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똑같은 얼굴은 불리하다 - 이미지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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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옥수수밭의 옥수수가 제각각 다르게 생긴것은 저마다 다른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다양성이 혹시라도 있을 전염병이나 재난에서 전체가
말살되는 것을 막아준다. 여러 종류가 뒤섞인 잡림은 잘 생긴 소나무만 가득
우거진 숲에 비해 훨씬 송충이의 습격에도 무사히 살아남는다. 사람들이 다
제각각으로 생긴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지금 신세대들의 성적 감수성을 몽땅 점거해 버리고 있는 티비
탤런트와 가수들이 온통 비슷비슷한 얼굴들 일색인 것은 한국의 앞날을 생각할
때 참으로 두려운 일인 것이다. 1990년대를 통해서 계속된 '어리기 어리기
운동'으로 인해 무조건 눈 크고 턱 작은 어린애같은 얼굴들만이 유일하게
아리따운 모습인양 미감을 독점하는 것은 제대로 문화를 일구기 위해서는
불리한 조건이 된다.
** 조용진 교수의 지적대로, 박통령의 조국근대화 이후 태어난 신세대들이
그전과 달라진 것은, 키가 많이 크고 사춘기가 빨리 온다는 것, 그리고 작은
턱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서양식 식습관으로 인해 부드러운 것만 씹으니 턱이
미발달되었다. 그리고 서양문물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양인처럼 얼굴이 작고 눈이 크고 코가 높고 입은 크고 턱이 작은 얼굴이
예쁜 얼굴인양 한국인의 미감에 강력히 박힌 것이다. ([얼굴, 한국인의 낯]
조용진, 사계절) **
다양한 얼굴 많은 힘
그래서 부분적으로나마 최근 티비에 불어온 길쭉한 얼굴의 유행이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
->대안적 미인의 등장?)
티비 드라마는 중장년층이 시청자로서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고래의
의식이 컴백할 가능성을 다른 분야에 비해 좀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길쭉한
얼굴의 이태란을 비롯한 탤런트들이 '다 큰 여자'의 이미지로서 활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리에서 우리가 만나는 얼굴들은, 그 눈이 작거나 얼굴이 크거나, 코가
길거나 낮거나, 턱이 크거나 미간이 좁더라도 나름의 독특한 매력을 지닌
미인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이다. 그러나 티비와 각종 영상매체에서 볼
수 있는 미인들은 온통 규격에 맞는 얼굴 한두 종류로 매우 획일적인 미감을
조장하게 되어있어서, 나머지 일반인들은 자기의 매력을 놔두고 엉뚱한 데만
쳐다보며 탓을 하거나 자신있게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남자쪽에서는 기존의 '듬직한 남성상'이란게 있고 여자처럼 외모가 전부가
아니므로 비교적 다양한 얼굴상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얼굴이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잘 나가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다양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런 얼굴이 좋고, 다음엔 이런 얼굴이 좋고,
유행은 맘편하게 불 수 있지만 실제의 얼굴은 그렇지 못하다. 각각의
얼굴생김이 다른 것은 이유 없이 다른게 아니라 과거의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가 유전자를 통해 이어지고 엮이고, 지금 내 얼굴을 통해 현재의 삶을
형성하고 있기에 다른 것이다. 따라서 '유행'만이 아름다운게 아니라 나의
고유성 역시 그못지 않게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다양한 목소리 많은 가능성
왜 한국에는 노래를 못하는 가수가 이렇게나 많은가에 대해서 나는 십대가
좋아하는 얼굴, 즉 눈이 큰 것까지는 좋은데 코가 짧고 턱이 작은 얼굴은
노래는 잘 하는 얼굴과는 좀 거리가 멀다는 이유를 넣고 싶다.
대개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여가수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 턱이 왠만큼 각이
져있다. 턱이 발달해야 말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는건 아주 자연스러운
사실이다. 공명할 통이 있어야 깊은 소리가 나올게 아닌가. 물론, 턱이 작아도
노래도 잘 하고,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언제나 그 반대이다. 무엇보다도, '목소리 전문배우'인 성우들을 보면 예외없이
턱이 꽤 있다. 그리고 서구의 팝가수들을 보면 앞에서 보는 얼굴은 상당히
갸름한 것 같지만, 옆에서 보면 또 예외없이 턱이 있다.
그 얼굴취향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의 가요계는 계속 이 모양일지 모른다는
무서운 예측까지는 하지 않으련다. 언제나 예외적인 존재가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언제나 필수가 되어야한다는 점은 강조해
마지 않는다. [얼굴, 한국인의 낯]에 따르면 호남지역에서 판소리가 발달한
것엔 그 지역에 입천장이 깊고 넓은 사람이 많다는 체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턱이 큰 가수가 나오는 것을 무조건 억누르는 획일적 미감이
계속되면 새로운 창법, 나아가서는 새로운 음악이 나오는 것 또한 제한하는
것일 것이다.
성우야말로 한국의 보물이다
우리는 그냥 예전부터 있었으니 그런가보다 하기 쉽지만, 성우는 옆나라
일본에서나 우리처럼 제도화되고 발달해 있지, 그 뛰어나신 할리우드만 가도
성우라는 직업이 없다. 거기선 목소리 연기를 할 능력이 되는 배우들이나
코메디언들이 주로 부업으로 더빙을 한다. 따라서 목소리 연기라는 분야에
대해서는 나름의 전통과 노하우, 존엄성을 쌓은 것이 한국의 성우계이다.
무조건 얼굴만 팔고 보는 탤런트나 가수, vj들의 음성테러에 시달리는 한국의
시청자이지만, 같은 방송국에서 한쪽에는 개떡같은 탤런트들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쪽에서는 수준높은 연기력과 작품이해력이 뒷받침된 연기를 볼
수(들을 수) 있으니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 젊은 탤런트들이 대사도 발성도 꽝인 것은 전부터 말이 많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음성테러를 행하는 것이 어느샌가 리포터라는 이름으로
공중파티비를 침입한 여자들과 케이블 티비들에 무식하게 뿌려진 vj들이다.
리포터들의 하나 같이 높은 피치에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대신 짜증나게만
하는 과장된 언어 때문에 저녁에 티비를 보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다. 말못하는
mc 이상으로 '살의'를 일으키는 vj들의 꼬라지는 단지 말을 잘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요새는 아예 '한국말을 못하는' 것들까지 vj랍시고 설치며 시청자를
모욕하고 있다. **
무엇보다도 성우들은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 다른 데서는 아무데서도 들을
수 없는 정확한 발음으로 말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획일적인 얼굴에서
나오는 획일적인 어린애같은 소리를 벗어나 있다. 티비 드라마에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획일적인 어린애스러운 얼굴뿐만 아니라 획일적인
어린애스러운 목소리다. 짜증이나 내고, 헤헤거릴 줄이나 알뿐, 더 이상의
다양한 인생의 깊이도 굴곡도 표현할 줄 모르는, 들으면 짜증나는 목소리가
태반이다. 특히 젊은 여자들은.
그래서 한국은 문화적 다양성과 그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미 갖고 있는
성우라는 위대한 자산을 잘 가꾸어야한다. 수준낮은 탤런트의 연기와
여성테러적인 드라마, 연예인 괴롭히기 프로그램들로 가득찬 티비이지만,
그래도 한구석에 성우들의 수준높은 연기가 있기에 숨통을 트이고 사는
것이다. 어느 한구석에선가는 좋은 것을, 대중이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준있는 것이 창조된다. 그렇기에 요즘 mbc가 보이고 있는 자막방송이니,
배타적인 전속성우 정책, 끝간줄 모르는 미스캐스팅 같은 작태는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문화말살 정책이다.
한국인의 좌뇌는 퇴화중이다
오랫동안, 즉 한국인의 원형이 성립한 이후로 주욱 그래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그렇게 이미 많이 받은 노벨상을 그 잘난 한민족은 하나도 못
받은 까닭은 역시 조용진 교수의 추론대로 우뇌중심적인 한국사회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뇌적 논리 중에서도 최고 저열한 것들이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 그렇게 세팅되어있는 한 쉽게 바뀔 일이 아니다.
어쩌면, 한 세대 안에 남북이 사회적으로 많은 교류를 이루고 많이들 결혼을
함으로써 이북의 '단련된' 언어습관이 남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주기를
바래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쪽 사람들은 순박하고 단순한 세계에 살지만,
언어교육만큼은 모두가 철저히 받았으니 좌뇌가 충분히 활성화되어있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다. 과연 한국 사람들이 (남과 북 모두) 통일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일까.
20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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