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나도 야한 남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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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야한 남자도 좋다. 남자들만이 야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만이 아름다운 볼거리의 기능을 하는 것 또한 아니다. 남자들도 훌륭한 볼거리의 역할을 하며, 여자들 역시 부끄러움 없이 멋진 남자를 구경하며, 야한 남자를 좋아할 수 있다. 단지, 아직까진 그렇게 까대고 말하는 여자들이 수적으로 불리한 편이지만.
먼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한국 사회에 광풍을 일으킨것은 어언 1989년도의 일이다. 온세상이 역사와 민중과 이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이, '딴 소리'를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지식인계였는데, 그중에서 그리도 배짱좋게 인간의 '욕망'의 문제를 단도직입, 진솔하게 거론했던 거의 유일한 인물이마광수 교수다. 그후 사회주의와 맑시즘이 망하면서 인문계 사회과학계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포스트 구조주의 등으로 유행이 옮겨가 그제서야 지식인들은 욕망이 어쩌니, 몸이란 무엇이니 하고들 잘난 척들을 했지만, 아무도 한국에서 가장 먼저 그 문제를
꺼내고, 또 직접 몸으로 부딪혀서 고난까지를 겪은 '선배'로서 마광수 교수를 인정하는 것을 못 보았다. (내가 본것들 중에선 말이다. 분명, 대체적인 분위기는
그랬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한국병'일텐데, 외국에서 들어온 론이 아니면 론으로도 안 치는 '사대주의'에, 자기네 패거리가 아니면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쌓아도 곁눈도 안 주는 '우리병'에 찌들어서 비교하자면 조직폭력배만도 못한 수준의 직업윤리가 학계에 만연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야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특히 90년대 한국 사회 격변의 주요 특질일 수도 있다. 남자들이 젊고 예쁜 (즉 성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이겠지만, 그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특질을 가리키는 형용사로 '야한'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언제나 그러했던 것은 아닌 것이다. 때에 따라서 그 형용사는 '참한'이 되기도 했다가 '예쁜', '귀여운'까지도 변주된다. 요즘 분위기로는 '섹시한'이 다시 뜨는 것도 같다. 90년대 상반기의 패션 경향으로 볼 때, '야함'이란 노출과 적극적인 태도 등과 쉽게 동일시되었다. 요즘처럼 '젊은 여자 경쟁군' 전체가 '어리게' 보이려고 발악하는 시점에서는 당연 그것이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선수들은 '야하게' 보이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귀엽게' 남아있으려고 하는 경향이 아직도 많다. '인기 절정기'가 십대후반으로 맞춰져 있는만큼, 그 정형성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귀엽게 컴플렉스)
'야하다'고 하는 말은 그 말많던 유행어의 자리에서 멀어져 이제 자동적으로 인기절정의 여성에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아니라 나름의 의미자락을 펼칠 자유를 얻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미 거리는 야한 여자와 귀여운 여자, 이러저러한 매력을 가진 여자들도 꽉 찼다. 유행이 돌고돌다 보면 이런 다양화가 형성되는 듯하다. 한참 동안 천편일률적으로 유행하던 스커트길이는 이제 그간 유행했던 갖가지 길이들을 다 포용하고 있다.(물론 아직도 '촌스런 길이'와 '세련된 길이'는 있다.)
마광수 교수의 소원대로, 이제야말로 육체적인 매력에 있어서나 화통한 욕망의 분출에 있어서나 꺼리낌이 없는 멋진 여자들이 '야한 여자'로서 세를 형성할 날이, 또 추앙을 받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야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여자다
락까페나 테크노 클럽에 가서 멋드러지게 춤을 추면 와서 넘 멋지다고 칭찬하는 것은 언제나 여자들이다. 남자들은 수줍어서인지, 오해를 받을까봐인지, 아니면 예술엔 관심이 부족해서인지 아무 말들 없다. ^^; 야하고 확 튀는 패션의 여자들에 감탄 감복하는 것도 대개는 여자들이다. 야한 여자가 좋다고 남자들은 말하지만, 그 매력이 '성적 매력'인 이상 자기네 볼일과 상관없는 '심미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관심이 줄어드는 것일까.
야한것을 찾거나, 패션에 대해서나, 맘에 드는 여자를 찾는 것에서나, 심미적인 지경에까지 이르는 남자들은 확실히 소수인 것 같다. 그래도 요새는 많은 남자들이 개명해서 ^^; 좀 신경쓰고 다니는 분위기라 자신에 대해서나 남에 대해서나 미를 추구하는 자세가 좀 형성되었다. 늘 분명히 외치는 바이지만, 사회적 감수성과 상관없이 개인의 감수성을 개발할 수는 없다. 언제나 자신의 色의 발현을 억압받고 사는 남자들이, 그 결핍된 것을 여자한테서 찾는다고는 하지만, 억압받고 사는 사람들의 미감은 떨어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봐도 뭐가 좋은지 모른다. 그저 '깔쌈하군' 하고 눈이나 돌아가는 것이지.
역시, 남자들이 자기를 개발하는 데 힘쓰게 될 때에야 앞서가는 여성 선수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감복, 존경할 수 있을 것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섹시한 여성이 사랑과 존중을 얻는 제대로 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남자들이 모두 자기 몸으로 色을 추구하게 되어야한다.
(<-섹시한 여자의 고민) 아름다움의 경쟁에 동참해야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대상화하면서 色의 욕망을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에야 남자들의 끝없는 지배욕과 지나친 경쟁을 죽일 수 있을 것이고, 테러블한 사회의 위계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야한 남자를 바라지 않는 것은 누구인가?
사실, 나라고 하는 여자의 개인사만을 들여다 보아도 야한 여자를 좋아하는게 먼저였다. 야한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다음 일이다.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다지 그런 기대를 할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 90년대 후반, 십대가 화려하게 젊은이 문화-패션계로 진출하면서야, 드디어 여자들의 미감을 충족시켜줄 만한 미소년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 미소년들의 이미지 경향이 그리 '야하다'과에 들어가지 않는 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물론 인정한다. 미소년은, '야하다'라기보다는 '예쁘다', 또는 '근사하다' 쪽에서 주로 발생한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드디어 남자를 대상화하고 즐기게 되었을 때, 그 미감은 여자만화의 전통에 상당히 의존한, 다분히 소녀취향적이고 심미적인 차원의 것이었다.
(->미소년 시리즈)
따라서 좀더 직접적으로 성적 매력을 함의하는 '야한 남자'의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주축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야한 남자'란 아직까지도 외로운 존재다. 나도 그렇고, 대개의 '남성을 심미화'하는 여자들은 '예쁜' 남자에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만화나 인터넷 팬픽 등을 통해 야오이물을 즐기는 여성들은 물론 상당히 '야한' 차원에 있지만, 그 '강도'가 현실세계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여겨진다.
대개 거리를 다니는 커플들을 보면 남자보다 잘 생긴 여자 커플은 많아도 여자보다 잘 생긴 남자 커플은 드물다. 난 그 이유를, '여자들이 남자가 자기보다 예쁜 것을 용서 못 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물론, 객관적이고 양적으로 풀이하자면, 원래 본판으로나 예쁘게 꾸미는 것으로나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예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언제나 비정형적인 것은 발생하는 법인데, 그걸 가로막는 것은 역시 여자들의 '질투' 내지는 '선민의식'이지 않을까.
그래도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진 편인데, 그건 역시 남자들이 꾸미기 때문이다. 예쁜 남자들 자체 숫자가 많이 증가했다. 그러다보니 '비정형적인' 커플도 꽤나 생겼다. 그러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어려움이 많은거 같다. 먼저, 여자들이 자체적으로 발동하는 검열이 있어서 자기비하에 빠지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고, 그외에도 주변의 압력, 거리의 시선이 내리쬔다. 남자보다 못생긴 여자를 용서치 않는 한국인의 획일적인 미의식과 주변 여성들의 질투와 괄시 등등. 그걸 뻔뻔스레 뚫고 나갈 수 있는 당당함이, 미남을 얻으려는 여자들에게는 필요하다.
아직까지 야한 남자가 참 없고, 미소년이 소수인 것은 남자들이 원래 못생겨서가아니다. 태생적으로 여성보다 더 예쁘지 않다는 평균적 사실과 초미남의 발생은 그닥 상관이 없다. 정작 야한 남자를 원하지 않은 것은 여자들이다. 아직까지는 야한 남자를 싫어하고 든든한 신랑감 타입을 원하는 여자가 더 많다. '일반적인' 여자들이 자기를 아름답게 꾸미고 섹시한 자태를 자랑하는 남자들한텐 침만 흘리고 (혹은 눈도 안 주고) 갖고싶어하는 건 돈많고 능력많은 남자라는 사실에서
'일반적인' 남자들이 왜 절대 변화하지 않는가의 이유가 나온다.
(->왜 남자는 화장을 안 할까?)
인간이라는 종의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는 사실 굉장히 근소한데, 남자에겐 능력을 여자에겐 꽃의 기능을 요구하는 이 끈질긴 사회적 요구는 정말 놀라운 것이다. 여자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뒤로 돌리고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본능적 선호도 또한 놀랍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역시 여자들이 경제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은 집단적이고, 나름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남자의 상이 바뀌고, 남자들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요구받던 경제기계 역할
에서 벗어나 관능적인, 결과적으로 전인격적인 도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인 교육이 다른게 아니다.
나는... 좋다
나는... 좋다고 말하는 것은 취미의 인간을 인정하는 것이다. 취미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이 언명에는 어떠한 당위의 차원도 끼어들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히 문화적인 베이스가 따라들어온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고 全한국적인 차원에서 말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개인주의, 물질적 풍요 속에
떠받들리며 자란 신세대가 필요했듯이, 나는 야한 남자가 좋다, 고 온나라를
들쑤시기 위해서는 관능적으로 해방된 남성들과 그런 남성들을 원하는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는 베이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20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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