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여성적 시선 (미소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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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시선이란?
여성적 시선이라니? 여성적 시선은 내가 만든 말이다. 남성적 시선이 서구의 근대 사상에서 비롯된 병적인 '대상화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으로서 객체를 깎아내리고 주체를 공허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여성적 시선은 주체와 객체 간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여성적 시선'을 가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당연히 모든 남성들이 '여성적 시선'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도 주장하지 않는다. 여성적 시선이란 여성이란 주체가 발달시킨 분명하고도 특별한 하나의 시선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 일반의 상황에서 비롯되며, 상황 자체를 변화시키는 운동을 일으킨다.
여성이 전통적으로 욕망의 시선으로서 이미지가 구성된 것은 여성들 입장에선 더럽고 치사하기 짝이 없는 갖가지 사회적 폭력을 야기한다. 이걸 총정리를 해서 말하자면, 섹시한 여자 즉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성'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남성이 좀더 심하기는 하지만 문명화된 세계에 사는 남성들은 성적 대상의 차원에서만 아름다운 여성을 보는 강한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인류처럼 성에 집착하는 종에서, 그것도 지금의 막강한 자본주의 자체를 굴러가게 하는 가장 막강한 동인으로 자리잡은 관습적 욕망의 회전을 뜯어고치기란 힘든 일이다.
문제는, 이에 대해서 여성들이 갖는 태도이다. 이것에 무조건 저항한다면, 소통가능한 사회적 관계와 감수성을 잃어버려 뒤쳐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원하기에, 남성 자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은 치명적이다. 그런 이유에서, 또 스스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이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여성으로서 자기존재가 구성되어 있으면서 또 한편으론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정신분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정신적 과부화를 요구하는 일인 것이다.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지만, 여성들은 기만적 감수성과 분노의 축적 사이에서 일종의 줄타기를 해야한다. '기만적'이라고 표현한 극단까지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으로서 내세우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자연스럽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물物(thing, 사물, 육체)로서 바라볼 수 있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여성들은 여기에서, 대상으로 제시된 사물을 지배하려들거나 깍아내리려거나 하지 않고도 즐기며,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다른' 시각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배려이자 자기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나와 이 부분에서 거의 전적으로 의견이 같은 책이 있어서 소개하는데,
펠릭스 가타리의 [분자혁명](푸른숲)이다.
"자본주의 기반의 하나를 이루는 성적 소외는 사회적 신체가 남성성 쪽에 기울어지고 있는 반면 여성적 신체는 탐욕의 대상, 상품으로 변형된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탐욕의 대상, 상품에 대해 죄책감을 지닌 채 접근할 수 있을 뿐이며, 체계의 모든 톱니(결혼, 가족, 노동 등)에 복종하게 된다."
여성의 대상화 문제에 대해서, 이만큼 요를 꿰뚫는 접근은 없다고 생각된다. 역시 중요한 것은 여성을 왜 물건으로 만드느냐 하고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사회의 시각문화를 온통 지배하다시피하는 남성들의 성적 욕망이 스스로 갖는 컴플렉스에 의해 어떻게 체계의 볼모로 끌려가는가를 보아야 한다. 톱니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남성의 성적 망상을 억압하거나 제거하거나 거부하는 방법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성을 닮아감으로써, 여성의 길을 따라감으로써 남성은 다른 성적 망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 욕망은 남성의 신체에서 떨어져나와 여성 쪽-아주 정확히
말하면 여성 되기의 방향-으로 간다."
여성의 방법이 남성과 다른 것은 소유로서 자신을 확인하고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소비로서 자신을 확인하고 기쁨을 누리는 전형적인 역할을 누려온 까닭이 크다고 난 생각한다. 여자는 아름다운 사물을 소유함으로써 기쁨을 누리지 않고 그것으로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하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사물로서 찬사의 대상이 될 때 기쁨을 느낀다. 기본적으로 죄책감=성욕이 없으며, 사물과 자아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공허의 골을 파놓는 근대적 시선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여성적 시선의 운명이다.
근대화를 통과한 남성적 시선은 대상과 주체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공허의 골을 파놓았다. 이 시선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저항을 한다고는 하지만, 잘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인 편이다. 근본적인 것은 사물과 타인과 관계맺는 방식으로서, 소유로서 기쁨을 느끼고 그것을 위해 일상을 조직하고
달려가는가, 아니면 소비에서 기쁨을 느끼고 그것을 위해 일상을 조직하고 인생을 만들어가는가의 차이가 이 두 가지 시선의 결과를 결정적으로 다르게 한다고 난 보고 있다.
<여성은 성적 착취를 당함에도 불구하고 욕망과의 사이에 어떤 일정한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관계를 여성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신체 수준에서 맺어간다.>
미소년이 여성의 시선의 대상이면서도 독립적이고 존중받는 존재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시선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여성적 시각이다. 자기를 보건, 다른 여자를 보건, 예쁜 팬시제품이나 악세서리나 어떤 아름다운 조형물이나 멋진 영화를 보건 간에 흔들리지 않고 아름다움만을 찾아내고, 순수히 즐길 수 있는 진지한 시각이다.
한편으론 사회적인 시선과 요구로 고통받지만, 다른 한편으론 남보이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의식과는 다르게 존재하는, 더 근본적인 미감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육체를 끊임없이 사랑스러운 것으로 바라보고 개발하는 자가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를 (성적) 매력덩어리로 생각하는 법을 거세당한 남성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는 것이다.
요즘엔 그런 남자도 많다고 반론이 올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사실이 현대 남성은 여성화를 향해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고, 늘 자신의 육체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미소년의 감수성은 기본적으로 여성과 같다. 스스로 여성화를 지향함으로써, 미소년은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존중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1999.8.31
->갑바 없는 남자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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