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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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게' 컴플렉스. 이 말이 그리 틀리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새 한국의
젊은이들은 분명 귀엽게 보이기 위해 애를 쓰며, '귀엽다'는 말에 기뻐하고 그 말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확인한다. 이 점에서 몇년전에 일본의 상황을 한국은 이제
따라잡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여성들은 '귀엽다'고 하면 좋아하고, 한국여성들은
'섹시하다'고 하면 좋아한다는, 그런 얘기가 있'었'다.
귀엽다와 섹시하다
몇년전에 인기를 끌었던 케이블 35채널의 '엘렌'을 보면, 평소 남자를 밝히는
페이지가 자주 하는 대사로 '저 남자 넘 귀엽다!' 가 있었다.
He's so cute! 캬오! 이것을 그때, 97년 정도?에는 '섹시해'로 번역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잘 된 번역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성적으로 매력적인
상대에 대해 '귀엽다!'는 감탄을 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전혀 일반화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아직까지 '예쁘다'는 말 대신 '섹시하다'고 하는 것이 여자에게
칭찬이 되던 때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그때 이전에 '귀엽다'는 말이 남자의 성적
매력을 감탄하는 언사가 된 것이고, 한국에서는 근일이년 사이에서야 '귀엽다'는 말이
'그러니까 사귀어볼 만한 상대'라는, 강력한 성적 함의를 일반적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90년대 전체를 통털어 계속 진행되었던 것이 '더 섹시하게' 모토와
함께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는 성개방 풍조였다면, 패션에 있어서는 90년대
상반기를 이끌었던 정신과 하반기를 이끌었던 정신이 사뭇 다르다. 상반기를 이끌
었던 정신은 '오로지 더 섹시하게'로서 경제호황에다 풍요롭고 개인주의적으로 자란
70년대생들의 대거 등장으로 인해, 여기에 신세대 열풍과 함께 감각적 이론적
서포트를 양쪽에서 받게 되어 확실히 잘나갈 수 있었다. '섹시하게'를 구성하는 실천
방안은 무엇보다도 '더 짧게'로서 90년대초부터 중반까지 계속 스커트 길이는 짧아져
갔고, 이 '짧아지기 운동'은 하반기의 복고풍 열풍에 의해서야 한풀 꺾이고, 복고풍
운동은 '촌스러움의 멋'을 거쳐 새로이 멋스러운 분할선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십대패션이다. 그간 패션의 중심을 형성했던
이십대 초반은 점차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다. 가장 발빠르게 욕망의 흐름에
대응하는 산업인 TV 광고를 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십대 후반의 여성들이 '그보다 늙은' 여성들에 대하여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장점
은 역시 생동생동한 젊음, 그러니까 '젊다기보다는 어리다'는 특징이다. '어린' 특징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 화장을 안 한 깨끗한 피부고, 통통한 볼살이며 전체적으로
'귀엽다'란 인상을 주는 발랄한 차림이다. 복고풍 초기에 들고일어나던 정형적이지
않은 미인상, 즉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볼탱이가 빨갛고 툭 튀어나온, 완전 '어린애
스러움' 자체였던 미인들은 최근엔 많이 퇴조했다. 그래도 작은 턱과 큰 눈 등,
전체적으로 어려보이는 인상이 아직도 미인의 조건인것은 여전하다. 새천년을
맞아서인지 길쭉한 얼굴의 새로운 미인상도 제시가 되고 있지만,
( ->대안적 미인)
아직까지 주류는 그렇다. '젊음'이 아니라 '어림'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림'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하나의 성질이 '귀엽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잘 빠지고 섹시한 여자래도 '귀엽지' 않으면 최전선에서 물러나
있다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요즘 n세대 스타랍시고 띄워주는 여성들치고 귀여운
척을 배제하고 오로지 섹시한 척을 하는것을 못 보았다. 어려 보이고, 귀엽게 보여
야 십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따라서 주류로 떠오를 수 있는거다.
그런데, 귀엽다는 것은 자기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찬사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는 나이서열이 강하다. 자기보다 나이많은 사람에게 함부로 귀엽
다고 하는건 좀 미안한 일이다. 따라서, 거꾸로 기탄없이 귀엽다고 말할 수 있으면
곧 만만한 상대가 된다. 십대들이 자기네보다 나이 많은 스타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사랑할 수 있는 건 귀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주 만만한, 대등한
위치에서만 사랑이나 매혹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지금의 젊
은이들은 거대한 이치나 대상에 대해 쉽게 엎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미감은 자신의
'만만한 생활양식' 안에 들어와있기 때문이다. (카리스마? 그런건 재미다. 신앙이
아니다.)
그렇기에, 남자들에 대해 귀엽다, 는 말이 찬사가 된 것은 분명 그동안 남자의
지위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직도 여성들의 사랑의 대상은 '옵바'인양
많이들 하고있지만, 실은 '귀여운 옵바'인 것이다. 자신에 대해 '귀엽다'는 말을
찬사로 받아들이는 남자들은 변화하는 남성의 역할과 이미지에 대해 적응이 아주 빠른
사람들이다. 물론, '귀엽다'의 주성분이 뽀얀 살결이나 그런 생리적 특색이라기
보다는 귀염성 있는 태도, 패션 등으로 여성의 기준과는 좀 멀기 십상이지만. 여자들
끼리 모여 누구는 넘 귀엽다, 누구는 예쁘다 품평회를 여는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다.
귀엽게 신드롬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 것이다. 원래 연애관계란 '다 큰 어른들이
서로에게만큼은 어린양을 맘대로 부려도 좋은 관계'인만큼, 귀엽게 컴플렉스는
아주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의 생활양식에 안착한 것이다. (반바지를 외출복으로
입는 남자들은 대개 이에 포괄될 것이다.) 이제 [귀여운 남자] 제목을 달고 영화만
나오면 다 되는데. ^^;
그러나, 너무 귀여웠다!
요일이년새 여름만 되면 돌아오는 나시옷이 점점 많이들 늘어나고 또 노출이 심
해지는 것은 한반도가 갈수록 더워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복고풍이 충분히
한 싸이클을 돌았다는 뜻도 된다. 무슨 얘기냐면, '나시'라고 하는 의상의 유행은
점차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어가는 기후에 적응하는 생리적인 반응일 뿐만 아니
라 어떤 옷이 아름답고, 또 섹시한가 하는 미감, 우리의 문화적 감수성의 작용이라
는 얘기다. 그 증거로, 요즘 같은 정도의 노출의상은 이미 90년대 상반기에 다 해
먹었던 것이다. (아직은 훨 약하다고 본다.) 한참 신세대 논쟁과 함께 오렌지족
논쟁이 붙으면서 과도한 노출에 대한 제재조치에, 그에 대한 논란이 들끓었었다.
그때 압구정에서 탱크탑을 경찰이 단속한다고 하여 마치 한물간 70년대 장발족, 미
니스커트 단속의 추억이 되돌아오는 듯했다.
다 야해질 대로 야해진 다음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이제 90년대 하반기의
복고풍 열풍과 함께 '무조건 노출=섹시함' 이란 공식이 깨져버린 것이다. 복고풍은
기본적으로 섹시함을 위한 노출, 더 길어보이기 위한 노출이 거부된다. 이것은
기왕에 긴 다리, 이미 날씬한 몸을 위한 패션이다. (80년대를 지나며 이미 신장 변화
가 많았다.) 짧은 대신 길며, 노출 대신 새로운 분할선의 운동, 상쾌감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젠 다시 '야하기'가 돌아온다. 단지 여름이라서 노출이 심한 것뿐이라기
엔 심상치 않은 징후가 있다. 올여름 십대들을 위한 패션지들의 커버모델은 하나
같이 섹시한, 성숙한 이미지를 의도하고 있다. (딱 하나, 쎄씨만 안 그렇다. 이 잡지
는 독자층이 20대까지 다소 넓기 때문에 감각이 좀 느린게 아닐까 싶다.) 물론
모델들은 분명 십대들, 잘해봐야 스무살이지만, 그동안 표방하던 '귀엽게 어리게'의
전략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니 바캉스에 뭔가 기
대를 하고 야시런 이미지로 변신하는게 자연스러운 일인듯 하나, 그렇게 변신하게
된 근저의 동인은 그동안 그칠 줄 모르고 했던 '귀여운 척'에 대한 지겨움과 반발
심이라고 난 보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귀여운 척 이미지와 이어진 끈을 놓지는 않고 있다. 섹시한 척 연출
과는 달리 얼굴은 십대 코드 그대로다. 어떻게 보면 좀 어정쩡한 이미지다. 귀엽게
하기가 이제 좀 지겹긴 한데, 그대로 섹시한 척으로 가기엔 혹 늙어?보일까 좀 두
렵고,, 심혈을 기울여 어린 얼굴에 섹시한 포즈를 취한 것이라 보인다. 이렇게
나가다 보면 어쩌면 앞으로는 '난 십대야' 하는 얼굴이 아니더라도 그냥 섹시 모드로
가는 판이 될지 모른단 생각이다. 십대들 자체가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당연시
여기면서 또 사회 역시 당연시 여기게 되면서 일부러 '귀여운 척'의 코드를 거쳐갈
필요를 못 느끼게 될 만하니 말이다. (달라진 '한창때'에 대해서는 ( ->피부와 권력)
'어린 나이'가 일종의 특권이 되어가는 지금의 色의 문화는 많은 긍정적인 효과에
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내가 늘 얘기하는 '경험의 무효화'다. 뭐
어른들처럼 더렵혀지지 않았다는 둥, 아직 순수하다는 둥 사기치는 얘기는 제껴놓더
라도, 인생을 살면 살수록 산 보람이 없어진다는 것은 참 웃기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왜 사는데? 이미 생겨났으니 그냥? 아니면, 다른 모든 가치에 대해서는
안 그렇고 '젊음'에 대해서만 그렇다는 얘긴가? 그럴 수는 없다. 오로지 젊음이라
는 가치만이 모든 경험과 진보와 생산에 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면 젊음은
기본적으로 생산력이기 때문에.
분명히 말하지만, 무조건 '기왕에 있는 것'의 낭비로서만 젊음을 재단하는 것은
자본의 횡포다. 젊음은 13살부터 18살까지, 혹은 18살부터 23살까지의 연령의 가름
으로 분별되는 하나의 실체가 아닌 것이다.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선 실체인양 사기
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체득하고 형성해
나가는, 진행해나가는 하나의 태도이자 양식, 나름의 열역학 체계다. 즉 과정이라는
거다. (관련글 링크 예정)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경험도 머리 속에 든 것도 많아지고 세련되어지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대해볼 만한 이치다. (대신 지치기만 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거꾸로 나이가 어릴수록 아는 것도 없고 멋내는 것도 주관이 없이 유행따라 친구
따라 똑같이 하려고 드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 먹어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내가 요즘 가장 재미 없게 생각하는 패션이 20대초반 대학생연하는 여자들의 긴
머리 헐렁한 티와 반바지, 남자같은 구두에 다리 굵어보이는 양말, 주머니 주렁주렁
가방에 체크무늬 패션이다. 왜냐면, 이상하게도 예외없이 그 여자들은 남들은
중고딩 시절에나 하는 '끼리끼리 똑같이 하기'를 그 나이 먹어서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었으면 좀 생각도 들고 자기주관을 세우고 나름의 멋을 개발
해야지, 언제까지 친구따라 유행따라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할 것인지, 보고
있자면 짜증이 난다. 중고딩 때야 그럴 수도 있다. 아직 어리니까. 즉, 초딩 졸업한
지가 얼마 안 되니까. 또래의식에 아직 젖어사니까. 왕따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우
니까. 그러나, 아무리 어린 나이가 무소불위의 권력이고, 십대문화가 각종 문화
산업의 타겟이라지만 언제까지 착각을 계속할 것인지. 이십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십
대문화를 준거로 자기존재를 꾸려가려하는 자들에겐 아주 가파른 패배의 나락만이
있을 뿐이다.
인생에는 자기의 행위에 따라서, 또 이에 따른 자기 존재의 변화에 따라서 건너
가야 할 것이 있다. 인성을 형성하는 초기에 또래집단이 그렇게 절대적이라고 해서
끝까지 또래집단에 끌려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를 디자인하고, 자기의 스타일을 가진다는 것이다.
진짜 멋을 창조하는것은 그때부터다. 자기 안의 어린애성이 똥오줌 못 가리고 떼만
쓰게 내버려두는 것이 젊은게 아니다. 자기 안의 어린애성이 충분히 그 천재성을
발휘하도록 널따란 집을 마련해 주는 어른만이 젊은이로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
20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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