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나는 초등학교 시절 미니시리즈 6부작 베르디에 열광했고, 베르디는 그후 나의 문화적 수준을 기본적으로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1
일단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FM 라디오 93.1 MH 애청자로서 93.1이 허용하는 최고의 수준으로 취향을 갈고 닦았다. 처음에야 낭만파 음악이 좋았고, 교과서에서 들려주는 류의 아기자기하거나 매우 유명한 곡들이 좋고, 베르디 오페라처럼 화려하고 극적이고 감정의 긴장이 센 그런 것들에 압도당했다. 브람스나 국민음악파들의 웅장하면서도 감성적인 관현악곡도 좋았고.
그러면서, 모든 오버만빵을 졸업했다. 말하자면, '말러류'를 가장 먼저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치고 싫어하게 되었고 베토벤도 소나타류는 좋지만 '운명'이라든가 기타 웅장한 오버만빵은 너무나 싫었다. 무조건 바로크나 고전주의 초기, 머리를 시원하게 만드는 훌륭하고 잘 지어진 악곡들과 어여쁘고 투명한 쳄발로, 합시코드 같은 소리들이 좋았다. 그렇게 진행이 되다보니 결국 지금은 베르디 오페라 같은 화려하고 극적인 것은 듣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곡이야 훌륭하지만.
서양의 클래식이 허용하는 최고의 수준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엔간한 것에는 압도당하지 않으며 또한 어정쩡한 것 또한 싫어한다. 경음악, 팝페라 뭐 그런 것들은 당연히 싫고, 클래식 초보자를 위해 가볍게~ 하는 류의 편성도 못 참을 정도다. 그러니 뮤지컬 별로 안 좋아한다. 오페라와 비교했을 때 당연히 음악성 너무 많이 떨어지니까. 연극적인 측면에서 재미를 제공해야만,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락쪽에서 복잡하고 웅장한 것을 시도한 것 역시 안 좋아한다. 제아무리 하드락이나 프로그레시브, 바로크메탈이 복잡해봤자 클래식을 이길 리가 없다.
2
그리고 복식호흡으로 노래하게 되었다. 한동안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나 비제의 <카르멘> 같은 것은 테이프를 늘 들으며 따라불렀고, 그보다는 덜 하지만 독일 가곡들도 따라부르고, 노래가 아닌 그냥 악곡들도 그냥 따라 불렀다. 특별히 좋아했던 유명한 아리아면, 가사야 모르지만 아직도 악곡은 거의 비슷하게 기억해서 부를 수 있다. 참 많이도 불렀다.
그래서 복식호흡으로 노래하는 게 나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나중에 스스로 노래를 만들게 되면서 이를 비누도둑의 특색을 만드는 데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게다가 불교학교를 다닌 덕에 일주일에 한번식 단전호흡을 배워서 더 쉬웠던 것 같다. 내가 클래식을 부르는 데 열심이었던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초등학교 때에는 다들 육성으로만 노래를 하는데, 나는 음역이 낮아서 옆에 앉은 짝(남자)보다도 소리가 안 올라가서 꽤 서러웠다. 하지만 가성으로 부르니 마구마구 올라가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도 준엄하게 나의 소리를 평가해보건대 그다지 육성 자체가 독특한 것도 아니고 음역도 너무나 제한되어있다. 오로지 창법으로, 그리고 나에게 맞는 노래를 만든다는 장점을 활용해서 해나가고 있는 편이다.
3
수준이 높아지면 반드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음악에서 나올만한 멜로디라는 것이 빤하기 때문에, 고전 레파토리를 딱 꿰어차고 있는 나에게는 어떤 대단한 영화음악도, 또 어떤 잘 나가는 팝송도 들어보면 '어 이거 누구의 뭐뭐랑 비슷하군' 하고 판정이 나와버리는 일이 흔하다. 감동의 기회가 줄어든달까. 그리고, 수없이 변화발전하는 악곡을 들으며 귀를 훈련했기 때문에인지 옛날 노래 뭐랑 비슷하거나 표절한 노래를 너무나 귀신같이 다 잡아낸다. 내 귀에 들어온 적이 있는 노래라면 다 잡는 정도랄까. 그렇다보니 요즘 같은 저열한 음악시장의 논리가 판치는 시절에 살면서는 열받고 짜증날 일이 너무 많다. 표절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평정을 잃기 때문에 헬스클럽도 못 간다.(요즘엔 안 간다. 기천하고 요가하느라 바쁘다.)
또 한 가지 단점이라면 '너무 일찍, 제대로' 복잡하고 대단하고 극적인 것을 졸업하고 쿨~한 태도를 형성하는 바람에, 새로운 장르의 진국을 배우러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순수한 마음이란 다름 아닌 선입관 없는 텅빈 마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빔이다. 그런데 이미 쿨~한 태도랍시고 잘난 마음의 벽을 쌓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길 위험도 그만큼 없지만 그 대신 새롭고 좋은 다른 것을 섭취할 가능성도 차단하게 된다.
4
그리고 음악 외에도, 미술이나 복식, 태도 등의 문화면에서도 그 시대의 서양, 그리고 그 이전과 이후 시대의 서양을 동경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미복 입은 남자들과 드레스 입은 여자들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다리 예쁜 여자만 즐겁고 어깨 예쁜 여자들은 참 자랑할 기회가 없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유감스럽다.(뭐 요즘엔 어깨 노출 스타일이 유행을 좀 타고 있지만 너무 제한되어있다. 그리고 브라끈 문제도 여전히 난제.) 음악이야기 Or try one of these actions: LikePages |