보다는 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체험일 것 같다.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자기가 알고 있는 작은 세상이 전부인 맑고 순수한 아이들에게 있어,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마루 밑에 숨는다는 이 엄청난 경험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말이다. 전쟁 상황보다 조금 덜한 정도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무서운 거짓말을 아이들에게 해야할 정도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우리 문명인가? 마을과 대비되는 도시(town)는 온각 악덕의 상징이자 소굴로 여겨져 마치 구약성경의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한다. 그토록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하고서 차마 그런 악행을 입에 담는다는 것이 너무나 잔혹하고 안 어울리는 지경이라, 때묻지 않은 순진한 그들이 도시를 비난하는 것이기에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적당히 때에 절은 채로 현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알지 못 하고 가보지 못 한 세계에 대한 증오와 멸시로 자기를 지키는 것이 과연 더 나은 일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단지 내가 청교도의 나라 미국의 시민이 아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시도는, 그들의 세계관은 더없이 기독교적이기도 하다. 완벽한 배타주의라는 점에서 그렇다. 바깥의 도시를 비난할 만한 충분한 윤리성이 있기에 기독교보다도 더 완벽한 배타주의다. 완벽하기에는 모자란 듯한 공동체의 물질적인 능력을 안에서 보강하는 정신적인 힘이 있기에 내부적으로 더 완벽하기도 하다. 사회주의건 이슬람이건 간에 실은 자기네와 비슷해서 더 미워하는 적을 절대악으로 비방하면서 자기를 정당화하는 일에 도가 튼 미합중국의 행태와 비교하자면야, 없는 숲 속의 괴물을 만들어 원초적인 두려움과 윤리의 알고리즘을 만든 마을 장로들의 행위는 그다지 지나칠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너무나 작은 공동체인 마을의 균형은 결코 완벽하게 안정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빌리지>의 멋들어진 상극의 알고리즘에 위기가 닥쳐온다. 완벽한 공동체의 조그만 결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자란 아이’에 의해 빨강색의 터부가 깨어지고, 우리의 남주인공이 칼에 맞아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약혼자를 살리기 위해 도시로 항생제를 구하러 가는 딸에게 윌리엄 하트는 마을의 근본적인 허구를 말해준다.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로들은 마을 사람들이 도시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연극을 했다. 우리의 터부는, 우리의 상극은 완전한 허구였다.

그러나 딸은 두려움을 이기고 약을 구하러 가면서 숲 속의 괴물과 맞닥뜨린다. 눈앞이 안 보이는 장님이기에 엄청난 괴물 의상으로 치장한 괴물이란 존재의 허구성이 결국 의미분별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아니라면 지금까지 믿어왔던 세계가, 방금 전에 손에 넣은 처절한 진실을 단지 목숨 걸고 가는 딸을 위한 아버지의 거짓말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할 정도로 강렬하거나 또는 너무나 깊이 자기의 존재 자체에 젖어들어있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루시어스 헌트가 노아의 칼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 영화는 완전히 스토리가 절단나는 위기를 맞는 듯이 보인다. 자기 공동체의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묵한 청년 루시어스 헌트가 주인공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쓰러져 목숨이 간당간당하다. 그가 나서서 마을의 비밀을 밝히고 괴물의 정체와 맞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을의 역사를 새로운 지평으로 열어나갈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이제 우리 앞에 서있는 것은 사랑하는 남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괴물의 숲을 지나 도시로 나갈 작정을 한 무모한 장님 처녀밖에 없다.

그리고 이 여자는 놀랍도록 용기와 기지를 발휘해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도시의 실체를 확인하는 대신 괴물을 확인하고, 결국 이 작은 공동체의 무모한 상상을 실체화해버린다. 허구로 밝혀져 이제 힘을 잃어야할 상극이 다시 살아난다. 루시어스 헌트가 슬금슬금 열어보려하던 의혹의 문을 아이비 워커가 사랑의 힘으로 닫아버렸다. 마을은 진실과 패망 대신 시련을 겪고 나서 더욱 강한 신앙을 얻었다. 인생의 의문들은 파묻히고 공동체는 승리한다. 과연 이것이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인가?

3. 소명, 부른 자가 없어도 부름받는다

지금까지 몇편 안 되는 영화를 찍은 젊은 감독이면서도 <식스센스>(The Sixth Sense 1999 감독 및 각본)의 대대적인 성공과 함께 ‘반전의 대가’로서 명성을 쌓아온 나이트 샤말란의 필모그라피를 볼 때, 그의 관심사는 특별한 소명을 받거나 혹은 특출난 재능을 가진 자가 자기의 소명을 찾아가기까지의 고통과 고뇌에 상당히 촛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 2000 감독 및 각본)과 <싸인>(Signs 2002 감독 및 각본)은 두 편 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액션 영웅인 브루스 윌리스와 멜 깁슨을 캐스팅해서 영웅의 이미지를 다른 각도로 활용한 재미난 작품들이다.

특히나 <언브레이커블>은 브루스 윌리스가 그동안 쌓아놓은 인간적이며 유머러스한 90년대 액션 영웅 이미지는 까맣게 잊은 듯한 엉뚱한, 지치고 슬픈 캐릭터에서 시작을 하지만, 결국엔 그를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으로 탄생시키는 내면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싸인>의 멜 깁슨은 초인적이거나 인간적이나 간에 액션과는 상관없지만 역시 그가 지니고 있던 액션 영웅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한 인간이 자기의 소명을 되찾는 이야기를 특이하고도 긴장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두 배우 모두 영웅의 고뇌가 어울리는, 인생의 연륜과 액션으로 잔뼈가 굵은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두 영화는 신에게 부름받은 자-영웅의 고뇌와 탄생 과정 혹은 부활 과정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여기에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 감독 및 각본)까지 추가하면 소명으로 공통점은 압축된다. 여기에도 액션 영웅 브루스 윌리스는 나오지만 마치 <싸인>의 멜 깁슨처럼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느냐는 듯이 삶에 지친 태도이고, 브루스 윌리스가 삶의 진실을 깨달아가는 플롯과 동시에 진행되는 다른 주인공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가 단지 고통스러운 운명으로만 여기고 있던 자기의 재능을 활용하고 긍정하며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싸인>과 <언브레이커블>과 공통된 주제로 이어진다. 이 세 영화 모두 특별한 사람에게 신 혹은 운명이 내려준 소명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고통과 고뇌의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런데, <빌리지>에서는 신이 생략되어 있다. 그 전까지의 영화들은 명시적으로 신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소명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기독교 사회의 틀을 굳이 벗어난 바가 없었는데, <빌리지>의 신의 부정은 너무나 명확해서 어디 에둘러갈 길이 없다. 마치 교구 목사 같은 완벽한 모습의 윌리엄 허트는 삶에 감사는 하되 신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 평화로운 청교도 마을에 교회가 없다. 신도 악마도 없이 숲 속에 ‘입밖에 내어선 안 되는 그들’만 있는, 엄청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국 윌리엄 허트는 딸에게 숲 속의 괴물은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운명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토대 위에 있다.

자기의 운명을 찾아,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를 쓰는 주인공들의 영화를 만들던 나이트 샤말란이 이제 <빌리지>에서는 스스로 운명을 창조한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도약일 수도 있고, 단지 아직도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상에 거점을 만들어가는 나이트 샤말란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지금까지 했듯 만약 귀신이 진짜로 있다면 어떨까? 외계인이 있다면 어떨까? 초인적인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실제로 있다면 어떨까? 하는 물음들에 하나 더하여, 숲 속에 괴물이 진짜로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재미난 영화를 하나 만들어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단지 우리가 그냥 믿을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냥 무시해버릴 수도 없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모호한 부분들을 여전히 다뤄보고 싶어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샤말란이 <빌리지>를 <식스 센스>보다 나중에 만든 것이 당연하다고, 그의 영화들에서 보여주는 의문들은 나름의 순서를 밟아가며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샤말란은 <식스 센스>에서 인간의 소명이라는 화두를 던진 후에 <언브레이커블>에서는 소명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선악의 절대성에 의문점을 던졌다. 그후 소명이라는 게 있는 것인지, 소명을 준 신이 과연 있는 것인지를 의심하는 멜 깁슨의 <싸인>을 지나 <빌리지>에 이르러서는 그 소명이 과연 신에게서 왔는지를 의심하는게 아니라 간단히 부인한다. 신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게재되어 있는 문제틀 자체를 부인한다.

신과는 상관없이, 인간은 자기 존재를 위해 소명이 필요하다. 진실인가 허구인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기의 소명을 준 신이 없어도, 사람은 자기의 소명을 찾아나간다. 그것이 부모와 마을 어른들이 한 거짓말이라도 상관없다. 19세기의 청교도 세상을 살아가는 순수한 선남선녀의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에너지는 그 모든 것을 정화하고 자기의 운명을 새로이 주조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엄청난 영화를 만들어놓고도 그러나 나이트 샤말란이 방점을 찍은 것은 ‘신의 생략’이 아니었다. 그가 꼭꼭 붙들어매어 우리에게 쥐어주길 원했던 것은 월리엄 허트의 진실을 무마해버린 장님 처녀의 열정, 진실보다도 강렬한 삶의 장엄함이었던 것이다. 결국 진실을 숲에 묻어버리고서 다시금 허구의 세계로 돌아오는 아이비 워커를 두고 승리인가, 패배인가? 진보인가, 보수인가? 하는 어떤 물음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다른 차원의 답을 그는 그려내었다.

4. 반전으로서의 완결

이 영화에서 그 유명한 나이트 샤말란의 반전은 그들이 19세기 사람이 아니었다! 하는 부정이 아니라 신화는 완결되었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그럴싸한 이야기꾼으로서, 우리더러 처음에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돌아다니는 귀신이야기를 믿으라고 하더니, 그 다음엔 만화에나 나오는 초인 영웅을 믿으라고 하고, 심지어 외계인까지 믿으라고 공작하던 나이트 샤말란이 이번에는 숲 속의 괴물이 있다가 아니라 없다, 그런데 없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 문명이 완성된다는 얘기를 한다.

신도 게재할 틈이 없이 명명백백한 청교도 마을의 허구가 해체되어 스러지기 직전,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하던 현실의 도움으로 다시 제 자리로 더욱 강해져 돌아올 때, 우리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은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는가? 결국 선과 악을 이성의 힘으로 가늠하기 이전에, 원초적인 두려움을 통해서야만 삼가는 마음, 절제를 배울 수 있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그 마을의 허구는 존속되었다. 우리 문명은 어떠한가?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허구가 땅 밑에 묻혀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큰 힘을 동원하여 그 허구들을 계속 묻어두어야 할까? 그렇게 힘들게 지키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샤말란 영화에서 반복되던,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과정은 <빌리지>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만드는 과정이 되었다. 많은 물음들을 극장의 어둠 속에서 불러일으키는 나이트 샤말란 특유의 긴장과 지성은 여전하지만, 이제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세상에 명확하게 자기의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그는 <싸인>에서 위태로울 정도로 무모하게 제시했던 목적론적 세계를 <빌리지>에서는 신이 게재하지 않는 허구의 청교도 마을을 통해 해체해버렸다. 그리고 나서는 모든 가치가 해체된 듯한 물질문명의 세계를 비껴달리는 한 인간의 힘으로써, 자기 운명을 이끌어가는 강렬한 욕망으로써 산산히 부서진 허구를 신화로 완성되도록 한다. ‘그것만이’ 있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있을 지도 모르잖아?’ 하고 은근히 말하던 어투에서 벗어나 분명하게 던져버린다.

강렬히 원하는 것을, 힘써 이룩한다. 그 외에 사실 어떤 것이 확실히 있는 것인지를 그 누구인들 속시원히 대답해 줄 수 있겠는가? 자기의 생명을 위해 한 세계가 도대체 어떤 허구의 상극을 만들어내든, 또 깨쳐가든-다른 것으로 대체하든 간에 말이다.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비교적 사실에 가깝다! 라고 개명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한 마디 할 수 있으련만, 나는 왠지 영화 <빌리지> 마을의 누구에게라도 한 마디 해줄 만한 용기가 없다. 비교적 사실에 가까운 것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이 근대정신이고 과학정신이겠지만, 말하자면 성실하고 합리적인 태도이겠지만,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이비 워커에게는 그런 설교를 늘어놓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과 같은 강렬함과 순수를 지닌 이라면 누구에게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과연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가장 좋은 상태로 고쳐나가며 살 수 있는 존재일까?

나이트 샤말란은 단지 사람들이 <빌리지>를 통해 자기 세계의 허구성을 의심해보는 것만으로도, 더 나아가 상대주의와 관용을 깨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지도 모른다. 사실 한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는 최고의 찬사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젊은 그가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조바심치면서,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남승희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 비평 응모작

see also 이터널선샤인티없이맑지않아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