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젊음은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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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젊음이란 단지 끝도 없는 낭비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는, 그런 것일까? 한국인의 유구한 음주가무의 전통 아래서는 과연 그것은 진리인 것만 같다.
나는 원래 담배를 못하고 술을 못하는 이유로 주변의 '반항아'들과는 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술먹는 사람은 주도를 추구하고, 담배피는 사람은 흡연의 철학을
가지게 되듯이, 술도 담배도 안 하면서도 주류사회를 따라가지 않고 개기는 사람은 또 나름의 노하우를 많이 개발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네트를 통해 많은
좋은 것들을 얻고 사람들도 만났고, 밖에 잘 안 나가니 책읽을 시간도 많아 똑똑해졌고, 술 담배 자외선을 멀리하니 피부도 좋아, 이 젊음을 언제까지고 끌고가고
싶다는 망상을 지니게 되었다.
(->망상론)
그러나 젊음은 과시해야만 한다. 그것을 말리는 것은 불가능한 작전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은 자신의 젊음과 힘, 아름다움을 과시해야만 짜릿한 쾌감과 크나큰
만족감, 자신감을 누릴 수 있는 동물인 것이다. 그래서 나같은 여자도 가끔은 희생을 감수하고 (공기 더럽게 나쁘지만) 음악 좋은 곳에서 춤추러 가는 것이다.
만약 젊은이들에게 잘난 육체와 체력을 과시하지 말고서 이성을 꼬셔보라고 한다면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수컷들만 모이면 발생하는 위계 역시 수탉은 '쪼
는 순위'로 결정나겠지만 한국 남자들은 주량으로 결판이 난다. 과시가 없는 인생은 재미없다. 허영심이 빠지면 인생도 없고 감정도 없는 것이다. 단체나 종교에서
부과하는 금욕적인 규율도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성에 집착하는 동물이고 또 허세가 심한 동물인가에 대한 통찰 위에서 그 욕망들을 다스릴 효과적인 전
략을 세우려고 하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낭비의 뒷감당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자. 젊음을 소진하고 나서, 지치고 노화한 육체를 깨닫고서야 몸생각하고 건강을 생각하며 새로이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 헤매는 중년들의 모
습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주로 점잖게 식도락이지만, 관광버스도락, 영계도락도 제법 있다. 한편으로는 가족을 보살피고 먹여살리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느라
자기를 돌볼 틈이 없었다고 변명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젊음을 과시하던' 왕년의 문화 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한다. 단지 좀 절제하거나 좀더 비용이 많이 들거나
할 뿐.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그 과정을 밟아야하는 걸까? 젊어서는 펑펑 퍼다쓰며 과시하다가 늙으면 찌그러지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는 것일까? 계속 젊은이로서 짜
릿한 인생을 살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젊음을 과시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걸까?
생명은 나서 번성하며 쇠퇴하기 마련이므로 '영원한 젊음'을 목표로 한다던가 하는 일은 아직까지는 불가능한 작전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늙지 않는 약을 먹거나 사이보그가 되기를 원하는 삶의 양식이 성립할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 당장 그 효과를 볼 수는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
'유한한' 우리의 젊음을 충분히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중요한 물음이 될 것이다.
젊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젊음은 단지 과시될 수만 있을 뿐이다. 젊음은 13살부터 18살까지, 혹은 18살부터 23살까지의 연령의 가름으로 분별되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물건을 팔아먹기 위
해선 실체인양 사기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cf가 아닌 실제 세계에서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체득하고 형성해나가는, 진행해나가는 하나의 태
도이자 양식, 나름의 열역학 체계다. 즉 과정이라는 거다.
젊음은 좀더 활짝 열어제끼는 개방된 우주다. 그래서 새로이 생성되는 것들로 가득차 어리고 예쁜 피부를 하고서 활기 넘치는 신체에다 도전과 실험을 사양치 않
는다. 이것을 '젊은 우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자기조직 시스템은 자기를 유지하는 닫힌 우주이나 동시에 환경을 향해 열린 우주다. 젊은 우주는 자기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막대한 에너지를 실험하고 낭비하며, 그것은 건강한 것이다. 성숙하여 늙은 우주가 되면, 이제 자기의 유지만을 위해 에너지를 절
약하며 열역학적 평형에 좀더 가까와지기 시작한다.
젊은 우주의 낭비는 그래서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건설하는 모든 활동 속에서 건강한 것이다. 하기 싫은 노동의 바로 뒷면에 붙어있는 발악적이고 자기학대적인
낭비만이 젊음의 유일한 증거가 아니다. 물론 인간은 자기학대마저 미감적으로 즐기는 고차원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쾌락이 반드시 몸의 쇠퇴만을 가져온다면 그
섭생법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것이라고 본다.
젊음은 낭비이지만, 낭비가 아니다. 내일은 없다 식의 방종이나 내일을 위해서라면 식의 금욕주의에서 벗어나는, 미래와 연결되어있으면서 현재를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균형잡힌 의식, 섭생법을 마련한다면 젊음은 더 이상 낭비가 아니라 끊임없는 창조가 될 것이다.
200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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