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함의 힘과 여성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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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억압당하기만 했던 시절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부추김을 당하면서 스스로가 갖는 (성적) 가치를 자각하게 된 젊은 여성들이, 어떤 형태로든 성의 상품화와 자기 사이에 가지고 있는 것은 자존심, 그리고 남들 눈의 무서움밖에 없다.
여자가 자신의 섹시함이 가진 힘을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다. 이걸 통과 못 하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비리비리할 수도 있다. 또 이걸 과신하여 아무데나 앵겨붙으려고 하다가는 품위고 뭐고 다 떨어지고 '잡년' 취급을 받는 신세가 된다.
한국은 유교국가인가?
현대 한국인들은 흔히 '전통윤리'라고 하면 가문중심주의에 남녀유별, 치명적? 순결주의로 치장한 조선시대 유교주의를 생각하곤 하지만 실은 그것이 한반도에 정착한지는 긴긴 역사에 오백년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민중들의 삶은 지배층의 윤리와는 상관없이 전개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문제의 '전통윤리'가 일반화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온나라 백성이 다 양반가문에 족보를 차게 되면서부터라고 보아야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대한민국 시대까지 비교적 짧은 시기에 형성된 극악스러운 여성탄압 이데올로기를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남성의 자유분방한 성은 그의 지위와 예술적 능력에 따라 찬양되기도 하고 최소한 '힘의 발현'으로서 높이 평가받는데 비해 여성의 자유분방함은 곧 '화냥질'일 뿐, 그 이외의 어떠한 것도 되지 않는다.
새롭게 성개방이라든가 여성해방이라든가 개인주의 등등의 사조가 흘러들어왔지만,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게 여성상품화 없이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것이기에 '개방' 자체는 많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성개방에 대해서는, 그리고 몸팔기라는 행태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회적으로 경멸일변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 안에는 전래의 유교주의자들도 있고, 자유분방한 젊은이들도 있고, 엄청나게 다른 윤리와 생활양식이 혼재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뻔히 보이는 현상들을 두고서 있지도 않은 자신의 이상사회에나 걸맞는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인간이 아니'라며 거부한다. 따라서, 힘만 주어진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파시스트가 될 것이다. 이미 잘 나가고 있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성윤리는 언제나 사회적 테러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나 여성이거나 미성년자라면 아주 만만한 상대다.
권력을 가진 측에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만 제도와 무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실제 사회가 굴러가는 방향은 자유분방한 성윤리, 다양한 욕망의 분출이 될 것이지만, 그리고 거기에 발 맞추어야만 '문화산업' 시대에 맞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겠지만, '문란함'의 죄값을 치루는 개인들은 꼭 만들어 놓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이상한, 눈가리고 아웅 식의 겉치레지만, 지배적인 사회윤리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들 겉으로는 '아닌 척' 해야한다.
色은 힘인가?
그래서 젊은 여성들은 욕망의 대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오로지 잘 나가기에는 걸리적거리는 여러가지가 많다. 시선을 한눈에 모으는 것은 분명 일종의 권력이다. 특히나 한국사람은 우뇌중심이라 외모에 약하니 여성의 섹시함은 남들을 움직이기 위한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재수없는 사회적 테러에 또한 노출되는 건 무슨 일인가. 이렇게 되면, 여성들의 성은 억압당하는 것도, 부추김당하는 것도 결국은 한 가지 믿음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남성 욕망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또 한 무더기의 썰이 등장을 하겠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런 사회적 착각을 그저 무시하고 남성의 욕망을 이용해서 챙길 것만 챙기는 여성들도 많다는 사실만 지적하자. 그들에겐 남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원조교제라는 미명 아래 일종의 프리랜서 매춘을 하는 여중고생들은 분명 그럴 것이다. 그들은 위험은 감수하지만 죄책감은 없다.
불공정 거래?
다른 거 팔면 고맙게 잘 받아쓰면서 성적 써비스를 파는 자에 대해서는 유독 인간취급을 안 하고 막되먹은 취급을 하는 사회적 의식은 참으로 자본주의 신민답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고래로 생산력의 근원이 되는 생식을 집중관리하다보니 강한 윤리가 성에 매여져있기 때문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심히 상도덕에 어긋난 것이 아닌가 한다. 산 놈은 뭐라 안 하고 판 년만 뭐라 하다니, 이건 불공정 거래다.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
성적 써비스를 사고 파는 행위에 대해서 각 개인들은 다른 윤리를 가질 수 있다. 이를테면, 나의 윤리의식으로는 그건 인격과 성에 대한 모독으로, 참 아니꼽고 치사한 행위라고 생각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개의 매매춘이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사의 노동과 권력관계들은 원래 아니꼽고 치사한 것과 아예 관계없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사정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이해를 해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명쾌한 답을 내리지를 못 하겠다.
그래도 최소한, 공정성만큼은 유지해야 된다고 본다. 파는 행위가 떳떳치 못하다면, 사는 행위 역시 떳떳치 못한 것이다. 사는 행위가 욕구불만을 해결하는 필수적인 것이라면, 파는 행위 역시 '성욕 해결사'나 '성적 장애 치료사'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남성 역시 단순한 자유분방을 벗어나서 몸팔기로 나서면 사회적 경멸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지위가 떨어지는 정도'는 다르다. 지금은 남성의 성도 상품화되고, 사회적으로도 대상화되어가는 중이다. '성적 담론의 도마 위에 올라갈 필요가 없는' 기득권을 가진 자로서만 살아가기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남성이 그것을 부정하거나, 혹은 박탈되거나 하여 벗어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남성들에게 해방을 주는 것이라고 난 본다. 젊은 여성들과 마찬가지의 도전과 위험에 남성들 역시 처하게 되는 것이다.
욕망의 대상으로서 자신을 내놓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아닌척' 하는 정신으로는 온전한 욕망의 발현을 기대할 수 없다. 갖가지 사회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꾸밈없는 자신의 성정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그러한 몸과 시선을 통해서만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조화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난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이지 않는 실험과 실수들을 감수하는 것이 인생이다.
->청소년에겐 보호가 아니라 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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