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슈즈의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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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은 다리와는 달리 너무나 쭉쭉 잘 뻗은 일명 '칼발'이다. 그것도 보통 칼발이 아니라, 기장은 242인데 볼둘레는 225 사이즈라고 한 구두판매원이 증언할 정도의, 거의 한국인의 발이 아닌 칼발이다. 그래서, 힐을 못 신는다. -.-; 하이힐은 물론이요, 중간굽도 발 아프다. 왜냐면, 볼이 얇다보니 신발이 발을 못 잡아줘서 주욱 미끄러지기 때문에, 너무너무 불편한 것이다. 게다가 아치(족궁)도 엄청 크다. 즉 일반 구두를 신으면 발 가운데가 떠 버려서 신발이 발을 잘 못 받쳐주기 때문에 불편하다. 총괄해보자면 신발이 옆에서도 아래에서도 위에서도 못 잡아준다. -.-; 그러니 플랫슈즈도 그다지 편하지 않고, 굽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잘 차려입고 외출하는 서너시간은커녕 5분도 못 견디게 발 아프다.

예전에는 그걸 몰라서 하이힐이란 다 이렇게 괴롭고 힘든 건가부다 했다. 그래서 랜드로바도 신고 등산화도 신고 아주 가끔은 괴로워하며 하이힐을 신었다. 그래서 복고풍이 유행하면서 통굽이 나왔을 때, 그때 참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통굽은 앞이 높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높이차는 별로 없고, 또 그때 유행하던 것은 발 전체를 감싸는 형태의 신발이었기 때문에 양발을 신고서라면 신을 수 있었다. 통굽에 청바지라면 다리 엄청 길어보이는 아이템 아니던가! 게다가 통굽 샌들은 더 좋았다. 내 사이즈보다 작은 신발을 사도 뒤꿈치만 튀어나오면 될 뿐 볼은 거의 맞게 신을 수 있으니까. 코르크인지 뭔지 하는 탄력있는 소재라서 아치도 훨씬 낫고, 샌들에 양말 신고 참 많이 다녔다.

통굽이 발건강에 안 좋다는 얘기가 그후에 확산되고, 유행도 사그라들고, 나 스스로도 귀찮고 불편해지자 다음 타자로 힙합 패션이 나타났다. 그 덕에 한동안 힙합 바지에 랜드로바로 오래도 버텼었다. 물론 힙합패션 역시 자기 발보다 큰 신발을 신으면 건강에 안 좋다는 얘기가 나왔으며, 나 역시 질질 끌리는 바지가 거추장스럽고 바지에 가려 안심한 채로 은근슬쩍 늘어나는 엉덩이살에 기겁한 후엔 힙합이 점차 싫어졌다. 그 후엔 참으로 신을 만한 신발이 없었는데, 다행히 그 유명한 송림제화에 가서 워커를 맞춘 후부터는 너무 편해서 그것만 신기도 했다. 그전에는 참 많이 찾고, 많이 실망했다. 아무튼 바지에 신을 신발은 그럭저럭(아무러나 해도 랜드로바가 있으니까) 구하지만, 치마에 신을 신발은 참 어려웠다.

그러는 와중에 알게 된 것은, 내 발은 이상한 발이 아니라 너무 잘 생긴 발이라는 것. 그래서 맞는 신발이 없었다는 것. 다른 여자들은 무슨 천하장사라서 그냥 그 아픈 하이힐을 신은게 아니라 그나마 발아픈 정도가 참을 만 하니까 신는다는 것. -.-;

그러다가! 토슈즈의 유행이 닥친 것이다. 볼이 좁아야 예쁜! 토슈즈. 굽이 없어야 예쁜! 토슈즈. ㅜ0ㅜ; 아 2003, 2004년은 감동의 물결이었다. 바나바나에서 너무 예쁜 토슈즈형 구두를 2개나 건졌다. 내 발을 위한 구두라니! 단화를 신고 치마를 입는 멋이라니! 스니커즈의 유행 또한 패셔너블한 운동화를 많이 양산했기 때문에, 나는 요즘 정말 즐겁게 치마를 입고 있다. see also 2003패션, 2004패션

그래도 여전히 고민은 있다. 발레리나 슈즈의 유행이 가고 나면 이 획일적인 패션판인 한국에서 어떻게 내 발을 위한 구두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그래도 하이힐을 신을 수 있다면 얻을 수 있을 장점을 패션에 추가하지 못 하고 있다는 슬픔이다. see also 유행할때입자와유행할때사자

차라리 발이 못 생기고 다리가 잘 생기면 정말이지 편하게 멋지게 한국에서 패션을 추구할 수 있었을텐데. -.-; 내 다리는 말하자면 크리티칼 다리다. (critical period에서 따온 말. '이쪽이냐, 저쪽이냐' 외에 의미상 큰 관련없음) 하이힐을 신으나 안 신으나 여전히 잘 빠진 다리나, 하이힐을 신으나 안 신으나 여전히 별로인 다리 사이의 다리를 말한다. 즉 하이힐을 신으면 그런 대로 날씬해보이나 단화를 신으면 별로, 인 다리다. 이런 다리들은 매일매일은 아니라도 가끔 기분내고 싶을 때는 하이힐을 신고 멋지게 뽐내면서 다닐 수 있다면 참 행복한 것인데, 내 다리는 내 발의 특수성으로 인해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 재미에서 제외되었다.

아 물론, 맞춤구두를 찾아가봤다. 그러나 디자인이..ㅜ.ㅜ; 소재나 디자인 모두, 내 취향을 만족시키기엔 멀었다.

그래서 나의 꿈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은 뒤엔 피렌체로 날아가 세계에서 최고로 좋은 맞춤화를 맞추는 것이다. 그 가죽에서는 끝내주는 감각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도 제일 잘 나가는 맞춤집에 가고야 말겠다. 그래서 내 발에 맞는 편하고 예쁜 구두를 여러 켤레 맞추어 오겠다. 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

한국에서 볼사이즈를 3개로 (좁은 볼, 보통, 넓은 볼) 기성화가 나오는 꿈 같은 건 진작에 접었다. 이 나라는... 그런 거 바라기엔 아직 멀었다. 내가 피렌체 가는 게 빠르다. -.-;

see also 여자도옷을입는다

2005.5.1 패션이야기

남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