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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일상적인 대목들에서, 우리들은 관념적으로는 생산이 소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개인은 파산하기 쉽다. 회사는 부도가 난다지만 그건 좀 다른 문제고. 아무튼, 그 외에도 우리들이 낸 피같은 세금으로 나라에서 70년대에는 중공업 발전기금으로 쓸어넣고 2000년대에는 IT에, 황우석에게 쏟아부어도 다 '국가의 주력산업'을 키우기 위한 투자이니 개인들이 좀 희생해도 어쩔 수 없다고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엄청난 관념을 그저 '일반적으로',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우리 인생의 '주력'을 차지하는 부분은 먹고 살기 위한 활동보다는 여분의 활동, 말하자면 생산보다는 소비에 있다. 뭐니뭐니 해도, 최소한 우리가 기꺼워하는 부분은 당연 여분의 활동이다. 일하고 공부하고 시험치고 하는 활동보다는 친구랑 놀고 애인을 만나고 짬짬이 휴식을 즐기는 순간이 더 즐겁고 기쁘다. 맨날 먹는 밥과 국은 그저 그렇지만 가끔씩 맘먹고 나가먹는 파스타니 정식(일, 한, 중, 양)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무엇을 위해서 일하느냐면, 하는 일을 만족스럽게 끝내고 잠시 갖는 온전한 휴식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무엇을 위해서 힘들고 고된 일들을 마다하지 않느냐면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위해서다. 물론, 가족은 주로 소비활동을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무엇보다도 큰 생산이니까 좀 다르긴 하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느낌 뿐만이 아니라 산업 안의 비중도 '여분' 쪽이 크다. 사치품이니 서비스업이니 하는 것들은 여지 없이 그렇고, IT도 마찬가지. 먹고 사는 일 다음에 사실 커뮤니케이션이란 있는 것이다. 예술이니 문화니 교육도 여분이다. 우리의 문묭 자체가 그렇다. 먹고 사는 일의 여분, 그것이 거대하게 자라나 인간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다. '사치스러운 생각'들이 문명의 진보를 이룩했다. 그리고 그 여분의 비중은 점점 커져간다.

사람들은 먹고 살만해지면 체면을 생각하게 되고, 멋을 부릴 마음이 나고, 남을 생각할 줄도 알게 된다. 더 나은 삶을 꾸리고, 더 나는 인간으로 도약하고픈 생각이 나게 되는 것이다. 벌써 옛날에 그 윤리의 화신 공자님도 백성을 먼저 잘 먹이고 나서 윤리를 가르치라고 했으니 너무 당연한 소리긴 하다.

80년대에 이미 좀 먹고 살만하게 되었다는 한국은 90년대에 들어 자기 개성을 표현하고, 자기 나름의 윤리를 정립하고 인생을 살겠다는 신세대 문화를 꽃피웠다. 단적으로 말해 성윤리가 바뀌고 패션이 야해졌다. 젊은이 문화가 산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다음의 어떤 것으로 나아가지를 못 했다. 2000년대는 심히 밋밋하다. 어려서 소년동아일보에서 보던 '우주적인' 미래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여러가지에서 퇴보하는 모습을 보인다.

IMF 탓인가?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그후 사회 각계에 침투한 자본주의강박증과 10억 만들기, 부자되기 열풍을 보면 물론 타당한 이유같다. 그렇다면 IMF가 오게 된 이유는 뭐고 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가지 못 하는 이유는 뭔가?

산업의 차원에서라면, 기업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사람들이 지나간 시대에서 쌓은 부와 에너지를 제대로 쓸 줄을 몰랐기 때문에, 제대로 낭비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90년대 노동운동이 피터지게 주장해도 먹혀들지 않던 주5일제 근무가 지금은 나라에서 먼저, 기업에서 먼저 솔선수범하듯이 대세가 되고 있다. 주5일제를 해야 주말 레저 문화가 피어나 나라 경제가 살아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주5일제를 한다. 그러나 놀 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노는 날은 고통이다. 자기를 위해 투자하는 일이 생경하고, 주중 내내 모든 에너지를 직장에서 빼앗긴 사람에게 하루 늘어난 주말의 휴일이라는 것은 잠자고 쉴 시간만으로도 빠듯한 무력감이다.

왜 90년대의 신세대 문화니 어쩌니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 했을까
한국이 첨단 IT계에서 잘 나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이지 하드웨어, 기간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모르는 것이다.
첨단이니까 웹2.0도 앞서서 '도입'하면 되겠지, 천만의 말씀이다.

남 생각을 하고, 공공질서를 지키고, 공직자의 윤리라는 것을 당연히 기대하고 감시할 수 있고,
취향을 고급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를 발전시키는 법, 인생을 누리는 법을 알지 못 하기 때문
정치적으로는 지난 몇십년간 누적된 체념

see also 마광수, 사치와문명?

낭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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